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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04. 2023

* 발레리나들의 ‘캐스터네츠 베리에이션’

3인 3색의 키트리 춤

발레리나들도 배우들처럼 자신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배역을 맡는 경우가 있다. 애절한 사연을 가진 공주님, 지혜롭고 기품있는 라일락 요정, 슬픈 사랑을 간직한 지젤, 단호한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청순가련형인지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미지인지에 따라 발레리나들이 맡는 역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미지에 상관없이 ‘춤’만 잘 추면 캐스팅을 하는 배역이 있다. 바로 <돈키호테>의 키트리이다.     

거의 매년 발레단 정기공연 레파토리에 들어가는 발레 작품. 심지어 갈라 공연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끼워넣는 키트리와 바질의 ‘파드 되’. 뮤지컬처럼 신나게 감상할 수 있는데다 낭만과 열정이 가득한 화끈한 스페인 감성 때문에 대체로 큰 호불호가 없이 좋아하는 작품이라 발레단에서 이렇게 자주 무대 위에 올리는 작품이다.

  

그러면 식상할 것도 같은데 또 그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클래식 발레의 여주인공과는 달리 키트리의 캐릭터 자체가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지와 상관없이 춤만 잘 추면 캐스팅을 하니 발레리나들마다 매우 다양한 느낌의 키트리를 연출할 수가 있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 클래식 애호가들이 질리지 않고 심취할 수 있는 것처럼 발레도 똑같다. 특히나 <돈키호테>의 키트리는 발레리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에 따라 같은 발레단이라도 안무를 조금씩 다르게 해서 장점과 매력을 크게 부각시키도록 연출을 하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보는데도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https://naver.me/xY90F59y


1. 볼쇼이 발레단의 나탈리아 오시포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어나와서 아주 크게 점프 한 번 뛰고 포즈.  때 오시포바의 표정을 보면 “나 자신 있어!”하는 표정이다. 오시포바의 근력이 남자 못지 않다. 기초체력도 다른 발레리나들과 비교할 때에 월등히 좋아보인다. 역시 근력이 좋아서 점프력이 아주 좋고 남자처럼 춤을 춘다.     


여기서 오시포바는 ‘쏘드샤’라는 점프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 자신이 가진 강점으로 력과 테크닉으로 무장한 비르투오소로서의 면모를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캐스터네츠 베리에이션인데도 오시포바는 캐스터네츠를 들고 추지 않았다. 놀라운 점프력과 회전력으로 오직 승부를 걸겠다는 자신감이 돋보인다. 또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한 후 다음 동작을 바로 이어나가니 이 부분에서 다른 발레리나들은 어떻게 마무리 동작을 하는지 비교해서 감상하면 더욱 재미있다.     

통통거리는 매력으로 온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오시포바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체력도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2. 로열 발레단의 마리아넬라 누네즈

누네즈 역시 오시포바 못지않게 에너지가 넘치는 발레리나이다. 하지만 연출 분위기는 오시포바와 사뭇 다르다.  누네즈의 장점은 생기가 넘치면서도 러블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누네즈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애초에 안무가의 연출 지시 자체가 누네즈의 친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영국은 뭐든지 다르게 생각하는 나라인 것 같다. 클래식 발레 <돈키호테>에서도 늘 그렇듯이 로열 발레단 스타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폴드브라도 정형화된 클래식 발레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는 동작으로 바꾸었고, 이와 더불어 하체 포지션도 다른 발레단과는 다르다. 이 부분에서 정박을 쓰는 다른 발레단과는 달리 누네즈는 살짝 엇박을 쓰고 있다. 게다가 사선 방향으로 피케턴을 돌 때에 누네즈는 중간에 완급을 조절하면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회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발레에서 회전을 할 때에는 반드시 사선 방향을 보면서 스팟 처리를 해야하는 것이 규칙인데, 이 규칙을 깨고 있는 것이다.      


회전 속도는 오시포바보다 조금 느리지만 오시포바는 회전 속도에 초점을 두었다면 누네즈는 회전하면서 리듬과 박자를 타고 있다. 누네즈가 회전을 하면서 셈여림을 하고 있으니 어느 때 강박과 여린박을 구사하는지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3. 볼쇼이 발레단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도쿄 공연)

자하로바는 이미지가 얼음공주이다. 하지만 키트리는 생기 발랄한 캐릭터이다. 연출가는 차라리 자하로바의 이미지를 살리는 쪽으로 컨셉을 잡은 듯 하다. 그런데 이 연출 방식이 신의 한 수이다. 어차피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의 자하로바가 밝고 생기있게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작품도 살고 캐릭터도 산다고 연출가는 생각한 듯 하다.     


도도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그녀는 지나치게 빠르지 않는 동작으로 비교적 여유롭게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동작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에 모든 동작을 교과서처럼 세련되고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클래식 발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자하로바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발레 동작을 하고 있다. 정박을 사용한 덕분에 매우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 반주가 악센트를 줄 때 자하로바 역시 동작에 악센트를 주고 있다. 폴드브라와 손끝, 도도하게 치켜든 턱끝으로 악센트를 주는 모습이 자하로바의 주 특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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