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차이가 만든 프레임을 되돌려준 친구
나를 찾아온 두 손님
우울함과 무력함은 언제 찾아올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렸다고 생각될 때 사이좋게 세트로 찾아오는 것 같다.
설계도를 그리는 일을 하며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지'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던 시절, 나에게 내일은 그저 오늘의 반복일 뿐 그 어떠한 기대를 주지 못했다. 지독한 우울과 무기력 앞에서는 따스하고 반짝반짝해 보이는 행복한 삶을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들 그냥 사는 거지, 굳이 행복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가'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마음 붙일만한 다른 것을 찾는 것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스스로의 힘으로 거미줄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처럼 나를 묶고 있는 문제로부터 해방되고 구원을 얻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기도와 관심과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겨우 반갑지 않은 손님들을 내 삶에서 몰아내었건만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가장 친하고, 가장 오래된 친구
내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오래된 친구가 한 명 있다. 지금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1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한때는 1주일에 일곱 번을 만나기도 했다. 집이 가까웠던 덕분일까 밤이 얼마나 깊었든 전화를 걸어서 "야 나와~!" 말하면 만날 수 있었던 친구. 비가 오는 날이면 파전을 부쳐서 가져다주기도 하고, 전망 좋은 곳에서 담배 한 대 피우자며 차로 오십 분 걸리는 거리를 다녀오기도 했다. 카페에서 누가 더 헛소리를 잘하는지 내기하듯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를 몇 시간을 해도 즐거운 그런 친구였다.
교회에서 그냥 얼굴만 알던 사이에서 이 친구를 조금씩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 이후부터였다. 친구는 다들 두발 검사를 피해 어떻게든 머리를 길러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이미 중학생 때 화려하게 기를 만큼 길어봤기 때문인지 친구는 시원하게 머리를 밀고 다녔다. 그런데 웃긴 건 다른 애들은 밤톨 같은데 친구는 뭔가 잘 어울리고 멋있었다.
만약 선생님의 말씀과 부딪치는 부분이 있을 경우, 나는 불만을 표하고 부딪쳤다가 결국 혼나고 선생님 말씀에 따랐다면, 친구는 가만히 있다가 그냥 저지르고 이후에 후폭풍을 감당하곤 했다. 그런 올곧은 모습을 닮고 싶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우리가 어느새 20대 후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나 결혼한다~!"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친구의 여자친구도 전부터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커다란 놀라움은 아니었다.
"이야~! 이제야 네가 품절되는 것을 다 보는구나~!! 축하한다 축하해!"
좋은 짝을 만난 것을 기뻐하며, 친구의 결혼을 정말 마음을 다해 축하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서도와 라서의 차이
친구와 내가 워낙 친하게 붙어 다녔기 때문일까 친구의 결혼 발표와 함께 나에게도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어유~! 친구 결혼한다면서~!! 이제 어떡해~?!"
"네? 하하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데 축하해야죠!"
"혼자 처량하게 있지 말고 너도 빨리 가~!"
나와 친구를 아는 대부분의 연세 있으신 어른들의 반응은 모두 이런 식이었다. 친구가 시간이 있든 없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왔다. 닭갈비가 먹고 싶으면 혼자 닭갈비 집에 가서 먹었고, 노래방에 가고 싶으면 갔다.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를 봤고, 새벽에 불쑥 바다를 가고 싶으면 바다로 떠났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말할 때 '혼자서도' 밥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런데 친구의 결혼 발표 이후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말할 때, '혼자라서' 혼자 밥 먹고, 혼자 놀고, 잘 지내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건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서도'에서 '라서'로 바뀌었다.
나는 여태껏 남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반응이 있다한들 그런가 보다 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자기들이 뭔데 나를 판단해!'
'자기들이 뭔데 나를 동정하듯 안쓰럽게 여겨!'
'자기들이 뭔데 내겐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듯 말해!'
아주 길길이 뛰었다.
친구의 배려와 부탁
결혼 준비가 한창일 친구가 오랜만에 저녁에 좀 보자고 말했다. 양꼬치집에서 마주 보고 앉아서 그간 어찌 지내는지 근황들을 나누다가 마음속에 눌러두었던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올라왔다.
"결혼하고 축하받아야 할 건 너인데 왜 다들 나한테 와서 난리인지 모르겠어."
한번 열린 입은 잘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들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얘기하는 게 정말 짜증 나."
"그런데 웃긴 게 뭐냐 하면 계속 듣다 보니 정말 내가 안쓰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아..."
"하하하 거 참나 웃기는 사람들이네, 내가 어이없는 것 하나 말해줄까?"
친구는 테이블로 살짝 몸을 당겨서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정작 나한테 와서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음."
"어디다 말할지 번짓수도 제대로 못 찾는 사람들 말 신경 쓰지 마. 넌 그냥 너잖아!"
친구의 말을 통해 깨달았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사람들이 정말 없었든, 단지 나를 배려해서 그렇게 말해준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동안 나에게 다가와 친구의 결혼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른 몇 마디를 더 보탰던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축하를 받아 마땅한 친구의 결혼이었기에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있었다.
메아리도 마주쳐 울릴 산이 있어야 울린다. 답답함이 켜켜이 쌓여 높아진 마음 꼭대기에서 아무리 외친다 한들 마주쳐 울려줄 이가 없으니 혼자만의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맞은편에 서 있는 것만으로 내뱉은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그간 쌓인 모든 설움을 날렸다.
"내 자네에게 긴히 부탁 하나 함세...!" 양꼬치집을 나와서 친구가 한마디 했다.
"그래! 얼마든지 말해보게!" 친구와 자주 이런 말투로 말을 했기에 나 역시 흔쾌히 같은 말투로 얘기했다.
갑자기 내 주머니에 뭔가를 쑤셔 넣더니 멀찍이 떨어져 가며 허허 웃는다.
"야, 이거 뭐야!?"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내 보니 두툼한 봉투가 나왔다.
친구는 낄낄거리며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자네가 결혼식 사회를 좀 맡아주게! 자네 말고 내 누구에게 이런 부탁을 하겠는가."
"아니 그건 알겠는데 갑자기 이건 뭐냐고!"
갑작스러움에 얼이 빠져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친구는 멀어져 가며 말했다.
"그걸로 양복 한 벌 멋지게 해 입고 오시게~!"
좋은 자리에서, 자칫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말을 꺼냈다.
나는 감정이 먼저 앞서는 편이라, 목소리 높여 주장하다가도 설득되면 금세 그 주장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이었다. 반면 친구는 자기 원칙에 비춰 맞을 것은 맞고, 아닐 것은 아니라 했다. 그래서 늘 신뢰가 갔다.
자유와 선택을 외쳤던 나는 정작 시선에 흔들렸고, 조용히 제 길을 가던 친구는 늘 주변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붙잡아 준다. 그날 밤, '나를 아는' 친구 덕분에 마음속 반갑지 않은 두 손님(우울과 무력)은 문밖으로 물러나 나를 떠났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기억해 준 한 사람의 말(혹은 행동)로 무너진 자존감이 되살아난 경험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