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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은 끝나고, 소중함이 시작됐다.

아픔 없이 소중함을 알 수 있었던 축복.

by 유화

집에 동생이 있는 형, 누나, 오빠, 언니라면 동생들을 놀리는 재미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동생 놀려주기에 진심인 사람으로, 동생을 놀리면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그 반응을 보는 재미에 그만둘 수 없었다.


언젠가 가족들이 외식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상에는 몇 가지 밑반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고추냉이도 있었다. 덜어 놓은 모습은 대충 수저로 떠서 그릇 벽면에 대고 수저를 뺀 모습이었는데 언뜻 보면 아이스크림 메로나가 떠올랐다. 나는 동생에게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는 않냐는 말을 시작으로 빌드업을 해놓고 "우와 저건 메로나 아냐?!"라고 과장되게 말하며 종지에 담긴 고추냉이를 가리켰다. 저번에 먹었던 메로나 정말 맛있지 않았냐는 내 말에 동생은 고추냉이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동생은 그대로 입에 고추냉이를 문 채로 울어버리고 나는 엄마한테 정말 많이 혼이 났다. 그래서 혼이 났던 기억만 남고 정작 우리가 무엇을 먹으러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동생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장난을 치다가 오히려 내가 너무 놀라고 무서웠던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이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살았는데 방학이 되면 나와 동생은 할머니 댁이 있는 시골에 내려가서 지내곤 했다. 할머니 댁 고모 방에는 침대가 있어서 매트리스 위에서 방방 뛰기도 하고, 잠자리 채를 들고 밖에 나가면 잠자리도, 메뚜기나 방아깨비도 신나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 며칠이야 재미있지 이 생활도 계속되면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뭔가 재밌는 것 없을까 싶던 어느 날 동생과 나는 베개 싸움을 하던 중 동생은 의도치 않게 내가 휘두른 베개를 피하며 나에게 카운터를 먹였다. 우습게 얕봤다가 한대 제대로 맞은 나는 제대로 한방 먹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동생을 향해 온 힘을 다해서 베개를 휘둘렀다. 그렇지만 방바닥에 떨어진 부드러운 재질의 보자기를 밟는 바람에 회심의 일격은 전해지지 않았고 나 혼자 볼성사납게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쿠당탕!)



"앗! 오빠 괜찮아? 어떡해, 아프겠다."

동생은 나를 걱정했지만 혼자서 바닥을 구른 것이 창피해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이 기회를 살려서 기막힌 장난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저...여기는 어디죠? 그리고 당신은 누구신가요?"

"아 무슨 말이야, 오빠 왜그래? 장난치지 마!"

나는 동생에게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금 제가 누구인지도 기억나지 않아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이게 장난 같아요? "

"아, 어떡해.... 미안해 오빠."

오빠의 심각함이 전해진 것인지 동생의 얼굴에 실실 웃던 입가에 웃음이 어색함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오빠 동생 ○○이야 그리고 여긴 우리 할머니 집인데 같이 베개 싸움 하고있었어."

"그래 나보다 동생이라고 하니까 말을 편하게 할게. 할머니라는 분을 좀 뵐 수 있을까?"

물론 할머니가 계시면 금세 혼나며 장난은 끝이 났겠지만, 할머니께서는 밭일하러 나가셨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지금은 집에 안 계신데, 아! 우리 사진 있어 가족사진!"

동생은 나를 이끌고 거실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우리 할머니 그리고 이게 나고, 오빠는 여기!"

"이게 나라고? 하나도 안 닮았는데?"

정말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해주는 듯한 동생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나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아니 가서 거울 봐봐 똑같잖아?"

"너는 지금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나를 속이려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내 진짜 가족을 찾아 떠나야겠어!"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나를 붙잡고 어디 가냐며, 진짜로 우리는 오빠 가족이라고 말하는 동생을 떼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동생은 나를 쫓아 신발을 신고 뛰어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 골목골목을 지났다. 너무 빨리 달리면 동생이 달리는 것을 포기할 것 같아서 느리게 달리기도 하고 뭔가 기억이 돌아올 것 같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면 동생은 다시 힘을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어놀다 보니 어느새 잠자리와 메뚜기를 잡고 놀던 논밭을 지났고 커다란 언덕도 하나 넘었다. 그런데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빨리 달렸나 싶어서 언덕을 되돌아 올라갔다.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동생을 놀리며 뛰어다녔던 논밭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콩닥콩닥을 넘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머릿속에서는 경종이 울렸다. 동생을 잃어버려서 할머니나 엄마에게 혼나겠네 정도가 아니라 동생을 잃어버린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한여름 소나기와 함께 찾아오는 먹구름처럼 나를 덮기 시작했다.


왕 거미가 산다고 동생에게 겁을 주었던 나무를 지났다.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개 짖는게 무섭다고 했던 빨간 대문 집도 지났다.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나는 동생을 잃어버린 것을 인정했다. 눈물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통곡하며 "오빠가 잘못했어"라는 말만을 외치면서 마을 골목골목을 뛰어다녔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할머니께서 점심즈음에 집에 오시겠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집으로 달려갔다. 어서 가서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함께 동생을 찾아야 했다.



할머니 큰일 났어요. 제 잘못이에요!
○○이를 잃어버렸어요. 같이 찾으러가요!



문을 열고 들어와 울면서 외치는 나를 보시며 할머니께서는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그러고는 부엌을 쳐다보셨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열무김치랑 밥을 먹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너 어떻게 된거야? 길 잃어버린거 아니었어?"

동생을 제발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간절함만으로 달려왔는데 우물우물 밥을 먹으며 나를 쳐다보는 동생의 모습을 마주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 울면서 오빠 따라다니다 보니 갑자기 너무 배가 고파서, 밥부터 먹고 찾으러 가려 했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동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소중한 것은 없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한여름 소나기와 함께 찾아온 먹구름은 맑은 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는 금방 지나가는 것처럼, 동생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


최악의 결과를 통해 느껴지는 아픔이 없이 소중함만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겪었던 일화를 글로 적으면서 발터 벤야민의 글을 떠올렸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신체에 동화시키고자 하는 욕구다. 그것은 감정이입이 아니다. 독자는 주인공의 자리에 자신을 전치시키지 않고, 자신에게 부딪쳐오는 것을 동화시킨다. (중략) 직접 겪는 대신 읽으면 유익한 체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체험들은 많은 이에게 몸에 맞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마주칠 경우 사람을 파멸시킬 것이다. - by 발터벤야민, 사유이미지 中



실제로 동생을 잃어버렸고 찾지 못했다면 이 경험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기억이 아닌 사람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끔찍한 기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 살아가는 삶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쩌면 소설과 같을 수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 속에 독자를 세우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이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 글을 읽으면서 저마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부딪쳐오는 소중한 것들을 마주하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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