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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즐겁다

심야의 불빛과 소리 없는 기도

by 유화
사람들은 즐겁다


루시드폴의 '사람들은 즐겁다.' 한때, 나는 그 노래를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만이 잠들지 못한 채 내 안으로 깊이 침잠하던 밤이 있었다.



뭔가 다른 것을 해보려던 마음은 퇴사 후 몇 개월이 지나지 못해 무너졌다.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취업지원 패키지 과정을 수료하며 나는 직업전문학교에서 전산회계를 배웠다. 전산회계 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1급을 이어서 취득할지를 고민하던 나는 어떠한 벽을 느꼈다. 회사에서 뽑는 경리 직원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회계 부서가 따로 있는 기업은 이미 관련 학과 졸업자 및 세무, 회계 자격 등을 보유한 사람을 원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와서 마주한 결과였다. 건강을 이유로 첫 직장을 퇴사한 지 6개월이 넘었고, 집에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나는 조급함을 느꼈다. 그런데 마침 퇴사한 직장의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지냈어? 할 얘기도 있고 밥 한번 먹었으면 하는데 어때?"


어디서 온 연락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용건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근래에 연거푸 고배를 마셨기에 나를 찾는 연락 자체가 너무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 말씀해 주시면 나가겠습니다."




백수 탈출


며칠 후 부장님과 약속 당일. 나는 어느 일식 참치 전문점 앞에 서 있었다. 휴대폰 속 문자메시지와 음식점 간판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기를 몇 번. 이런 곳은 처음이었기에 어색함과,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런 곳으로 부르는지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나는 발을 내디뎠다.


"나랑 같이 일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나는 한동안 눈만 껌뻑이며 대리님을 쳐다봤다. 내 시선을 받은 대리님은 그저 참치를 응시한 채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회사가 많이 바쁘니 돌아와 달라는 말씀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다른 파트였던 나를 굳이 기계 파트 부장님과 대리님이 나와서 설득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한번 소개했지만 내가 다니던 직장에는 '기계설비와 기계 소방설비'를 담당하는 기계 파트 그리고 '전기설비와 통신설비, 전기 소방설비'를 담당하는 전기 파트 이렇게 두 개의 파트가 존재했다.


지금 상황은 기계 파트셨던 부장님은 이번에 본인 파트 팀원들을 데리고 나와서 회사를 새롭게 차리려는 상황. 전기 파트 담당자를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나를 영입하려던 것이었다.


"네가 불합리하게 느꼈던 것들 나도 일찍부터 느껴왔어."

잠깐의 침묵 이후 부장님은 말을 이어갔다.


"바꾸고 싶다면 아예 새로 만들어야겠더라고."

어느새 대리님도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고생을 안 한다는 말은 못 하지만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는, 그런 회사를 만들 거야. 함께하자."


순간 나는 부장님의 너무 유창한 말에 부업으로 약장수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사로잡혔고 새로운 회사의 창립 멤버로 함께 한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전 회사를 퇴사하며 직원들에게 다시는 설계는 안 할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새로운 회사에서 함께하기로 마음먹자 내심 반역에 가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나도 백수 생활을 청산해야 했으니 내 코가 석자였다.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창립 멤버가 되어 새롭게 시작한 이후 바뀐 것은 간판뿐이었다. 전보다 연봉이 조금 올랐을 뿐, 신생 회사라는 것을 이유로 시스템 나에게 더 많은 열정을 강요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밤을 잃었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여동생과 둘이서 자취를 했다. 부모님은 편찮으신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집을 정리하고 들어가셨고 우리는 원주에 남은 것이다. 원동 주공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꼭대기 방 2개 딸린 13평 아파트가 우리 집이었다.


월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동이체로 빠져나간 공과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건드리지도 못한 채 몇 개월간 통장에 쌓아두고 보니 내겐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찾아오는 공허함에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나와 동생은 같은 공간에 살지만 교류가 없었다. 내가 출근할 때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내가 퇴근할 때는 이미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볼 수 있는 동생의 흔적은 TV가 있던 내 방바닥에 떨어진 긴 머리카락뿐이었다.


언젠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던 날, 거리에서 아직 문을 닫지 않고 영업하는 음식점의 모습들이 낯설었다. 오랜만에 들뜬 기분 때문인지 거리에 퍼진 피자 냄새 때문인지 나는 불고기 피자 라지 한 판을 주문했다. 동생과 같이 먹을 생각에 5층까지 계단을 눈 깜짝할 새에 올랐다.


"야~! 자냐~!? 나와봐 피자 한 판 사 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쳤지만 불 꺼진 집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속도 안 좋고 피곤해서 안 먹을래. 오빠나 먹어."

이윽고 들려온 동생의 말. 속이 많이 좋지 않은지 나와보지도 않는다.


내 방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앉아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직 따끈따끈한 것이 치즈가 죽 늘어났지만 거리에서 내 발을 잡아끌었던 향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맛도 없네..."


목이 메어 한 조각을 다 먹지 못하고 내려놓으며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당장은 답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침대 밑에 더듬어 숨겨둔 소주 한 병을 꺼냈다. 오늘은 또 몇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까.




불면증


나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퇴근 시간과는 상관없이 늘 새벽 4~5시가 되어야 잠이 들곤 했다. 머리는 마치 잔뜩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 나아졌다. 이렇게 매일 치르지 않고 미뤄둔 대가는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지독한 편두통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하루 종일 머리를 쪼개는 듯한 통증에 나는 약을 먹고, 볕이 들지 않도록 방을 어둡게 만든 채 누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밤마다 들리는 째깍 거리는 소리 때문에 건전지를 빼서 구석에 처박아둔 벽시계가 보였다. 소리는 멈췄지만 밤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발코니로 나와 바깥 창문을 열었다.


- 치직 치직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켜는 라이터 소리가 밤공기를 울린다. 들이마신 한숨은 내뱉을 때 비로소 뿌연 담배연기와 함께 그 깊이를 보인다. 눈앞에는 5층짜리 야트막한 아파트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훨씬 높은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불 꺼진 아파트를 올려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생각에 잠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수많은 사람들,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평온함 속에 잠을 이룰 사람들. 하지만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면 외로움이 몰려온다. 고요한 어둠 속에 깨어 조용히 밖을 바라보는 이 순간에 나는 온전히 혼자다.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며 귀에는 조용히 이어폰을 꽂은 채 루시드폴의 노래를 듣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이 노래는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들린다. 세상에는 시선을 잡아끄는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하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소음들이 가득하다.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매일같이 일뿐인 삶은 재미없었다. 하지만 이런 삶도 자세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보아주고 친히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을까. 매일 밤 외로움 속에서 나는 수많은 외침을 삼키며 소리 없이 기도했다.




나만이 알던 위로와 새로운 시작


이전과는 다른 회사를 만들겠다던 사장님은 변했다. 직원들이 풀로 야근을 해서 나가는 비용이 사람을 하나 더 구하는 비용보다 싸게 먹힌다면 직원들을 갈아 넣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 알겠어 사람 구해줄게! 구해주면 되잖아!"

퇴사 얘기를 꺼냈더니 내려가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얘기하자던 사장님이 선심 쓰듯 말했다.


하지만 이미 못 볼 꼴을 많이 보았던 내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만약 설계 일을 계속했을 경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봤지만 잘 풀려야 지금 사장님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내가 원한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


"사람 구하려면 두 명 구하세요. 저는 나갈 테니까요."

내가 이 말을 내뱉고 얼마가 못되어 사장님은 새로운 직원을 구했다. 구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 그만둔다던데 이유가 무엇인지 새로운 직원이 내게 물었다. 이 길의 끝에 달콤한 열매가 있다면 버티겠지만, 이 길은 끝끝내 나에게 달콤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했다. 결국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시원섭섭하게 웃을 뿐이었다.


2개월 동안 인수인계를 마치고 1년 3개월 만에 나는 다시 퇴사했다. 회사 문을 나서며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비로소 풀리는 기분이었다.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했지만 내가 들이쉬는 숨이 폐부를 맑게 채우고, 피가 온몸을 돌았다. 비록 넘어지고 깨져도, 죽지 않는 이상 나는 다시 일어나 내 길을 찾을 것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매일 밤 나는 기도했다. 술, 담배 그리고 기도.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것이 내가 버티는 방법이었다. 나는 고고한 모습으로 죽는 것보다는 비록 추한 모습일지라도 발버둥 치며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것을 택할 것이다.


지금도 가끔이지만 그 시절을 떠올린다. 혼자라고 느꼈던 깊은 밤, 우리 동 맞은편 작은 방 창문에 빨간 불빛이 보였다. 밤공기 위로 얇은 연기가 피어난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 깨어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 후 매일 밤 창문을 열고 말없이 기도하며, 눈으론 그 작은 불빛을 얼마나 기다리고 찾았는지 아마도 그는 모를 것이다.



모두 잠든 밤, 무엇이 당신을 끝내 버티게 했나요?

창밖의 작은 불빛이나 한 곡의 음악처럼, 말 대신 다가온 무언가에 위로받은 순간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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