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보다 더 빨랐던 말의 전염
한창 바깥에 나가서 노는 것이 즐거울 아이들에게 최고의 벌은 바로 외출금지일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상당한 개구쟁이였다. 수많은 말썽 중에서 지금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을 얘기하자면, 집안에서 공을 던지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현관을 나와서 공용 복도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테니스 공을 던지고 놀았다. 그때 내가 느끼기에는 꽤 높은 곳에는 EL 벽부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저기까지 공을 던져서 맞출 수 있다면 정말 힘세고 멋진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꽤나 오랜 시간 공을 던졌고, 마침내 공이 등을 감싸고 있는 유리 글로브에 맞는 순간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우유 색깔의 글로브가 너무도 맥없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혼날까 봐 전전 긍긍하면서도 먼저 부서진 유리 조각을 조심스레 손으로 한 곳에 모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께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내게 먼저 괜찮냐고 물으시고는 빗자루를 들고나가셔서 유리조각을 모두 치우셨다. 관리사무실에 다녀오시고는 앞으로는 좀 더 안전하게 공놀이를 하도록 주의를 가셨다.
이렇게 따뜻하고 인자하신 어머니도 나에게 벌로 외출금지 1주일을 주신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입에서 처음으로 욕설이 나왔을 때였다. 그 시절에는 한창 '줄팽이'가 유행이었다. 플라스틱, 고무, 철, 깡통 등 다양한 재질의 팽이에 줄을 감아서 돌리고 팽이 싸움을 해서 끝까지 살아남는 팽이가 이기는 것. 그 당시 너무 재미있어서 집에서 팽이와 팽이 줄만 챙겨나가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놀 수 있었다. 때문에 반질반질한 도끼다시 바닥의 아파트 1층 현관은 언제나 단지 아이들의 사교클럽이라 할 만큼 붐볐다.
그런데 이 사교클럽에서는 문방구 신상 팽이의 디자인 평론과 팽이 줄의 길이에 따른 회전력이 증가하는 연구를 비롯하여 각 가정의 안부를 주고받는 것 외에도 다른 교류가 있었으니 바로 신문물을 접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애송이들인 우리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심심한 형들도 팽이를 치러 왔기 때문이다. 나는 형들이 무서워서 별로 말도 안 해봤지만 형들과 자주 얘기하던 친구가 있었다. 형들이 모두 축구를 하러 간다며 떠나고 우리들끼리만 남았을 때 친구는 팽이 싸움을 하다가 자기 팽이가 죽자 안타까움에 소리쳤다.
아 ㅅㅂ!
그곳에 있던 우리 모두 눈이 동그래져서 친구에게 그것은 무슨 말인지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형들에게 배운 말이라고 대답했다.
뭐가 잘 안 되거나, 화가 나거나, 아쉬울 때 하는 말이야.
크게 외칠수록 자기 기분을 강하게 표현하는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친구는 으스댔다. 계속해서 욕을 내뱉는 친구가 이제는 '우리'라는 구시대를 저버리고 '형들'의 신시대를 향하는 아방가르드적 정신을 가진 고독한 선구자처럼 보인 것일까. 이제는 너도 나도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팽이를 잘못 던져도, 줄이 잘 감아지지 않아도, 내 팽이가 죽어도, 내가 이겨도 어느새 아파트 1층은 너도 나도 내뱉는 욕설로 시끄러워졌다.
나 또한 팽이 싸움을 하기 위해 팽이 줄을 바닥에 대고 밀다가 내 팽이가 죽어버리자 욕설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뒤에서 소리쳐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경악과 참담, 걱정과 분노가 모두 섞여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내가 외출금지 1주일의 벌을 받은 이유였다. 어머니께 혼나고 1주일의 시간 동안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면서 욕설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배웠지만 이것은 새로운 배움으로 쉽사리 덮이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뉘우치고 욕설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보시지 않는 곳에서는 그것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와 같고 스펀지 같아서 경험하는 것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흡수한다고들 말을 한다. 아이를 외부와 소통을 제한한 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모님의 계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바뀌지 못한 아이의 잘못인 것일까. 세상에는 욕설이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상황과 기분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을 보면 개인의 의지에 달린 영역이라는 생각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큰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빠르게 흡수한다. 한번 습관이 되어버리면 그것을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 배울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에 무엇을 배우는가는 참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 고치고 싶은 습관 하나와 새로 들이고 싶은 습관 하나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