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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할까? 말까?

독립을 떠올린 이유

by 유화

"내 집에서는 내 말을 들어!"

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아버지와 심하게 부딪칠 때는 대개 언제쯤 일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여차하면 떨어져 나가도 살 수 있겠다 싶을 때'라고 말할 것이다. 방으로 돌아와 누워서 부지런히 스마트폰으로 자취방을 알아보는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집을 떠나면 안락하고 풍족하게 살 수야 없겠지만,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고 부모님의 간섭이 싫다면 독립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이야기는 친한 친구의 결혼 발표 이후, 반갑지 않은 두 손님(우울과 무력)이 아직은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을 때를 담았다.


아버지께 한소리를 듣기 전, 나는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주말엔 하루 종일, 평일엔 퇴근 후 새벽까지 드라마에 숨었다. 재미라기보다 생각을 잠재우기 위한 소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 나오셨다가 켜진 불을 보고 일찍 자라고 말씀하시길 며칠. 어떤 날은 화장실로 향하던 발걸음이 내 방 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 또한 눈은 드라마를 향해 있지만 발걸음이 멈추며 생긴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만약 재밌다는 드라마 하나에 꽂혔다면 그 드라마가 끝나면 이런 생활도 끝나련만, 마음에 헛헛함을 잊기 위한 회피로 택한 것이기에 무슨 도장 깨기라도 하는 양 끊임없이 다른 드라마를 찾고 또 찾았다. 누군가는 차라리 잠이나 푹 자는 것을 택하지 뭣하러 의미 없이 드라마를 보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냥 불을 끄고 누우면 머릿속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기에 포기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다가 피곤함이 극에 달했을 때 그대로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토요일 오후 한 4시쯤이나 되었을까 출출함에 슬금슬금 부엌으로 나왔다가 아버지를 마주쳤다. 그냥 몸을 돌려 들어가면 이상할 수 있으니까 냉장고에서 냉수 한 컵을 마시고 몸을 돌렸다.


"너 이리 와서 여기 앉아봐." 아이고, 아무래도 잘못 걸렸다.


"너 요즘 뭐 하고 지내는 거야? 이게 지금 제대로 사는 거라 생각해?!"

"아니 제가 출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셔요.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빨리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었기에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말짱 드라마에 빠져가지고, 누구 아들은 일하면서도 자격증 공부도 한다는데 아빠는 네가 걱정이다."

음? 드라마 얘기에 다른 놈이랑 비교까지? 이건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자세를 바로 하고 아버지를 응시했다.


"뭐 말짱 드라마에 빠져요? 아니 누군 드라마가 재밌어서 보는 줄 아세요? 잠을 못 자겠는데 나보고 어쩌라고요!" 갑작스럽게 언성을 높이자 아버지께서는 놀라신 듯 가만히 계셨다.


"그리고 비교할 사람이 따로 있지 걔 몇 살인데요? 저보다 많이 어리지 않나? 어린 녀석이랑 비교해서 그렇게 아들 속을 긁고 싶으셨어요?!


종종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지인 아들이 있다. 비교가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더 어렸던 누군가와의 비교는 내 자존심을 정면으로 긁어냈다.


"아무튼 이제 드라마 보지 말아라."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아버지는 단호했고 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내 집에서는 내 말을 들어!"

결국 아버지도 감정이 격해지셔서 언성을 높이셨다.


'하, 이젠 이런 말을 다 들어 보는구나.'

나는 몸을 돌려 내 방으로 향했다.


당황함 속에서 내뱉은 아버지의 이 말씀은 나는 앞으로 입 밖에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말이었다. 저런 말을 들었을 때, 벌벌 떨면서 '어이쿠 어떡하지?! 이제 아버지 말씀 잘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강압으로 얻는 순응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굴복하며 갈등의 불씨를 키우기보다는 터뜨릴 것이다. 내 집에서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은 곧 아버지의 집이 아닌 곳에서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섰기 때문이다. 나는 나갈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자취방을 검색하는 와중에도 컵에 담긴 콜라에서 기포가 올라오듯, 그동안 알게 모르게 느꼈던 서운하고 불편한 점들이 마음속에 쉴 새 없이 올라왔다.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자취방을 보러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말에나 시간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를 만난 것이다. 대화를 통해 거짓말처럼 나를 좀먹던 우울과 무력감으로부터 놓일 수 있었던 나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였다.


냉전이 시작된 지 어느새 1주일이 되기까지 나도 아버지도 선뜻 화해의 손길을 내밀 용기를 갖지 못했다. 이런 두 남자들 사이에서 어머니께서 고생하셨다. 아버지와 나를 모두 만나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듣고 중간에서 화해할 수 있도록 도우셨기 때문이다.


"아빠, 죄송했습니다."

"나도 미안했다."


가족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던 자리. 두 남자의 어색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말이 짧았을 뿐이지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이미 어머니를 통해 서로 전달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중간에서 이렇게 다리가 되어주는 존재가 없었다면 아버지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게 되었을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주장에 열을 올리는 것보다 먼저 상대방에게 내 사정을 설명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집을 떠나는 것은 조금 미뤘다. 이곳은 그 여유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익숙한 세상으로부터의 독립을 떠올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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