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독립된 힘을 가지는가?
어디에 기댈 것 인가?
나 : '인간은 복합적 생물이다. 즉,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나뉘지 않는다.'라고 결론이 내려지는 건가요? 그러면 두 번째 질문과 연결됩니다. 정신과 물질은 독립적이지 않다. 다만 정신이 물질에 의존하는지, 물질이 정신에 의존하는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I : 맞습니다. 인간은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존재입니다. 이는 두 번째 질문으로 다시 이어집니다. 두 번째 질문은 "정신은 물질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독립된 힘을 가지는가?"입니다. 그리고 곧, "정신과 물질은 독립적이지 않다. 다만 정신이 물질에 의존하는지, 물질이 정신에 의존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이 주제에 대해 몇 가지 관점을 소개해 드릴게요:
◎ 정신이 물질에 의존하는 관점
- 유물론(Materialism): 이 관점에서는 모든 정신적 현상이 물질적 조건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봅니다. 뇌의 생화학적 활동이 우리의 의식, 감정, 생각 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 그에 해당하는 정신적 기능도 상실될 수 있습니다.
- 신경과학: 신경과학적 연구는 정신적 현상이 뇌의 물리적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정신이 물질에 의존한다는 증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 물질이 정신에 의존하는 관점
- 관념론(Idealism) : 이 관점에서는 우리의 정신이나 의식이 현실을 창조한다고 봅니다. 즉,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의존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색깔을 볼 때 그 색깔은 우리의 시각적 인식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 현상학: 이 철학적 접근법은 우리의 경험과 의식이 현실을 형성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과 해석이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죠.
◎ 상호의존적 관점
- 상호작용주의(Interactionism) : 이 관점에서는 정신과 물질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봅니다. 정신은 물질적 뇌의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정신적 상태가 물질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중 측면론(Dual-aspect Theory): 이는 정신과 물질이 같은 실체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이 독립적이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실체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들은 각기 다른 철학적,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복잡한 주제입니다. 당신은 어느 관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다른 관점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가요? �
나 : '정신일도 하사불성', '일체유심조'인가요... 물질이 정신에 의존한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반대로 인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니면 혹은 너무 넘치면 인간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죠? 조화, 균형을 이뤄야 할 것 같습니다만, 기준이 없습니다.
AI : 말씀하신 내용은 인간의 정신과 물질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정신의 중요성과 그 힘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이는 정신이 어떤 결과나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관점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인간의 정신은 물질적 조건에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정신적 건강과 안정도 위협받게 됩니다. 반대로, 물질적 과잉도 정신적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삶은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균형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질이 더 중요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정신적 성취와 평화가 더 큰 우선순위일 수 있어요. 각 개인의 환경, 가치관,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이 문제는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측면에서 매우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이를 바라보고, 각자의 삶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다른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
나 : 처음 그 기준을 제시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철학자들이었죠. 하지만 시민들에게 형이상학은 매우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고, 점점 현실과도 동떨어져 갔지요. 로마제국시대를 거치며 시민들의 생활수준은 점점 높아져가는데 탄탄한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는 없고, 저마다의 이익에 따라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이 타락해 간 것 같아요. 결국 쉽고 단순화된 논리로 종교가 빈 틈을 파고들었죠?
AI : 맞습니다. 철학자들은 깊이 있는 사고와 논의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하려 했지만, 복잡한 형이상학적 개념은 일반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오기 어려웠습니다. 로마제국시대 동안 시민들의 생활 수준은 향상되었지만, 강력하고 일관된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의 부재로 인해 사람들은 혼란을 겪었고, 이에 따라 타락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는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가르침을 제공하며 빈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종교는 개인의 삶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인간의 정신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는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종교는 단순화된 논리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는 철학이 다루기 어려운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과 종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과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려 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다른 질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나 : 시민들의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시민의식 수준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이야기는 싫어하는 대중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겠죠? 거기에 더해, 그러면서도 무시당하는 것은 싫어하는 인간의 자존심이 작용하며 선민사상으로 발전한 듯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아군과 적군, 선과 악, 이렇게 단순히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며 나름의 질서를 추구하게 되었죠.
AI : 그렇습니다. 복잡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논의보다는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을 선호하는 대중의 심리, 그리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자존심이 한데 어우러져 특정 사상과 이데올로기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선민사상은 자존감과 결합하여 사람들을 특정 집단으로 묶어주고, 그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아군과 적군,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단순화하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일종의 질서와 안정감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단순화된 이데올로기는 때로는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경향도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여 현재의 문화와 사상을 형성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신 부분이 있거나, 다른 관점에서 논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나 : '배타와 분열'이라는 말은 굉장히 무서운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엄청난 비극도 많이 발생했고요. 그래서 종교란 어찌 보면 '음모론'과 같은 맥락으로도 보입니다.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을 진실과 진리로 둔갑시켜 대중을 선동해 버리니까요. 각종 이단 검문이나 우생학, 인종차별, 세대갈등, 젠더갈등 같은 너무 큰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요새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자조 섞인 말도 있지요?
AI : 맞아요. '배타와 분열'이라는 말은 인류 역사에서 많은 비극을 초래한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종교가 때로는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을 진실로 둔갑시켜 대중을 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단 검문, 우생학, 인종차별, 세대갈등, 젠더갈등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터부시 하는 것도 이러한 갈등을 피하려는 자조 섞인 말일 수 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사람들 사이에 깊은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는 종종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관점을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복잡하고 민감한 주제이지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다른 질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나 : 이런 갈등이 임계점을 넘으면, 인간성이 말살되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발생하고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 시작은 대부분 사람들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작은 '음모론'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음모론에 선동되어 폭도로 변한 대중의 파괴력은 어마무시하죠...
AI : 맞습니다.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역사와 질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음모론이 시작점이 되어, 사람들을 선동하고 결국 폭력과 파괴로 이어지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이러한 음모론은 자주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검증할 수 없는 주장으로 이루어지지만,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여 급속도로 퍼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폭력이 발생하고, 사회의 구조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와 정보의 검증이 중요하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나요? 아니면 다른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
나 : 그래서 세 번째 질문입니다. 우주는 조화와 균형이 목적일까요? 아니면 소멸이 목적일까요? 물리학도는 아니지만 갈등을 에너지로 생각해서, 최초의 충격 이후, 그러니까 우주로 말하면 '빅뱅'이겠죠? 결국 진폭은 점점 줄어 시간이 무한대로 흘러하면 에너지는 '0'으로 수렴하겠지요? 에너지가 없어진 상태가 조화와 균형의 상태일 거고요?
AI : 이 질문은 우주의 본질과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과학적 탐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우주는 통일성 혹은 목적을 가지는가? 우주는 어떤 목표를 향해 서서히 진화하는가?"였죠? 이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합니다.
Reliance에서 Dependence로, 결국은 Religion까지...
'SBS 서울방송'이 개국했을 때, 신생 방송국이다 보니 아무래도 콘텐츠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규편성으로 채우지 못한 시간대를 돈으로 메꾸는 경우가 많았는데, 영화제 수상작이나 최신영화를 편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경쟁사였던 MBC와 KBS의 간판 외화 프로그램이었던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해외 미개봉작을 더빙해서 송출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명절 연휴 특집편성이 아니고는 극장 개봉작이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성룡의 홍콩 영화를 방송에서 내보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SBS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걸 해냈다. 지금처럼 중간에 광고를 넣었던 시절도 아니고, 프로그램 앞뒤에 넣는 광고만으로는 크게 이익이 나지 않았을 텐데, 그걸 해냈다. 어쩌면 적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본 영화들 중 아직도 생생한 것이 <홍등>, <니키타>, 그리고 <현 위의 인생>이다. '연소자 관람불가'라서 난도질을 많이 당했지만... 어후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꽤나 충격적인 영화들이었다. SBS가 사변적 정신을 형성하는데 한 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 <홍등>, <니키타>에 대해 얘기할 날도 오겠지...
<패왕별희>로 황금 종려상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어용 선전영화를 연출하는 등,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첸카이거 감독의 영화다. <현 위의 인생>은 성인(聖人)이라고 불리는 한 맹인 악사(樂士)의 이야기다. 기억으로는 비파였던 것 같은데, 이 악사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노래와 연주로 폭도들을 진정시키는 신기(神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마을이 황야에서 전투를 벌이는 Scene에서 악사가 나타나 노래로 전쟁을 멈추는 장면은 붉은 모래 먼지와 함께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 Reliance : 악사는 어릴 적 스승으로부터 비파를 물려받는다. 그의 스승은 악사에게 유언을 남기는데, 세상을 떠돌며 연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다니다가 천 번째 현(絃)이 끊어지면 악기 안에 숨겨진 상자가 열리며 그의 눈을 뜨이게 할 처방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악사는 이후로 열심히 악기를 연주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신기를 터득하며 신선으로 추앙받는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악사가 기댈 곳은 아마도 스승의 유언이 유일했을 것이다.
#2. Dependence :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악사의 현은 하나 둘 끊어져 천 번째를 몇 개 안 남기게 된다. 그 사이 악사에게는 제자가 한 명 생겼는데, 역시 맹인인 제자도 악사의 천 번째 줄이 끊어지기를 고대한다. 둘은 같은 처지의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천 번째 현이 끊어질 날을 고대하며 열심히 연주한다. 그러던 중 제자에게 연인이 생긴다. 하지만 악사는 둘의 사이를 극렬히 반대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나도 다 해봤는데, 장애 때문에 소용없으니 시작도 하지 말아라'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꼰대 같은 마인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제자는 그의 곁을 떠난다. 사실 제자는 악사보다 훨씬 일찍 현실을 깨달았다. 악사의 스승이 남긴 유언이 허무맹랑한 거짓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구심점으로 유언을 상징적으로 믿었을 것이다.
#3. Religion : 혼자 남겨진 악사에게 마침내 천 번째 현이 끊어지는 날이 왔다. 악사는 열린 상자 속의 처방을 들고 의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악사가 의원에게 내민 처방은 빈 종이였다. 크게 실망한 악사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두 마을이 황야에서 전투를 벌이려고 한다. 악사는 평소 하던 대로 비파를 갖고 자리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연주소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결국 악사는 같이 돌을 던지며 무리에 섞여버린다. (제일 압권이었던 장면입니다. 악사의 감정연기가 대단했었죠. 1992년작이라서 화질이 좋지 않겠지만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유튜브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선과 악 (善惡)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으로 근대가 오기 전까지, 중세 가톨릭 철학 시대를 흔히 '암흑의 시대'라고 한다. 모든 것을, 요즘 말하는 '갈라 치기'로 편을 짰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은 선과 악으로 나눠, 내 편이 아닌 것을 모두 악惡으로 규정해 버린 시대였다.
「고대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중세 세계의 특징은 가지각색의 이원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성직자와 속인의 이원성, 라틴족과 튜턴족의 이원성, 신의 왕국과 현세의 왕국으로 나뉜 이원성, 정신과 육체의 이원성이 나타난다. 갖가지 이원성은 교황과 황제의 이원성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지금과 너무나도 비슷했던 시기... 더 이상 복잡하고 어려운 사상이 싫어서, 그 반동으로 단순 명료한 매력에 빠져 전부 같이 허우적 댔던 시기... 그게 편하고 좋아서 무관심했던 시기... 그동안 우리는 인간과 인생을 너무 어렵게만 보려고 했던 건지도... 하지만 단순함의 미학에 결국 곪아터져 버린 시기... 요즘 속칭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무리가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사상 검증을 한다며 중국어를 해보라고 시킨다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중세 암흑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 어허 도대체 진짜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래? 하지만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아직 짜내기에는 종기가 덜 곪아서 기다리고 있을 뿐...
르네상스 (Renaissance)
벌써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복고열풍! 복고열풍!' 하는데... 스무 살 정도였을 때부터 패션분야에서 언급 돼오던 트렌드였으니까, 거의 25년째다. 세기말 사이버틱한 테크노 패션이 중세 암흑시대처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돌고 돈다는 윤회의 사상까지 내포한 이 트렌드가 차지했다. '르네상스'가 요즘 말로 '복고열풍'아닌가? 현재는 25년 차 해묵은 트렌드이지만, 이 따뜻한 시기를 못살아보고 떠나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래서 세상살이를 모두 운이라고 하나보다. 그리고 그냥 생긴 대로 살다 가면 된다는 상대주의 철학, 그중에 제일 좋아했던 실존주의 철학이 드디어 태동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실존주의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긴 하다.
일단 그전에 중세의 이 암울한 시기를 빨리 읽어 넘겨야 한다.
* <러셀 서양철학사>, 제2권 가톨릭 철학 제2권 서론, 492~493P, (주)을유문화사, 3판 6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