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19.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

by 마리혜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_사랑하면 다가오는 것들

세상의 모든 장소들은 사리와 숄로 얼굴을 가린 여인과 같다. 낯선 자가 다가오면 더 가릴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천 뒤에서 검은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p109

여행을 즐기지 않아서 여행의 참맛을 잘 알지는 못한다. 가끔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는 한적한 시골 어디쯤에서 한 달살이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생각에 그치고 만다. 여행도 자주 다녀봐야 또 떠나고 싶을 것이다. 여행도 좋지만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이나 남파랑 동피랑 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도 참 좋아한다..


가끔 여행할 때 성지순례나 유명한 관광지라도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 그 이유는 영상이나 책에서 감동받은 것처럼 실상이 다르면 실망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텔레비전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여기서 가까운 지역의 주위 풍경을 아름답게 소개해 주었다. 주위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주인공이 둘레길을 마치고 들렀던 카페의 전망이 앞산의 풍경과 어우러져 포근하고 조용해 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이튿날 친구와 약속을 하고 30분 거리에 있는 그곳으로 갔다. 한 시간가량 차를 마시면서 다큐멘터리 주인공처럼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분위기는 생각만큼 만족스럽진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저자가 소개해 주었던 실망스러웠던 여행지가 쉽게 속살을 내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곳도 그랬다.


어찌 한 번 다녀오고 그곳 카페의 매력을 다 알 수 있을까. 카페 주인의 다정함만은 커피잔을 건네줄 때 잠시 느껴보았다. 거리는 있지만 나들이 삼아 가고 또 가면 숄 속에 감춰진 카페 주인의 진정한 다정함이 드러나겠지. 그땐 아마 더 자주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소로의 정신을 느끼기 위해 떠났던 월든 호수와 영적 스승 크리슈나무르티가 말년을 보낸 캘리포니아의 오하이벨리. 다큐멘터리의 잘 각색된 허구의 꽃마을 북인도 라다크. 종교 성지의 인도. 이곳들은 모두 저자가 첫 여행에서 실망감만 안고 돌아온 여행지였다.


그러나 후에는 월든 호수는 소로의 호수가 아닌 자신의 월든 호수를 발견했다. 오하이벨리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산책하던 길을 친구와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 라다크는 좋은 친구를 만나 한 가족처럼 지낸다. 인도의 바라나시는 25년째 다니고 있다. 바라나시를 무대로 여행기를 한 편 쓸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저자의 인도 사랑이 얼마나 클지 이해가 간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가고, 또 가고, 또다시 가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비로소 그곳들이 감췄던 속살을 내보인 것일까. 그래서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 아닐까. 그것은 마음으로 봐야 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