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이야기가 되기까지
순간이 의미를 가질 때 기억이 되고, 기억에 자신의 삶을 담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모든 남자는 누군가의 아들이다. 나도 그렇다. 이 책은 한 아들의 순간과 기억, 그리고 이야기에서 시작해 각자의 마음에 닿으려는 여정이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의 경험들로 이루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의미를 갖지 못한 대부분의 순간은 사라지지만 순간이 의미를 가질 때 기억이 되고, 기억에 자신의 삶을 담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평범한 기억'과 '이야기로 완성된 기억'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나간 카드 값에 놀라서 명세서를 확인한 적이 있을 것이다. 놀란 이유가 무엇이던가. 결제할 때마다 금액에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닌 기억, 명세서를 보며 떠올리려 노력해야 비로소 떠오르는 기억이 바로 평범한 기억이다.
하지만 이야기로 완성된 기억은 다르다. 누군가는 '비 내리는 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보며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잠들어있던 기억을 깨우고, 빛바랜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그 시절 그 순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를 녹일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기억은 이야기가 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이야기 중에는 언제 들어도 좋은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먹먹한 그리움에 눈물짓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느껴지는 슬픔과 고통에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만 마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자석이 분리되면 또 다른 자석이 되어 서로를 끌어당기듯. 이야기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불쑥 우리를 끌어당기곤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 속담은 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조각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다.
우리 스스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청자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게 되는 독자이다. 그저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 숨겨진 여전히 그 시절, 그 순간에 멈춰있는 자신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 하얀 종이 위에 나의 이야기를 적는다.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온 그저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것이 여러분에게 그저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은 통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야기마다 작은 돌멩이로 화하여 여러분의 잔잔한 마음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순간을 간직한 나의 조각들을 녹여 담았다.
잔물결이 고요함 속으로 가라앉았을 때,
이제는 당신의 이야기를 마주하길,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