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4. 마지막 순간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by 마리혜

#누군가의 마지막을 미소 짓게-한 가슴의 상처를 치유한다면


<첫 번째 이야기>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그 사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은 그 느낌을 간직하고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p29


어느 날, 배우 김혜자 님은 저자와 차를 마시던 자리에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의료 봉사를 다녀온 경험을 들려준다. 라이베리아는 십 년이 넘는 내전으로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국민의 절반이 난민으로 전락해 버린 나라였다. 의료 봉사팀과 도착한 다 쓰러져 가는 흙으로 된 움막 안에서, 한 여성이 누운 채로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녀는 겨우 목숨만 부지할 뿐, 누르는 자리마다 고름이 흘러나와 온몸은 고통으로 얼룩져 처참했다. 의사와 김혜자 님은 몇 시간 동안 소독약으로 그녀의 몸을 닦고 고름을 제거해 주었다. 그러자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이 삼십 대 중반의 그녀는 소독을 마치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그녀지만, 생면부지의 따뜻한 손길을 뒤로하고 고요하게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얼굴은 빛이 났다. 고통으로만 보낸 짧은 생이지만, 한 번의 따뜻한 손길과 행복한 마음을 품고 떠난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눈을 감으며 의사와 김혜자 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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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이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 기쁜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p31


저자가 들려주는 명상 잡지에서 읽은, 뉴욕 택시 운전사의 경험담이다. 운전사는 밤중에 전화받고 어두운 슬럼가로 승객을 태우러 갔다. 캄캄한 밤 인적이 드문 슬럼가. 이런 상황이라면 보통의 운전사들이 차를 돌리기 마련이다. 그 운전사는 달랐다. 경적을 울린 후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노부인이 작은 짐 가방을 끌고 나왔다. 고전영화에 나올 법한 원피스와 베일이 드리워진 모자를 쓴 그녀는, 운전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그녀는 주소지를 운전사에게 건네며 정중하게 말을 건넨다. 목적지까지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시내를 거치면 두 시간은 더 걸리는 거리를 굳이 돌아서 가자고 부탁한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처녀 시절 엘리베이터 걸로 근무했던 빌딩 앞에 차를 세워 한참 동안 빌딩을 바라보았다. 또 그녀가 갓 신혼살림을 차린 주택가와 지금은 가구 전시장으로 바뀐 무도회장 앞에 멈춰 서서 소녀 시절을 회상했다. 추억이 깃든 건물이나 거리에 차를 세워 아무 말 없이 어두운 차 안에 앉아서 밖을 응시하곤 했다.


마침내 작고 허름한 요양원 앞에 도착했을 때, 직원들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가 요금을 묻자, 운전사는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며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그녀는 운전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 기쁜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인생의 마지막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뒷모습이 지워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내민 작은 손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따뜻한 마음을 품고 떠날 수 있는 위대한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슴 한편 뭉근하게 감동이 밀려온다. 평화롭게 미소를 띠며 짧은 생을 마감한 삼십 대 중반의 그녀. 요양원으로 들어가며 생의 발자취를 기쁘게 추억한 할머니의 생애. 그들의 영혼이 어느 세상엔가 더 편하고 아름답게 머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