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솔길을 따라 꿈속을 걷듯이
#짐 코벳 이야기'_과정이 즐거웠는가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지'라는 말은 트레킹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진리이다. 사실 전 세계의 산과 정글 속에서 행해지는 트레킹의 진정한 의미는 목표 지점에 서둘러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정의 매 순간을 즐기고 감동했는가'에 있다. 그 즐거움과 감동이 고난을 불사른다. p35
짐 코벳은 영국령 인도제국 당시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령 케냐에서 생을 마친 영국의 전설적인 사냥꾼이자 저술가, 환경주의자이다. 그 당시 북인도 쿠마온 정글 지대에는 호랑이들이 인가를 덮쳐 수많은 인명이 살상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군대와 실력 있는 많은 사냥꾼이 실패했던 참파 와트(Champawat) 식인 호랑이를 혼자 추적해 사살하면서 그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냥꾼이자 영웅이다.
어느 날, 코벳이 동료 사냥꾼과 함께 히말라야 발치의 밀림 속을 걸어서 이동할 때였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4월의 햇빛이 주위 풍경을 신비롭게 비추고 있었다. 나무와 넝쿨 식물들의 꽃들이 만발하고, 화려한 나비들은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꽃내음을 즐긴다. 희귀한 새들의 지저귐, 폐부를 파고들듯이 달콤한 봄의 향기가 밀림을 가득 채웠다.
계절이 주는 선물 덕분에 영혼까지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며 오솔길을 따라 꿈속을 걷듯이 정글을 통과했다. 저녁 무렵 야영지에 도착한 코벳은, 여장을 풀면서 동료 사냥꾼에게 여정이 즐거웠느냐고 묻는다.
“아뇨,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길이 너무 험하고 힘들었어요.”
그 동료는 오로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만 열중하느라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꽃과 새소리와 향기는 느끼지 못한 채, 밀림 속의 넝쿨을 헤치고 나오는 데만 집중했다. 벌레들도 몸에 달라붙어 수시로 떼어내야 했고, 흙탕물과 진흙 길을 다니는 것도 무척 힘들어했다.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지도 불안했다. 같은 무게의 배낭을 지고 같은 길을 함께 걸어서 지나왔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짐의 무게와 고난은 차이가 컸다. 그 차이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 여정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감동과 성취감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10년 전 성지 순례로 설악산 봉정암을 오를 때였다. 백담사 입구를 출발해서 봉정암까지는 편도 10킬로 조금 넘는 거리로 약 6시간가량 소요가 됐다. 등산 경험이 손꼽을 정도인 나로서는 평생에 다시없을 무리한 도전이었다. 더군다나 고소공포증의 두려움을 안고, 가파른 절벽 계단을 기어 올라가거나 구름다리 타고 계곡을 건널 때는 지옥과 같은 공포감 그 자체였다. 완만한 경사를 몇 발자국 걷다 보면 이윽고 천 길 낭떠러지를 만난다.
조금만 정신을 놓치면 갈라진 지구 틈새로 깊숙이 파묻혀 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느낀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긴장하며 탐험하듯 걸어온 그 길을 돌아보면 까마득한 과거를 걸어온 것처럼 느끼게 된다. 돌아가지도 나아가지도 못할 즈음이면 쉼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어설픈 여유를 부린다. 차라리 두려움을 즐기자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계곡을 흐르는 물 위로 9월의 햇살이 바람의 결마다 반짝이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알처럼 훤하게 속살을 드러낸 계곡은 실핏줄이 흔들릴 때마다 물의 세포가 너울거려 무아지경이었다. 이후에 벌어질 험난한 여정, 해탈 고개라고 부르는 깎아지른 절벽 일지라도 건너는 일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봉정암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은 도반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도착한 후의 일정은 행사에 관련된 것과 저녁 공양으로 미역국에 밥 한 주걱 오이무침 세 조각이 전부였지만, 완주의 성취감은 몇 번 안 되는 산행 중 최고였다. 무엇보다 오래 추억할 수 있었던 것은 왕복 12시간 동안 걸으면서 설악의 풍경을 가슴으로 오롯이 느끼며 담아 온 여정이었다. 두려움을 불사르고 극복한 최고 난이도 산행이었다.
짐 코벳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라며 자신의 책에 동료들과 경험을 일화로 소개하기도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행복한 여정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앞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담벼락에 핀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와 관심이 기쁨과 풍요로움을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