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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아침의 식탁

말의 세기보다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by 유화
자취 생활의 청산


퇴사를 결정하였을 즈음 자취 생활을 마무리하고 본가로 들어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있었다. 독립의 3대 요소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공간인 만큼, 그 공간의 분리는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원주에서 고작 15km 떨어진 곳이었기에 커다란 변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아무리 작은 자유일지라도 일단 맛을 본 이상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군대에서 보낸 시절을 제외하고는 늘 집에서 학교나 직장을 오갔던 나에게 자취 생활은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과 더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계신 집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자주 부딪쳤던 문제는 바로 조반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 조반(아침밥)에 진심인 분이셨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뭘 먹으면 배가 아팠기에 늘 아침을 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 철썩!


이사 후 처음 맞이한 주말, 잠을 자다가 눈두덩이 와 뺨 언저리가 화끈했다. 기존에 살던 자취방보다 절반은 좁아진 방이었기에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친구가 쓰던 벙커 침대를 준다고 했을 때 넙죽 받았다. 그런데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누운 것도 아니고, 2층 침대에서 자다가 얼굴을 맞을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깜짝 놀라 아픈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난 나는 파리채를 들고 계신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조반 먹어라!"


몇 번이고 불렀지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손자를 깨우기 위해 허리가 구부정하신 할아버지의 선택은 파리채를 들고 보이지 않는 2층 침대를 향해 휘둘러 보는 것이었다.


놀람이 가시자 뒤늦게 찾아오는 것은 화끈거리는 아픔이었다.

"아니 자는 사람 얼굴을 이걸로 후리시면 어떡해요!"


"에잉~! 어여 나와서 조반 먹어!"

아무렇지 않게 돌아 나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소통을 위해 택한 수단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한 아름답고 좋은 기억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억의 아름다움 만큼 함께 생활하면서 오는 부딪침은 더 크게 느껴졌다. TV 드라마 속 조부모는 언제나 손주들에게 따스하다. 정 많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지지하며 때론 지혜롭고 현명한 조언을 해주시는 모습이다.


내가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부모와 관계가 좋은 지인들처럼, 도란도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계신 할아버지께서는 귀가 어두우셨기에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


말의 세기와 높낮이에는 사람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어떠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들리지 않아 몇 번이고 되묻는 할아버지께 같은 말을 세 번 네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크고 높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 할아버지 저 다녀왔습니다.

- 할아버지~! 저 회사 잘 다녀왔다고요.

- 아니 할아버지! 지금 회사를 간다는 게 아니고! 돌아왔다고요! 이제 돌아왔다고 인사드리는 거잖아요!


항상 마지막에 할아버지께 전달되는 문장은 이런저런 수식어와 감정이 덕지덕지 붙은 말이다. 이 말은 처음에 내뱉은 말과 다르다. 돌아서면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마음에 후회가 남는 말이다. 할아버지께 버릇없고 화가 많은 손자로 기억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소통을 위해 가지는 마음


집에는 할아버지와 나뿐이던 어느 주말 오후였다. 조용한 집에 낮게 울리는 냉장고 소리에 용기를 얻었을까 나는 할아버지께 가서 크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목소리로 여쭈었다.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으음?! 그래."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조반이 중요하세요?"

할아버지의 답변을 듣기 전에 나는 이어서 뒷말을 붙였다.

"저는 아침에 뭘 먹으면 그렇게 배가 아픈데, 제가 배 아프길 바라시는 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는 예전일을 회상하시는 듯 눈을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가난하고 많이들 어려웠어. 굶기도 많이 굶었지."

"아침도 못 먹고 일한 적도 많았단다. 그러면 하루가 힘들었어."


"그런데 '아침을 먹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아침을 먹은 것처럼 힘이 나. 그걸로 버티는 거야." 할아버지께서는 지금도 그게 신기한지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지금은 매일 아침을 진짜로 먹을 수 있으니까. 이 좋은걸 다 같이 먹으면 좋지 않겠냐..?"


나는 아침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저 할아버지의 고집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요즘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있건만 할아버지의 생각을 무작정 강요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밥'에 담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마주하니 가족들을 생각하시는 커다란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아침밥을 먹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크고 높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할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어쩌면 소통은 말에 세기와 높낮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열려있는 마음과 마음의 거리에 달린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고집'뒤에 숨은 사연을 듣고 나서, 관계가 달라진 순간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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