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삶의 방식과 비천한 삶의 방식이 따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삶의 방식이 다 헛된 것에 불과한가?

by 철없는박영감
삶 : 누군가의..., 어떤..., 혹은 어떤 누군가의 삶


AI : 당신이 언급하신 대로, 인간의 정신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이제 여섯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고귀한 삶의 방식과 비천한 삶의 방식이 따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삶의 방식이 다 헛된 것에 불과한가?"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이나 의견이 있으신가요? �


나 : 삶의 방식이라는 것은 정신을 물질세계에 발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즉, 정신을 예측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삶의 방식은 정신의 무한확장 가능성을 제약한다고 생각합니다.


AI : 당신의 의견은 매우 흥미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이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많은 철학자들이 논의해 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 삶의 방식과 정신의 발현 : 정신은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현실 세계에 발현시킬 때는 물질적 조건과 환경에 의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정신적 생각과 아이디어는 물질적 세상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여러 제약과 한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 : 고귀한 삶의 방식은 이러한 정신적 가능성을 최대한 발현시키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비천한 삶의 방식은 정신적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물질적 조건에 얽매이는 삶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 정신의 무한 확장과 제약 : 우리 삶의 방식은 정신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정신적 발현을 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삶의 방식은 개인의 선택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정신적 가능성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는 각자의 노력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 조화와 균형 : 중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고귀한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제 여섯 번째 질문으로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

◎ 고귀한 삶의 방식 : 고귀한 삶의 방식은 도덕적 가치, 윤리적 원칙,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삶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아실현,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적 책임 등의 가치를 포함합니다. 고귀한 삶은 종종 자아를 넘어 공동체와 인류의 이익을 고려하는 삶을 말합니다.

◎ 비천한 삶의 방식 : 반면, 비천한 삶의 방식은 자기중심적이고, 도덕적 원칙을 무시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삶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탐욕, 이기심, 불법 행위 등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 모든 삶의 방식이 헛되다 : 이 관점은 허무주의적 시각으로, 모든 삶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는 인생의 본질적인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따라서 모든 삶의 방식이 본질적으로 헛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개인적 가치와 의미 : 어떤 사람들은 삶의 고귀함이나 비천함은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즉, 삶의 의미와 가치는 각 개인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실존주의적 관점으로, 인간은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논의는 철학적, 윤리적, 개인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접근될 수 있습니다. 삶의 방식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이와 관련된 더 구체적인 질문이 있으신가요? �


나 :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을 가르는 기준이 정신적 가능성 발현이라는 생각이 옳을까요? 과학계의 도덕적 관점이... 인간은 실험대상이 될 수 없다는 윤리적 제약이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만 적용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는 않을까요? 비약적이기는 하지만, '고귀한 삶의 방식'은 인류의 이익을 고려하여 동물실험을 반대하면 안 되는 걸까요?


AI :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매우 주관적일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가치관, 철학적 관점, 문화적 배경 등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정신적 가능성의 발현이 고귀한 삶을 정의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는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 정신적 가능성의 발현 : 고귀한 삶을 정신적 가능성의 최대한 발현으로 본다면, 개인의 창의력, 지혜, 도덕적 판단 등 다양한 정신적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삶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 윤리적 제약과 도덕적 관점 : 과학계에서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윤리적 제약은 인류의 생명과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입니다. 이는 인간의 이기적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도덕적, 윤리적 기준입니다.

◎ 동물 실험 : 고귀한 삶이 동물 실험을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동물 실험은 의학과 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동물의 권리와 고통을 고려해야 합니다. 많은 윤리적 논의는 동물 실험을 최소화하고, 대체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강조합니다. 이는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결국 고귀한 삶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이는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에 대한 입장 역시 이러한 개인의 가치관과 윤리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은 부분이나, 다른 질문이 있으신가요? �


나 : 그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죠. 가족을 위한 희생, 국가나 사회를 위한 희생, 인류를 위한 희생, 종교의 순교자 등... 고귀한 삶으로 추앙하는 많은 '희생'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극단적인 갈등의 발현으로도 보이거든요. 나의 신념을 위해 다른 이들을 헤치거나 스스로를 헤치는...


AI : 당신의 통찰은 매우 깊이 있고, 희생의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희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귀한 행위로 여겨지지만, 때로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가족을 위한 희생 : 이 유형의 희생은 가족의 복지를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거나, 형제가 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 국가나 사회를 위한 희생 : 국가나 사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입니다. 군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 인류를 위한 희생 : 더 넓은 인류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포함한 여러 가지를 희생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인류의 건강을 위해 위험한 실험을 감수하거나, 인권 운동가들이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 종교적 순교 :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희생하는 경우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종교에서 순교자를 고귀한 삶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이 모든 형태의 희생은 각각의 신념과 가치를 기반으로 하지만,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자신에게 극단적인 고통을 주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희생의 경계와 윤리적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고귀함과 극단주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고 싶으신 부분이나,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논의하고 싶으신가요?


나 : '희생은 과연 고귀한 삶인가?',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을 과연 나눌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AI : 당연히 그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희생이 고귀한 삶인지, 그리고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을 나눌 수 있는지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주제입니다.

◎ 희생과 고귀한 삶 : 희생이 항상 고귀한 삶의 일부인지는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한 희생은 사회적으로 고귀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스스로나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는 희생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 :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을 나누는 기준은 시대, 문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높은 도덕적 기준과 가치 실현이 고귀한 삶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현실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만족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 흑백논리의 위험성 : 고귀함과 비천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많은 경우 회색 지대가 존재합니다. 다양한 관점과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희생이 고귀한 삶인지, 그리고 고귀한 삶과 비천한 삶을 나눌 수 있는지는 개인의 가치관, 사회적 맥락, 철학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나 : 결국 '삶의 방식이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함에 있어서 무한정 인정할 수는 없어서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요. 이것도 시대와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다 다르죠. 혁명적인 사건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진보적 사회분위기도 있고, 새로움이 균형을 잡고 익숙해져서 안정기로 접어든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도 있고, 저는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하는데... 요즘의 진영갈등은 점점 더 극단적인 양상으로 흐릅니다. 다시 희생의 의미가 떠오르죠.


AI : 네,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준들은 시대와 문화, 개인의 경험에 따라 변동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입장에서 진영 갈등이 극단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히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 다양성의 수용과 기준 설정
- 진보적 사회 : 혁신과 변화를 수용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바꾸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보수적 사회 : 안정과 전통을 중시하며,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선호합니다.

- 평화와 갈등 : 진영 갈등이 극단화될 때, 평화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를 촉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 희생의 의미
- 희생은 고귀한 삶의 상징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항상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이 고귀한 삶인지 여부는 그 희생이 가져오는 결과와 맥락에 따라 다릅니다.

- 예를 들어, 국가나 사회를 위한 희생은 때로는 필수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올 때는 그 희생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진영 갈등에서 희생의 의미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입장에서 희생을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다양성과 기준, 희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상호 이해, 그리고 평화를 향한 노력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나 : 예측가능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덟 번째 질문으로 이어지죠? 예측가능이 우리가 생각하는 선(善) 아니겠습니까?


AI : 예측 가능성은 우리가 선(善)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특히, 선을 추구하는 행동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통해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질문인 "선(善)은 진가를 드러내려면 영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주가 엄연히 종말로 향해 가도 선이란 추구할 만한 것인가?"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죄의식


요즘 극단주의적 정치색을 띠는 종교나 단체들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한 로마 말기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덮어놓고 화부터 났다. 특히 이후에 중세 암흑시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는 결과를 알고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이쪽 종교에 신앙심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 혹은 그런 정치색을 갖고 계신 분들은 이런 분노에 대해 똑같이 화를 내거나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대상이라는 배경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시기에 읽었다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도...


「4세기말에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밀라노였고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의 주교였다. 직무상 늘 황제들과 만나야 했던 암브로시우스는 평소에는 황제를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고, 때로는 우월한 태도로 대했다. 그가 황제를 알현하며 취한 행동거지는 당시 특징을 나타내는 국가와 교회의 일반적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 준다. 국가는 약하고 무능하며 방종한 이기주의자들이 지배하여 미봉책 이상의 정책은 결코 내놓지 못한 반면, 교회는 강하고 유능하며 교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뒤이은 1000년 동안 교회는 승리를 거두었다. (중략)


이후 암브로시우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Flavius Theodosius)와 갈등을 빚었다. 유대교회당 한 채가 불타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동로마의 가신은 지역의 주교가 자극해 일어난 일이라고 보고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실제 방화범을 처벌하고 범죄를 조장한 주교에게 회당을 다시 지으라고 명령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지역 주교의 연루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황제가 그리스도교도에게 등을 돌리고 유대인 편에 선 것으로 보고 분개했다. 주교가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황제의 지시에 저항하면 그는 순교자가 될 것이고, 물러서면 배교자가 될 것이다. (중략)


성 암브로시우스의 분명한 의견은 유대교회당을 파괴한 행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교회가 권력을 잡게 되자마자 어떻게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기 시작했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극좌건 극우건,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론 유튜브나 쇼츠라는 일방적인 '썰 풀기'밖에 없다) 전부 시대적인 '사명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라를 바로 잡지 않으면 후세에게 죄를 짓다는 '죄의식'으로까지 발전해 있다. 즉 이미 논리와 이성의 영역을 넘어선 '원죄'의 개념 (신앙과 종교)으로 변질된 상태다. 차라리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환경오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방법일 텐데... 심하게는 후세를 위한 다는 것은 핑계일 뿐, 자기만족이나 돈벌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파노플리 효과* : 족보를 사서 양반행세를 하고 싶은 심리


내가 생각하는 중세 암흑기의 시작은 '문자를 쓰면서'*부터다. 과학은 아직 홍해가 갈라지는 등의 많은 부분이 '기적'으로 종교를 포교하는 선전물로 활용되던 시대였고, 신전과 신화로 고대제국의 다양한 부족들의 이야기와 삶을 담았던 다신교는 더 이상 거대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지 못했다. 그 사이를 메워야 할 철학도 점점 현학적(衒學的)으로 변해가며 대중에게서 멀어졌고,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과 고귀한 삶, 즉 금욕주의나 고행 같은 정신승리가 유행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게 자기 말만 떠들어 대던 시대, 그 사이를 파고든 것이 유일신과 선민사상이다. 통합과 포용(배척)을 주장한 종교는 요즘 말로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세력을 키운다. 특히 다신주의를 우상숭배와 이단심판으로 강력하게 배척하면서, 동시에 개종이나 선교활동에 대해 굉장히 포용적이고 영웅 시 했기 때문에 대중이 그 안에 같이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심리를 잘 이용했다.


게다가 천당과 지옥이라는 현실에서는 검증할 수 없는 사후세계를 빌미로, 유일신을 믿어야 죽어서 천당 간다는 요즘의 얼핏 보면 다단계 피라미드 기업형태를 보였다. 특히 사후세계는 살아생전에 행한 착한 일과 나쁜 일로 업을 쌓은 결과가 아니라 신에게 선택을 받았으냐 아니냐의 결과로 이미 정해져 있다고 포교했다. 결국엔 어린양의 '원죄'를 주장하며 신에게 용서를 받기 위한 면죄부 장사에까지 이른다. 근래 영화에서도 비리 공무원이 주말에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나, 고해성사로 죄책감을 더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 <러셀 서양철학사>, 제2권 가톨릭 철학 3. 교회의 세 박사, 541~547p, (주)을유문화사, 3판 6쇄.

* 문자(를) 쓰다 : 관용구, (사람이) 한자 숙어나 성구(成句) 따위의 어려운 말을 사용하다.

* 파노플리 효과 (Panoplie effect) : 특정 상품을 사며 동일 상품 소비자로 예상되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이다. 상류층이 되고 싶거나 신분 상승을 바라는 마음이 특정 상품의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ex.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면서 자신이 상류층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파노플리 효과는 브랜드 구매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해 말해 준다.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파노플리 효과']

* 바이럴 마케팅 (viral marketing) : 경영, 어떤 기업이나 회사의 제품을 소비자의 힘을 빌려 알리려는 마케팅.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처럼 입소문이 나는 것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메일 추천 따위와 같은 방법이 자주 사용된다. ⇒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