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라면 찾잔 속 파리를 어떻게 했을까
#찻잔 속 파리_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영성을 내가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일이며, 나 자신 못지않게 다른 존재들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문제가 있으면 나 자신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 p22
류시화 작가는 퀘렌시아가 여행이라고 여길 만큼 여행을 즐기는 진짜 여행가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처음 인도와 네팔을 여행할 때, 명상 센터에서 모기의 목숨을 건 명상 에피소드를 전하며, 환경운동가이자 심층 생태학자인 조애나 메이시가 인도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미국 평화 봉사단의 일원으로 티베트 난민 공동체에서 활동할 당시의 일이다. 그녀는 난민들을 도와 티베트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생활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양모 카펫 사업 승인을 얻기 위해 티베트 승려들과 회의하고 있는 도중에, 파리 한 마리가 그녀의 찻잔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벌레나 곤충들이, 찻잔이든 어디에도 들어가는 일들이 흔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린포체가 참여한 어려운 자리에서는 태연스럽게 모른척하고 마시기에는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그녀는 저개발 국가 여행 경험이 많은 여행가였기에 위생 개념을 집착하는 편이 아니었다. 옆에서 그녀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던 티베트 승려인 최걀 린포체에게는 문제없음을 알리며 안심시킨다.
“노 프라블럼”
“단지 내 찻잔에 파리가 빠졌을 뿐, 건져내고 마시면 돼요.”
의자에서 일어난 최걀 린포체는 그녀의 찻잔에서 파리를 조심스럽게 건져 밖으로 나갔다. 문밖의 나무 잎사귀 위에 파리를 올려놓고, 날갯짓하며 날아가길 기다렸다가 들어온 것이다.
“파리는 이제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조애나 메이시 생태학자는 저서『내가 사랑한 세상』에서 이 일화를 전했다고 한다. 자신은 문제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었다면, 최걀 린포체의 기준은 파리에게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생명의 기준이 높은 곳에 있는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린포체는 아주 낮은 곳에 있는 파리였다. 이로써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류시화 작가는 전한다.
노 프라블럼의 기준을 나에서 타인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로 전환하는 것.
‘나’에게서 ‘모든 존재를 포함한 더 큰 공동체’로 사고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
‘나’의 자리에서 ‘세상’을 앉히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라고 말한다.
최걀 린포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당신도 괜찮은가요?”
“당신도 이 세상이 살 만한가요? 당신도 행복한가요?”
라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서울역 근처 식당에서 일이다. 남동생과 먹고 있던 뜨거운 전골냄비 속에 파리가 들어있었다. 몇 숟가락 떠먹던 나는 동생의 눈치를 살폈다. 재빨리 파리를 몰래 건져내고 아무 일 없는 듯이 먹으려고 애썼다.
맛있게 먹고 있는 동생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파리가 빠진 것을 알면 물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꼭지를 읽으면서 그때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라는 저자의 말이 지문처럼 남는다.
※린포체-
티베트 불교에서 전생의 수행을 이어 다시 태어난 고승,
즉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는 환생자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