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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고, 선명한 사랑

괜찮다고 했지만 실은 무서웠다.

by 유화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가 정말 일찍 마친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나와 아파트 단지 하나를 관통하고 사거리 횡단보도만 건너면 위치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매일 하교할 때 아이들을 데려다주셨다. 아이들을 2열 종대로 세워 '참새 짹짹'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삐약' 등을 외치며 걷게 하곤 했는데 이러한 하교 코스는 엄청 금방 갈 수 있는 우리 집을 아주 커다랗게 ㄷ자를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모든 아이들을 선생님께서 데려다주셔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선생님은 함께 하교할 아이들을 파악해서 인솔하여 가시고 나머지 아이들은 마중 나오신 몇몇 학부모들과 삼삼오오 따로 하교를 했다.


나 또한 종종 학교 앞에 사는 친구와 함께 따로 하교를 하곤 했는데 그날이 그랬다. 친구와 공룡 얘기, 만화영화 얘기를 하며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다. 바로 차가 나를 덮친 것이었다. 인도에서 걸어가던 나를 자동차가 경계석을 뛰어넘어 덮쳤다면 어마어마하게 큰 사고였을 테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인도가 끊긴 부분을 걸어가던 중, 공교롭게도 주차장에서 서행하며 나오던 자동차 앞바퀴에 다리가 깔리면서 넘어진 것이다. 왜 넘어졌는지 영문도 모르던 내 귓가에는 내 발목을 넘지 못해서 부앙 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소리친 탓에 운전하시던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서 차를 후진하셨고 나는 경계석에 쭈그려 앉아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어디 사냐, 아프냐, 괜찮냐 등의 질문들이 쏟아지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어휘를 사용하여서 내가 괜찮다는 것을 설명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 소음이 겨우 잦아들었을 때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도 어느새 먼저 집에 갔는지 없고, 운전자 아주머니만 계실 뿐이었다. 아주머니께서는 계속 괜찮냐고 물으시며 병원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괜찮은데 뭘 자꾸 병원에 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놀란 가슴이 아직 두근거렸기에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머니는 나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던 노력의 2배 이상의 노력을 들여 아주머니를 설득했다.


"아줌마 저 정말 괜찮아요. 보세요. 잘 걸어 다니죠? 멀쩡하잖아요."

"여기 살짝 까진 것은 후시딘 바르면 금방 나아요."


거의 후시딘 만병통치설을 계속 외친 덕분일까. 지속된 설득에 올려다본 하늘은 분명 구름 한 점 없는 파란빛이었지만 내게는 노랗게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며 오는 길에 바깥에서 놀다가 들어온 척을 하려던 계획은 나를 보자마자 '너 괜찮니?!' 외치는 엄마의 모습에 보기 좋게 무너졌다. 놀라고 겁을 먹었던 마음이 녹는 것 절반과 주위를 잘 살피지 않아서 자동차에 깔려 넘어졌다는 사실에 혼날 걱정 절반으로 내 마음은 복잡했지만 곧 집과 엄마가 주는 따스함이 퍼지며 안정을 찾았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며 나는 경찰서에 있었다. 처음 보는 경찰서 내부의 모습과 시끄러운 소리들. 엄마와 아빠는 아까 내게 약국에서 후시딘을 사주셨던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고, 아주머니는 뭐라고 말씀하시면서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던 것이지만 그날 같이 하교하던 어머니 중 한 분이 내 사고를 목격하시고 차량 번호를 바로 적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고, 나는 잘 도착했는지 어디 아프다고는 하지 않는지를 엄마에게 물어보신 것이었다. 엄마는 당연히 깜짝 놀라셨고, 아직 도착하지 않는 나로 인해 애간장을 태우시던 중 내가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고 시간이 꽤나 지났음에도 아직 전화 한 통도 없는 아주머니를 뺑소니로 신고하기 위해 차량번호를 가지고 아빠와 함께 경찰서를 찾으신 것이었다.


이 사건은 내가 살짝 까진 것 외에는 별로 다치지 않은 것과 지속적으로 아주머니에게 괜찮다고 설득하였던 모든 정황으로 인해 큰 일로 번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보다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느꼈다. 주위를 잘 둘러보지 않은 것을 혼내시는 것이 아닌, 그저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가 나올 만큼 내가 두 분에게 참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향하여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보호를 기대하고 의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은 그 믿음을 더 이상 근거 없는 부실함과 막연함으로 두지 않는다. 부모님이 보여주고 표현하는 사랑은 아이들의 믿음과 신뢰를 사례에 기반한 탄탄한 확신 위에 서게 한다.


부모님의 사랑은 아는 것으로 시작하여 믿게 되는 것일까, 믿는 것으로 시작하여 알게 되는 것일까. 아는 것과 믿는 것. 무엇으로 시작하든 그 사랑은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는 가장 밑바닥 기초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 깊은 사랑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린 날 ‘괜찮아요’ 뒤에 숨긴 진짜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스스로 ‘괜찮다’고 버티는 아이에게, 지금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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