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로 지은 내 세상 (상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향하는 열쇠는 바로 '경비실'이다. 경비실이라는 단어는 나를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의 어떤 집으로 데려간다. 그곳이 방학동인지 아닌지 어린 나는 당연히 알 수 없었으나 훗날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요즘 LED전등은 상당히 밝지만 그 시절 전등은 켜져 있음에도 지금과 같은 밝기는 아니었다. 이런 불빛 아래서 책을 본다면 눈이 나빠진다고 부모님들이 말씀하실 딱 그런 침침함이 있었다. 바닥에는 요가 깔려있었고 부모님은 그 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이불을 둥글게 말아서 15-20cm 정도의 벽을 세우고는 그곳을 경비실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아파트에 살았던 것도 아닌데 나는 어디서 경비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까? 아무튼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이불을 말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어떤 부분은 살짝 눌러서 창문을 만들었고, 또 어떤 부분은 손으로 네모난 주름을 만들어 서랍장을, 한쪽 귀퉁이에는 인터폰까지 만드는 등 나름 엄청난 공을 들였다. 혼자서 인터폰을 받는 시늉을 하며 대답을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아놓은 이불이 완전히 겹치지 않은 부분은 문이었다. 출동을 하고 방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와서 다시 인터폰을 받고, 서랍장을 만지작거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문제는 한참을 재미있게 놀던 중 발생했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엄마가 '아 몰라 난 잘래'를 외치시며 이불을 덮고 누우신 것이었다. 출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내 눈앞에 공들여 만든 경비실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내 경비실!'을 외치며 울어버리는 내 모습에 당황하신 부모님은 나를 달래기 시작하셨다. 내가 울면서 내뱉는 단어들로 정황을 이해하신 아빠는 다시 이불을 아까처럼 둥글게 말아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 경비실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내가 만들었던 창문도, 서랍장도, 인터폰도 없었으며 심지어 드나들 수 있는 문도 없었다. 그것은 그냥 둥글게 말아놓은 이불일 뿐이었다.
피곤하실 텐데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님은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어르고 달래는 것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는지 경비실을 돌려내라며 울던 나는 결국 아빠에게 혼나고 나서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아직 울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훌찌럭 거리는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내가 만든 창문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출동해서 길을 잃어버린 강아지도 집을 찾아주고, 무거운 짐을 들고 길을 가시는 할머니도 도와드렸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잠이 들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상실을 경험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어른의 눈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담긴 아이의 눈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는 내가 만들었던 경비실을 똑같이 만들 수는 없다는 것. 그렇기에 내 경비실은 이제는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겪었던 이 '무너진 경비실'의 기억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알려주는 깨달음이 되었으며, 또 다른 경비실을 만들게 하는 도전이 되었다.
안녕, 나의 경비실.
고마워, 나의 경비실.
당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여는 열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