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2시 10분.
“점심 먹고 들어갈게."
오전에 탁구 운동하러 갔던 남편은 기다리지 말고, 혼자 먹으라는 말을 짧게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싱싱한 큼직한 새송이 버섯 세 개를 웍에 썰어 담고, 들기름과 천일염 한 꼬집 넣고 중간 불로 3분 동안 살짝 익혀 냈다. 접시에 옮겨 담고 깨소금을 솔솔 뿌리려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늦게 운동 다녀와서 서둘러 점심을 차리면서도 굳이 반찬을 한 가지 더 만들려던 참이었다.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다 손 놓고 딸려 가는 것처럼 시간 맞춰서 밥상을 차려야 하는 긴장감이 갑자기 사라져 버려 느슨해진다. 진즉 전화해 줬더라면, 특별할 건 없지만 세송이 반찬을 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미리 준비해 둔 김칫국으로 점심때 먹을 계획이었다. 김치를 양념 털어내고 1차로 끓인 다음, 생콩가루 듬뿍 넣고 다시 넘치지 않도록 은근한 불에 끓인 담백한 국이다. 일명 콩가루 김칫국.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입맛을 사로잡는 경상도 음식이다. 결혼하고 처음 먹었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12시 정각에 점심 차려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꼭 지키려고 한다. 남편이 정년퇴임한 후부터 내가 가장 우선하고 지키고자 했던 것이 남편의 하루 두 끼를 함께 먹는 것이었다.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준비된 반찬이 없어도 식사는 함께하려고 애쓴다. 직장 다닐 때는 일한다는 핑계로 남편의 식사를 제때 챙겨 주지 못할 때가 많아서 늘 마음에 걸렸었다.
가족이라는 것이 한 끼의 식사가 그 의미를 다 부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의 온도로 적절하게 버무릴 수 있는 남편에 대한 나만의 최소한의 배려이자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오전에 탁구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체로 오후 12시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러면 12시에 준비를 마치고 점심을 차린다.
전화를 끊고 부지런히 점심상을 차리다 말고 갈등이 생긴다. 배도 안 고픈데 점심 먹지 말까. 아니면 간단하게 김치하고 김으로만 먹을까. 왠지 느슨해진 마음에 점심 해결하고 들어온다는 말이 반갑기도 했다.
아니다. 깊숙이 넣어두었던 밑반찬까지 꺼내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나를 대접했다. 거실 테이블에 제대로 자리 잡고 앉았다. 모처럼 느긋하게 혼자만의 점심을 즐기려 한다.
휑하니 더 넓어진 거실에 햇살이 들어와 춤을 추고 있다. TV에서 트로트 가수의 휘어 감길 듯 목소리가 튀어나와 한데 어울리더니 나 외에 모든 공간을 가득 메워버렸다. 넋 놓고 노랫말을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출연자들의 코믹한 연출에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했다.
불현듯 혼자 먹는 밥상이 즐겁지 않았다. 방금 조리한 깨소금 듬뿍 넣은 새송이버섯 볶음도 맛을 못 느끼겠다. 좋아하는 콩가루 김칫국 역시 그다지 맛깔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혼자 밥먹는 식사가 즐겁지 않다. 없는 반찬일지라도 그래도 혼자 보다 둘이 낫다.
내일은 무슨 반찬 만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