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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03. 2023

<백조의 호수> 끝없는 이야기

<백조의 호수> 변신은 어디까지?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하기까지

‘발레 음악의 대명사’, ‘발레리나=백조’와 같은 공식을 만든 차이코프스키의 첫 번째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는 어쩌면 발레 작품을 더 뛰어넘는 음악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상상력과 위대한 천재성은 그 동안에 변방 음악으로 취급받았던 발레 음악의 위상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발레를 위한 음악을 넘어서서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훌륭하고 아름다운 관현악곡이기 때문이다.     


1875년 어느날 차이코프스키는 볼쇼이 극장의 감독에게 발레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발레 음악 작곡을 꼭 해보고 싶었던 차이코프스키는 극장 감독의 의뢰에 승낙을 했다. 작품의 주제는 누가 정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차이코프스키가 주제 선정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설에 힘이 실린다. 이렇게 해서 차이코프스키가 야심차게 작곡한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초연의 결과는 참담했다. 발레리나의 기량 부족과 엉성한 안무 그리고 형편없는 연출 때문에 초연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게다가 발레를 위해 춤곡을 나열하는 방식의 발레 음악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당시 대중들은 관현악곡으로서도 매우 훌륭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초연의 참담한 실패는 차이코프스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차이코프스키는 다시는 발레 음악을 작곡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후 마리우스 프티파의 의뢰로 발레 음악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작곡하기 전까지 차이코프스키는 13년간 이 분야에 손도 대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가 죽은 후 마린스키 황실 극장의 감독이었던 마리우스 프티파는 볼쇼이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의 악보를 발견했다. 오케스트라 총보를 검토한 프티파는 이 작품이 손만 좀 보면 진짜 백조처럼 탈바꿈할 작품인 것을 알아차리고 볼쇼이 극장측으로부터 악보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추모 공연으로 이 작품을 공연할 것을 목표로 하고 차이코프스키의 막내동생이 대본에 수정을 가하고 작곡가 드리고가 곡의 일부분을 수정했으며 차이코프스키의 몇몇 피아노곡과 소품곡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해 발레 음악으로 추가했다. 또한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했을 당시에는 낭만 발레였던 이 작품을 프티파와 이바노프는 과감하게 클래식 발레로 재안무를 했다. 과감한 악보수정과 재안무로 재탄생시킨 <백조의 호수>는 마린스키 극장 초연시 2막만 공연을 했음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 힘입어 이후에 전막 공연을 했고, 성황리에 마친 전막 공연 <백조의 호수>는 그야말로 그동안의 미운 오리 새끼에서 진짜 아름다운 백조로 탈바꿈하면서 클래식 발레의 대명사로 날아올랐다.


이 작품의 진가는 차이코프스키의 뛰어난 음악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에 있다. 호숫가에 비친 달빛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수짙은 선율에 백조들의 우아한 몸짓을 연상시키는 듯한 음악적인 묘사와 극의 흐름에 따른 극적인 긴장감을 환상적으로 표현을 했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특히 오보에와 바이올린 선율이 번갈아가며 호숫가의 정경을 묘사하는 부분은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또한 오데트 공주가 자신이 악마로부터 마법에 걸려 낮에만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신의 슬픈 처지를 발레 마임으로 이야기할 때에 흘러나오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정말 오데트가 자신의 슬픈 운명을 하소연하는 마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여러 버전에 따라 <백조의 호수>의 결말은 제각각 다르다. 같은 음악을 사용했더라도 발레단의 메소드와 안무에 따라 결말이 다르고 연출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로열 발레단은 비극적인 결말인데 비해 볼쇼이 버전은 사랑의 힘으로 악마를 물리치고 오데트는 인간으로 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마린스키 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의 안무를 바탕으로 현재 유니버설 예술감독인 유병헌이 개정한 안무를 사용하고 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프티파의 안무를 기반으로 루돌프 누레예프가 개정한 안무를 사용하고 있고 백조들의 군무가 무척 아름답고 춤선이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https://youtu.be/fQ7ztMH_8yk?si=I85FIXCTqmtUIArF


https://naver.me/FzQ9VnNG

우수짙은 호숫가를 배경으로 백조들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모습은 감상자를 마법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https://naver.me/xUFJUjO6

헤엄을 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도 수면위에서는 우아하게 헤엄을 치는 백조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4마리의 백조로 변신한 발레리나들이 오보에와 클리리넷의 리드미컬한 선율에 맞춰 하체로는 테크닉을 구사하면서 머리로는 백조의 고개짓과 시선처리로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소군무로 주연무용수들 못지 않게 관객들의 박수를 많이 받는 장면이다.


https://naver.me/5YanbW7Z

영상 속에 나오는 발레리나는 과거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별이었던 ‘아네스 레테스튀’이다. 오데트 역을 맡은 아네스 레테스튀가 보여주는 폴드브라와 하체의 테크닉을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물이 묻은 다리를 터는 듯한 하체 동작과 파드닥거리는 백조의 날개짓을 형상화한 폴드브라가 무척 아름답다. 또한 자신의 슬픈 운명을 표현하는 발레리나의 연기력은 감상자에게 매우 흡입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군무가 특히 아름답다. 머리에 깃털을 달고 하얀색 튀튀를 입은 백조들이 소군무에서 전체대열로, 또 전체대열에서 소군무로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연달아 나오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이 부분의 군무는 개인적으로도 추억이 많아서 언제 보아도 추억이 방울방울이고, 음악만 들어도 행복하다. 어쩌다 발레를 배우면서 어쩌다 무대에 올라 백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표현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발레를 배우면서 이런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예술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로서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추억이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같다.


한편 차이코프스키의 뛰어난 음악적인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은 창조적인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이야기는 아직도 완결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끝없는 이야기이다.


남자들의 <백조의 호수>

‘백조는 우아하다, 발레리나는 백조’의 공식을 깬 안무가가 있다. 그는 백조의 날개짓이 실제로는 전혀 우아하지 않고 매우 역동적이며 백조의 습성 또한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공격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바로 영국의 안무가 매튜본이다.


 그래서 그는 발레리나들의 전유물이었던 기존의 클래식 발레에서의 가녀리고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깨고 매우 힘있고 때로는 공격적인 모습도 보이는 남자들의 백조로 바꾸어버렸다. 작품 전반에 우울한 서정미가 깔려있는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와는 달리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는 작품 전반의 분위기가 긴장감이 넘친다.

매튜본은 <백조의 호수>의 이야기와 안무를 새롭게 만들면서 호러 영화의 구성을 차용했다. 전반적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가끔씩 웃음 포인트를 넣으면 관객들 긴장과 이완, 또 긴장을 반복하면서 영화에 더욱 몰입을 한다는 점을 차용해 자신이 패러디한 <백조의 호수>에 적용했다. 그래서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긴장감이 흐르면서도 전반부에 재치있는 유머를 배치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럽게 전개되고 있다.


이 작품을 대체로 인간의 본성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동성애 등을 묘사했다는 시각으로 해석한다. 매튜본 자신은 영국 왕실을 풍자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매튜본은 이 작품으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토슈즈를 신고서 하얀색 클래식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들의 정형화된 움직임 대신에 상체는 드러낸 채 깃털로 뒤덮힌 하체 의상만 입고 역동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로 날개짓을 하며 맨발로 매우 힘차게 도약하는 발레리노들의 움직임은 매우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움직임은 그들의 근육의 움직임과 거기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이 되어 전율을 느낌과 동시에 시각적으로도 강렬한 자극을 받았다.


원래는 발레리나였으나 정형화된 발레가 싫다며 자유롭게 춤을 추고자 토슈즈를 던진 현대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던컨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무용의 역사를 바꾼 이사도라 던컨 덕분에 오늘날에 창조되는 발레의 안무에는 제약이 없어졌다. 매튜본 역시 정형화된 발레의 틀을 깨고 <백조의 호수>에 모던을 입혔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댄스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창조했다. 따라서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는 모던 발레이면서 동시에 뮤지컬 발레이기도 하다.     


매튜본은 자신의 작품에 멋진 왕자님 대신 유약하고 마마보이인 왕자님을 등장시킨다. 심약한 왕자님은 어머니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어머니는 냉정하기만 하다. 결국 왕자는 자살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데 그 순간 왕자님의 눈 앞에 백조가 나타난다. 그것도 자신의 유약함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던 왕자님이 그토록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려오고 꿈꿔왔던 남성적이고 도발적이고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를 가진 남자의 모습을 한 백조가.


https://naver.me/5XT3e4eA


야생 백조로 변신한 발레리나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클럽 음악이 만났다. 미니멀한 무대 디자인에 장면 전환도 디지털 스크린을 사용했다. 고전 발레에 모던과 EDM을 입힌 프렐조카주의 <백조의 호수>. 그의 작품에 나오는 백조는 우아한 백조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야생 백조였다. 토슈즈도 신지 않고 손목을 90도로 꺾은 채 날개짓을 하는 백조들의 모습은 살아있는 백조를 보는 듯 매우 강렬했다.


“아버지로서 다음 세대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합니다. 제 딸들이 살아갈 세상에 어떤 것들을 물려주게 될지 궁금하거든요. 호수는 말라가고 동물의 종이 사라져 버리는 세상, 이대로라면 우리 아이들이 백조가 뭔지는 알까요?”     


이같은 질문에서 시작된 앙줄랭 프롤조카주는 환경파괴로 희생되는 백조의 이야기를 강렬한 모던 발레로 표현했다. 백조의 호수 속 인물들도 모두 21세기 식으로 탈바꿈했다. 오데트는 환경 운동가였으나 마법사 로트바르트에 의해 백조가 된 소녀로, 지그프리드는 시추기 판매 기업의 대표이자 호숫가에 공장을 세우려는 투자자의 아들로, 로트바리트는 지그프리드의 아버지가 공장을 건립할 수 있도록 옆에서 부추기는 부동산업자로 바뀌었다.      


사회적인 문제를 예술 작품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우려했으나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막상 감상해보니 의외로 안무가가 설정한 주제가 고전 발레와 너무나도 조화가 잘 되어 있었다. 모던하게 바뀐 백조들의 튀튀는 또다른 아름다운 백조 같았고, 토슈즈를 신지 않은 채 날아오르는 백조들의 날개짓은 낯선데도 생생하고 강렬했다.


디베르티스망은 과감하게 현란한 조명과 EDM 음악을 사용해 클럽 분위기로 바꾸거나 의자에 앉아 모던 댄스를 추는 것으로 변형해 버렸다.


환경 문제로 백조들이 위협을 받는 장면에서도 디지털 스크린으로 극의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을 연출한 무대는 예술과 영상 예술이 결합된 매우 혁신적인 무대 예술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환경 파괴로 인해 야생 백조들이 괴로워하면서 파드닥 날개짓하다가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은 내게 너무도 강렬한 새로운 움직임로 다가왔다.


이렇게 고전 작품을 재해석을 가미해 새롭게 빚어내는 것은 프렐조카주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예술가들에게는 큰 도전이고,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예술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고전에서 영감을 받고 현대적인 재해석을 하면서 또다른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흑조가 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몸부림을 친 니나. 인간의 이중성과 욕망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그려낸 <블랙 스완>


다음 이야기가 또 기다려지는 <백조의 호수>. 예술 창작자들의 상상력으로 빚어내는 <백조의 호수>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https://naver.me/x6Ai4Ykm

https://naver.me/5kk3Oi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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