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쟁이 승현이
승현이는 형이 하는 것은 뭐든지 따라 하고 귀찮게 하는 개구쟁이지만, 성품은 비교적 온순한 편이다. 그에 비해 옳은 일과 자신이 하지 앓은 일에 대해서는 굴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성향의 형에게는 적당히 물러서는 눈치 빠른 녀석이다.
형제인 두 녀석이 천방지축 엉겨서 놀 때는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가 공부할 때나 그림 그리기, 게임을 할 때도 심지어 말도 따라 해서 자기는 재미 삼아 하지만, 형은 그런 동생을 몹시 귀찮아한다. 그래서 형은 가끔 승현이를 피해 다니기도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형을 두둔해서 나무라지만, 그때뿐이다.
그렇지만 둘 떨어지려고 하지 않고 서로 챙기려고 해서 잠시만 눈에 띄지 않아도 서로 형과 아우를 찾는다.
맏딸인 승현이 엄마가 형의 입장을 설명하고 말리긴 하지만, 형보다 승현이의 귀여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눈치 빠른 승현이는 형이 싫어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귀찮게 한다.
승현이 엄마는 맏딸이면서 18개월 만에 어린 동생을 보았다. 18개월이면 부모 사랑을 독차지할 시기인데, 언니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었다. 재롱부릴 처지임에도 때로 동생한테 양보할 일도 많아지고 더러는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경험했을 터이다. 하지만 승현이 형을 낳고 호 불면 날아갈까 손에서 놓으면 사라질까 애지중지하던 마음은 다 어디 가고 승현이가 하는 짓은 더 귀여워하는 것을 보면 그때마다 꿀 떨어진다.
형이 가끔 말을 따라 하고 귀찮다고 밀치기라도 하면 대성통곡을 해버린다. 신기하게 승현이는 눈을 꾹 눌렀다 뜨면 눈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린다. 마치 눈물 제조기처럼 1초 만에 뚝뚝 흘러나온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준비된 듯한 눈물이 신기해서 쳐다보면 웃음부터 나올 정도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형이 잘못해서 동생을 울려버린 것처럼 돼버린다.
승현이는 형을 좋다고 하는 거지만, 형도 귀찮을 때가 있는데, 그런 형의 편을 들어주지도 못하고 훈육을 하는 딸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난감한 처지가 된다. 결국은 10살 형으로서 억울하게도 동생을 너그럽게 이해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10살인데 말이다. 그래서 형은 가끔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아직은 10살의 개구쟁이 어린 형이지만 동생에게 심리적으로 밀릴 때가 있다. 그럴 때 형만 데리고 나와 조용히 할머니랑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마음을 헤아려 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어린이의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의아할 때가 더러 있다. 동생이 귀엽고 사랑하지만 말 따라 할 때만큼은 너무 싫고, 말도 안 들어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형도 승현이 나이 때 말을 따라 했다고 한다. 물론 대상자는 엄마였고, 따라 하지 말라는 핀잔도 들어가면서 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동생이 말 따라 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 마음을 이해해 주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설령 승현이처럼 그런 때가 있었어도 지나면 곧 잊게 된다. 혼자 있고 싶을 만큼 싫을 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겨울 방학 시작하고 외갓집에서 일주일 지내다 엄마와 승현이를 먼저 보내고, 동생 없이 혼자 일주일 더 남았던 것도 형이 원해서였다. 같이 지내면서 몇 번을 되물어도 혼자 있고 싶다는 것이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형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승현이는 형이랑 같이 가야 한다고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뒤에서 슬그머니 미소 짓던 형은 그제야 동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외갓집에서 지내는 동안 할아버지는 형과 보낼 하루 일정을 만들었다. 형이 좋아하는 ATV 타기, 함께 온천탕 가기, 읍내 가까이에 있는 출렁다리 건너기. 문경새재 걷기 등, 할아버지는 형과 즐길 거리를 찾아서 놀았다. 또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할아버지가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동안, 혼자 뛰어놀았다.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내준 숙제만 하면 게임이든 유튜브든 오롯이 혼자 만의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사랑을 혼자서 독차지할 수 있었다. 오롯이 혼자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 분위기를 형도 즐기는 것 같았다.
승현이는 며칠 밤 동안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울면서 영상통화를 했다. 이전에는 통화할 때마다 형하고 뒹굴던 모습이 비치었었다. 지금은 형이 없으니 엄마한테 엉켜 붙어 보고 싶다고 빨리 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안했는지 형은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형아, 승현이가 형이 없이 혼자 있기 싫은가 봐.”
“할머니가 생각할 때, 형이 좋으니까, 말을 자꾸 따라 하고 싶나 봐.”
“승현이는 아직 어리잖아. 형이 좋다는 표현인 거 같아.”
여러 가지 이야기로 형의 마음을 따라가 보려 노력해 보았다. 형도 외갓집에 있는 동안 동생에 대해 생각도 많이 달라져 보였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승현이가 빨리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직 어린아이들이지만 역시 형만 한 아우가 없다고 하는 것 같다.
승현이는 말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체험 학습이 있는, 형이 다닌 유치원으로 다니고 싶어 해서 , 가까운 곳을 두고도 버스를 타고 다녔다. 형이 페달 없는 자전거를 타면 따라서 탔다. 수영을 하면 수영도 따라서 배웠다. 형 옆에서 어정거리다가 형이 하는 것은 뭐든 따라 하려고 애를 썼다. 공부할 때면 같이 자리 잡고 따라 했다. 형이 외갓집에 있는 동안, 승현이는 형이 하던 한문그림공책을 꺼내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6살 개구쟁이가 엉덩이 붙이고 한자 공부를 하다니 그것도 따라 쓴 글이지만 제법 흉내 낸다.
형을 따라 읽기와 쓰기를 한다. 형이 안 놀아 준다고 대성통곡할 때 안타까움보다 웃음부터 나왔던 것처럼, 한글도 아니고 한자를 쓰고 읽고 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 너무 귀여워 웃음부터 나온다. 젖병 뗀 지도 오래지 않았는데, 아직도 가끔 이부자리에 실례하는 철이 안 든 미운 여섯 살 승현이가 동그라미 그려가며 몰입하고 있다고 하니 귀여울 수밖에.
승현이 형도 글씨를 제법 예쁘게 쓴다. 형이 하면 뭐든 따라 하는 의욕이 있어서 그런지 운동이든 공부던 습득이 빠르다. 붙잡고 앉아서 주입을 시키지 않아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한자 공부와 글씨 쓰기도 역시 형이 공부할 때 귀찮게 따라 하며 얻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형과 떨어져 보내던 일주일 동안 형은 동생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동생은 형을 따라 하며 보냈을 무료한 시간을 한자 공부로 보내던 것이다. 그 후에 지켜본 바에 의하면 승현이의 말 따라 하기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한 살 더 성숙해진 승현이와 형이지만 공부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여전히 천방지축 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