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지금 이 시간에 전화 올 리가 없는데 그것도 영상으로, 어쩐 일이지?
"엄마, 저 지금 후지산이에요. 올라와서 엄마한테 먼저 전화드렸어요."
쉬지 않고 산에 올라가자마자 한 전화인지 아직 숨이 턱에 찬 목소리 었다. 진정이 안되고 거칠게 몰아쉬는 숨으로 하는 말이어서 순간 당황이 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랜 가슴에 목소리 듣고 영상의 얼굴 보니 우선 마음이 놓였다. 오늘도 역시 헐떡 거리며 하는 말이라도 아들이 하는 말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언제나 반갑고 달콤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정작 연락이 뜸하면 기다리다가도 이렇게 다급한 목소리는 놀래기부터 한다. 평소처럼 아이들과 주로 통화하는 시간대가 아닌 의외의 시간에는 전화기에 뜨는 이름만 봐도 먼저 놀랜다. 때로는 연락 장치가 휴대전화로만 가능하기에 통화가 되지 않을 땐 걱정되는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이 출가하거나 독립하고 나면 신경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어른으로서 걱정할 일은 늘어나고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니 평소와 다르게 이른 아침이나 너무 늦은 시간 또는 근무할 시간에 연락이 오기라도 하면 놀래기부터 한다. 아들이 갑자기 그 시간에 전화해서 놀랜 것도 그 때문이다. 옛말이 딱 맞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생각이 통해서 갑자기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서둘러 출발한 여행이라 미처 연락을 못한 미안함에 벌인 깜짝 이벤트였다. 산행을 하는 동안 엄마 생각을 하다가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한다.
"잘했어, 아들아. 좋은 건 지금 할 수 있을 때 하자. 맛있는 거 찾아서 먹고 맘껏 즐기다 와."
평소 나와 아들은 정해진 계획이 아닐지라도 생각이 통해서 서둘러 일정을 잡는 것과 소소한 이벤트 벌이는 모습은 나와 닮은 점이 있다. 딸들에 비해 아들과는 유난히 잘 통한다. 생각도 비슷하고 무슨 일이든 잘 맞춰 주는 편이다. 엄마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한편이 되어주는 것도. 엄마 마음을 다 알지 못하지만 불편하지 않게 맞춰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고맙고 든든하다.
물론 엄마의 아들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들이 태어나기 전 처음 내게 왔을 때부터 남달랐던 과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태중에서 4개월 되었을 때 위기를 먼저 겪었다.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갸우뚱하며 고개를 돌리면서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그 순간 태아와 산모를 살려내야만 하는 방법을 고민했을 수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태아를 둔 체 대수술을 해야 했고, 아직 심장은 있었으나 완성되지 않은 태아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산모의 상태는 개복을 해야 안다는 비수 같은 말이 절망감을 가지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태아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6개월 후 출산할 때는 제왕절개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위로 두 딸은 자연분만했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30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그때 상황으로 봐서는 태중에 있는 아이를 뱃속에 두고 개복 수술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아들이나 나나 모자의 끈질긴 인연이 극도의 공포감이었지만, 이겨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들은 태어나면서 밤낮이 바뀌고, 밤새도록 공포와 두려움을 토해내듯이 울기를 반복하며 함께 예민한 밤을 보냈다. 6개월의 짧은 기간에 대수술과 제왕절개수술등 두 번의 수술 후유증으로 기억력도 많이 감퇴되었다. 그렇게 보낸 몇 달 동안은 가끔 멍하게 마치 정지된 시간처럼 힘들게 보내야 했다.
자라면서도 예민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려서는 수유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먹는 것도 소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어서 그 나이 때 먹어야 할 양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또래에 비해 작은 편에 속해서 늘 마음이 아팠다.
심지어는 수업 시간에 크레파스가 손에 묻으면 곧바로 씻어야 견딜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아이한테 씻는 것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개구쟁이처럼 놀다 들어와서 지저분하게 씻어도 굳이 나무라지 않고 칭찬만 했다. 받아쓰기 50점이어도 50점 맞은 걸 칭찬했다. 쪼르르 달려와서 자랑스럽게 하는 말은 뭐든 칭찬했다.
꼭 안고 "엄마는 우리 아들 많이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자주 한다.
태중에 있을 때 엄마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 이유로 아이가 태어나고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갖고 자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말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바란 것은 건강한 몸과 마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선물로 와준 것만 해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어른이 된 지금 평범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사랑이 많은 아들로 성장해 줘서 늘 고맙다. 아들이 일에 몰두하다 보면 한참 연락을 하지 못해도 섭섭하지 않다. 어떤 때는 엄마를 잊어주길 바랄 때도 있다. 그러다 생각나면 내가 먼저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엄마, 다음번엔 아버지 모시고 우리 셋이서 일본 여행 가요. 제가 가이드합니다."
숙소에 돌아와 독학으로 익힌 유창한 일본어 회화를 뽐내기라도 하듯이 가족여행을 제안한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아들과 함께라면 물론 가야지 생각한다. 전화 끊을 땐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꼭 한다.
"아들, 사랑해요."
"엄마 저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