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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분배를 넘어, 기꺼운 나눔으로

중앙집권 간식 경제의 붕괴

by 유화


간식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나도 그랬고, 내 동생도 나와 동일했다. 어린 시절 나와 내 동생은 간식을 먹는 방식이 달랐다. 나와 동생은 세 살의 터울이 있다. 나는 과자를 한 봉지 뜯어도 엄청 아껴서 먹었다면, 동생은 맛있다며 앉은자리에서 금세 다 먹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맛있으면 간식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아껴서 먹을 법도 하건만 동생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다 먹고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울어버리는 것으로 손쉽게 부모님을 자기편으로 만들면 되었으니 말이다.



착하지~! 네가 오빠니까
동생한테 좀 나눠줘.



늘 참았던 나는 늘 참지 않았던 동생에게 남은 간식의 절반을 줘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공산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따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개인의 사유재산(간식)을 인정하지 않는 이 중앙집권적(부모님) 계획경제 아래에서 자행되는 자원 배분의 폐해를 마주했고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예찬론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간식을 숨겨두고 몰래 하나씩 꺼내서 먹기도 해 봤지만, 이미 자기 간식을 다 먹어버린 동생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에 간식을 숨겨두고 먹는 나의 노력은 늘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께서 포도맛 마이구미 젤리를 한 봉지씩 사주셨던 날이었다. 여전히 동생은 젤리를 맛있게 먹었고, 나는 그런 동생의 먹는 속도를 힐끗거렸다. 평소의 나라면 입안에서 젤리를 넣고 녹이면서 젤리가 살짝 갈라질 때까지 입안에서 굴렸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역시다 동생은 봉지를 열면 멈추지 않았다. 내 마음은 급해졌고, 이대로 간다면 또 아껴먹으려던 내 간식은 반 토막 날 것이 자명했다. 결국 동생이 마지막 젤리를 먹는 순간 나는 아껴둔 젤리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많은 젤리를 한 번에 씹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태연하게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동생의 눈앞에서 빈 봉지를 탈탈 털어 보이는 것에서 내 간식을 지켜냈다는 후련함과 묘한 고소함을 느꼈다. 그런데 동생은 빈 봉지를 보고는 너무도 깔끔하게 포기했다. 당장 울면서 달려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또 내 간식을 강탈해야 하는데, 그때 나는 최대한 애석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도 다 먹어버려서 안타깝게도 네게 줄 수 없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 내 계획이었는데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입안에 잔뜩 털어 넣은 젤리는 엉겨 붙어 한 덩어리가 되었고 씹는 것조차 어려웠다. 입안에 있는 커다란 젤리를 따라잡고 싶었던 것일까 눈에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조금씩 꺼내 먹을 때 느껴지던 달콤함은 없다. 아직 남아있는 봉지를 열어볼 때의 흡족한 기쁨도 없다. 오로지 동생에게 나눠주지 않겠다는 일념은 나에게 참 아프게 돌아왔다. 나는 맛있게 간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입에 간식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을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날의 충격 이후로 나는 간식을 빨리 먹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나눠주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냥 울어버리는 것을 택했다. 이것은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의 자원 배분에 대항하는 나의 저항이었다.



이럴 거면 나 오빠 안 할 거야!
나도 먹고 싶어도 아껴먹으려고 참았단 말이야!



매번 마지못해 징징거리면서도 나눠주던 내가 통곡을 한 탓일지 부모님께서는 그 후로 동생이 간식을 다 먹고 내 간식을 빼앗아가는 것을 막아주셨다. 그렇게 내 간식을 보장받게 되자 이제는 부럽게 쳐다보는 동생에게 간식을 나눠줄 마음이 생겼다. 나는 아직 남아있는 간식들 중에서 조금을 동생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인데 환하게 웃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 멋진 오빠라는 말씀을 듣게 되니 어깨가 으쓱하고 기뻤다.


진짜 나눔은 강요가 아닌 선택에서 시작된다.


타인에 의한 분배가 아닌,

자의에 의한 나눔.


진정한 나눔 속에서 더 큰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이구미 한 봉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더불어 이 모든 것은 부모님께서 간식의 사적 소유를 인정해 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나눔을 배우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까. 참 감사한 일이다.



진정한 나눔을 가능하게 한 '보장된 내 몫',

당신의 인생에서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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