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 명사 동물 좀목의 빈대좀 (네이버 사전)
살다 보면 기억 속에서 삭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흑역사가 누구든 한두 개쯤은 있을 것 같다. 당시에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갈무리되고, 저절로 그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기도 한다. 간혹 시간이 주는 치유의 힘은 놀랍기까지 하다.
보통 가족 간에는 고부간이나 동서 간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좀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철없는 동서와 겪었던 잠깐의 갈등이 좀먹은 기억으로 사라지지 않고 마음 구석 가렵게 만든다. 손위의 입장이라는 게 뭔지 나이 차이 나는 철없는 동서에게 질서를 운운하며 했던 따끔한 한마디가 10년이 지나도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영 개운치 않았다.
아홉 번은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한번 받은 상처는 오랫동안 힘들어야 했고,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지내는 것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번번이 상처가 날 때마다 아물지 않는 기억이 시간이 갈 수록 몇 배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때는 딱히 문제 될 일은 아니지만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구겨질 때가 있어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서로 환경이 다른 사람이 만나서 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이, 배려심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가족화목을 기대하기란 참 어렵다. 가족이 아니라면 까짓것 안 보면 그만이겠지만, 가까이에서 늘 보는 가족이기에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기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 마음은 이렇게 불편하고 속상한데 철이 없어 보이는 동서의 얼굴은 늘 맑음이었다.
어느 날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먹고 나니 고민이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담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풀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런 일로 누군가와 상담해서 좋은 방법을 코치 받으려면 구구절절 말해야 하는 것도 마땅치 않으니 혼자 끙끙대야 할 일이었다. 손아래 동서 대하는 일이 시부모님 모시는 일보다 몇 곱절 고단하게 느껴졌다. 참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지. 몇 번이고 내 안에 질문을 던지곤 했다.
드디어 D-day.
차분하게 마음먹으려고 애를 썼고, 간결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감정 드러내지 않기. 얼굴 근육 풀고 간혹 미소 섞기 등등.
동서를 만나기 10분 전. 속으로 기도문을 외우며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생각을 해보니 나보다 윗 분과 대화라면 오히려 차분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게 차라리 더 쉬울 것도 같았다. 나이가 열 살 가까이 적지만 결코 어리지 않은 동서와 더 좋아지기 위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맏며느리로서 내 처지가 체면이 말이 아니고, 애처롭기까지 했다.
동서와 마주 앉아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하니 책 사인을 받기 위해 1미터 거리도 안되는 책상 앞에서 최애 작가님과 마주 앉자마자 모든 것이 사라져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을 때 꼭 그 기분이었다.
자기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와준 내가 의아했는지, 상냥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형님, 오셨어요? 마침 잘 오셨어요. 반가워요 형님"
"지나다가 들어왔어. 보고 싶어 왔지"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하려고 했던 간단한 말만 겨우 전달만 했을 뿐, 덧붙여 이런 점은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은 결국 하지 못하고 멋쩍게 나와 버렸다. 내가 참 못났다는 생각도 아울러 했다. 손 아래 동서인데 내가 무엇이 할 말을 못한다고 이 모양이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약간 억울한 생각도 했다.
발길을 돌리면서 생각해 보았다.
우리 동서는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지도 않았고,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마주 앉은 동서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편했다. 한편으로, 내가 아끼는 무엇이라도 준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 보니 딱히 그럴만한 것이 없었다. 준 것도 없으면서 내 마음이 편하도록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나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완전한 의문의 1패였다. 무너진 자존심을 끌어올리기에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나 혼자 끙끙대며 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내 생각과 마음에서 일어났던 거였다. 책 속에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을 손아래 동서를 통해서 배우게 됐다. 우리 동서가 부처님이 었던 셈이다. 마음을 그렇게 먹고 나니 모든 것이 편했다. 내가 편한 마음으로 대하고 다가가니 말 거는 횟수라든지 웃음도 더 많아진 걸 보면 내 마음이 바뀐 걸 동서도 눈치챈 것 같았다. 괜히 나 혼자 부끄러웠다.
서로의 생각들이 성숙해진 것만큼 시간이 흘렀다.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 되면 없던 애교가 생겼는지 오히려 앙탈을 농담처럼 툭 던진다.
여전히 비슷한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둘 사이지만, 우리가 꼭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으로 가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 남보다 못한 가족이 되지 않기 위해 함께 걸어가고자 노력하는 사이가 되었다. 동서를 대할 때면 가끔은 그 날의 일이 내 마음속에 흑역사가 되어 고스란히 올라와 웃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일로 추억되곤 한다.
그 때의 일이 좀이 되어 가슴속에 박혀 있다. 진솔한 쥐가 되어 이따금 간지러운 기억들, 좀 먹은 기억들을 갉아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