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람에게는 아픈 감정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삶의 고유한 무늬로 자리 잡습니다. 우리는 그 무늬를 자랑스럽게 펼쳐 보일 수도 있고, 그것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사려 깊은 수다(박정은 저)'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 속에 공감 가는 글귀가 있어서 적어두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고 아픈 감정을 마음 한 켠에 가지고 살아가는데, 성숙한 사람은 그 아픔이 상처가 아니라, 고유한 무늬가 되기도 하고, 그 아픔을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 참 와닿았다.
맞지. 삶의 고유한 무늬, 나만의 시그니처가 되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미처 몰랐던 나의 존재로서의 가치와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면 어디서 무슨 상처를 받더라도 분명 그건 더 이상 상처가 아닐 것이다.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의 모든 삶을 관여할 수도, 지켜줄 수도 없지만 아이가 가진 본연의 가치를 계속 알려주는 건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받는 아이로 자라도록 돕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우리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며 도움을 주는 것.
그래서 경쟁보다는 그저 협동하며, 그 친사회적인 모습을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백 마디 말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가 더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사교적이며, 똑똑한 엄마였다면 좋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자존감이 높지 않은 쓴 뿌리의 경험을 가진 불완전한 채로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나보다 더 괜찮은 엄마를 만났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참 쓸데없는 생각을 했냐고 할지 모르나, 그만큼 나는 평범하다 못해 참 자격지심이 많은 엄마였다. 아이들이 생기기 전에는 불완전해도 어른이 된 이상, 특별히 불편한 게 없었다. 그냥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으니 내 뾰족한 부분을 그냥 두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계속 노력하고 있다.
'내가 나를 제일 먼저 사랑해 주는 것'
'나의 권리를 지키는 법'
'나의 생각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
'가장 나다운 것'
그건 누구도 빼앗지 못할 나만의, 우리 아이들만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나의 삶을 산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나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