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단절 12년차(첫째를 가진 후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보냈으니 그정도 된 듯하다)인 나는 배울만큼 배운 여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기 전까지는 전문직은 아니지만, 전공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그동안 쌓아온 것들로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물론 고소득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었고, 나에게 있어 육아는 일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일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왔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동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정에 경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사는 그 시간 동안, 나도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아침에 2시간 아이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 일을 구했다. 내가 집에 없어도 우리 아이들은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모든 것을 내가 하려는 마음을 내려 놓는다. 분명 곳곳에서 아이들을 도와 주실 선한 손길들을 믿는다.
가정은 가장 가깝고 의지하는 공동체임과 동시에, 아이들은 아이들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남편은 남편의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의지하고 기대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각자 몫의 책임이 존재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들의 일을 하면서 각자 열심히 살아가야한다.
'엄마, 왜 공부를 해야 해요?'라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얘기해 주면 좋을까?
공부라는 것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또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익히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공부'라는 것이 성적을 잘 받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철천지 웬수일 수 밖에 없다. '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다!'하고 말이다. 하지만, 공부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물론, 그건 내가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공부일 때이고, 학생 때는 내가 관심없고 하기 싫은 것에 대한 공부도 잘 해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이다.
그렇다면 공부는 왜 해야 할까?
그건 나를 공부하는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하기 싫지만 이 과정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끈기와 노력은 1등이 아니라 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도 분명 나의 모든 삶 구석구석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엄청난 끈기와 노력을 들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잘 포기하고, 꼼수도 부리고(흑지에 빽빽이 숙제가 있으면 그냥 막 검게 칠했던 것 같다. 미술숙제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정적으로 욕심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 쟤가 잘하면 '오~ 축하'하고, 내가 잘하면 '오~ 그런 날도 있군!'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는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다. 뭘 하라고 하면 해야하는 줄 알고 했고, 머리를 쓰는 요령은 피우지 않았다. 정말 고지식했고,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었다. 그건 내가 육아를 하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더 편하고, 더 실속있는 방법보다는 그저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걸 따라갔다. 그 힘듦이 그닥 힘듦으로 느껴지지 않은 터다. 어쩌면 공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금은 미련스럽게,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조금은 꾸준하게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말이다.
나에 대해서 알고, 나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을 돌보면서 내가 더욱 자라남에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기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보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 사람일 수 있겠다. 그걸 일하면서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걸 믿어주어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설레임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40대 중반인, 소심한 엄마도 삶 가운데 반짝일 수 있으니, 엄마보다 백 배, 천 배 더 나은 너희들은 더 반짝반짝 꽃 피울 수 있을 거라는 걸 말해주어야겠다.
그렇게 우리 각자 잘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