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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Jan 12. 2024

밥 짓는 마음

<시 짓는 마음>의 첫 번째 시어(詩語)는 "밥"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밥에 집착합니다. "밥 먹었어?", "밥 한번 먹자", "밥 잘 챙겨 먹어"라는 말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합니다.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살던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라고들 합니다. 끼니 걱정보다 영양 과잉이 더 문제인 시대, 우리에게 밥은 무엇일까요? 이유식, 흰쌀밥, 엄마의 밥상, 삼각김밥, 밀키트, 배달의 민족 등 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밥은 OO입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해 볼까요? 더 읽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셨나요?


"밥은 OO입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했다면, 여러분은 방금 시의 첫 행을 쓰신 겁니다.


밥에 관한 첫 시 소개하겠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이라고 한 시인은 누구일까요? 여러분이 아는 시인이라는 데 제 소중한 사딸라를 겁니다. 왜냐,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인이거든요. <밥은 하늘입니다>를 쓴 시인은 바로 <타는 목마름으로>와 <오적>으로 유명한 김지하(본명: 김영일, 1941~2022)입니다.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의 사위이기도 합니다.


<밥은 하늘입니다>에는 어려운 시어가 없습니다. 밥, 하늘, 별, 입, 몸. 아이들을 위한 노래로 만들어질 만큼 간결하고 쉬운 시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김지하의 '생명 사상'입니다.


1970년대 반민주 세력에 맞선 김지하는 투옥 생활 중 쇠창살 아래 시멘트 틈에 돋아난 풀꽃을 보고 생명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풀 같은 미물도 감방 안에서 생명을 틔우는데 고등 생명인 자신이 벽돌담과 시멘트벽을 초월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저항 시인'에서 ‘생명의 시인’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입니다.


김지하의 저항 정신과 생명 사상은 그 뿌리가 같습니다. 도시화, 산업화를 최우선시하는 개발독재 이데올로기는 농업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공동체적 살림의 터전을 파괴했습니다. 농경 공동체 문화의 해체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생명 경시 풍조를 불러왔습니다. '밥이 하늘'이라는 말에는 전통적 농경 공동체 사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이 주요 교리인 동학사상과 궤를 같이합니다. 그리하여 김지하 시인에게 밥은 '하늘'이고 '사람'이며 '생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밥은 OO입니다."


여러분의 문장은 무엇인가요? 어떤 마음을 담으셨나요?


저는 문장을 이렇게 완성했습니다.


"밥은 '아저씨'입니다." 밥 아저씨, 밥 로스(Bob Ross, 1942~1995).


밥 아저씨가 그림을 그리듯

누구나 쉽게 시를 쓸 수 있다고

여러분께 용기를 드리고 싶은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참 쉽죠?"




할머니가 밥상에 올려 주신 고봉밥은 어떤 마음을 담고 있을까요? 그 마음이 담긴 시 한 편 소개합니다.


 외할머니의 숟가락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손택수,『호랑이 발자국』, 창비, 2003.


손택수(1970~ ) 시인의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에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대문에 자물쇠 대신 꽂혀있는 숟가락이 정겹습니다.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에서 밥을 나누는 인심과 정, 사랑이 느껴집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에서 먹는 따순 고봉밥은 시장기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가시게 할 든든한 양식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2020)에 실린 수필 <거위와 점등인의 별에서>의 일부를 인용하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중견 시인이 된 그가 시인 지망생 시절에 만난 고마운 인연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을 추억한 글입니다.

  "어느 날 수위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가는 길에 가끔씩 부딪치던 행정실 직원이었다. 그는 오래 망설이던 말을 겨우 꺼내듯이 수줍게 점심을 같이 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그는 몇 년간 지켜보았는데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동생 같아서 그저 밥을 한 끼 사주고 싶었노라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내의 안경 너머에서 오는 그 깊은 눈빛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 눈빛 속엔 당시 내가 한참 빠져 있던 백석의 <고향>에서 보았던 온기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타향에서 혼자 앓아누워 있던 시인이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고 노래한 의원의 그 온기 말이다. 나 역시 그의 눈빛에서 떠나온 부모와 고향의 흙냄새를 마주하였으리라.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을 대접받았다. 그 '밥심'으로 시를 쓰고 책을 만들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물론, 밤새 습작을 하던 내 대신 순찰을 돌던 그 극성스럽던 거위의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여러분의 기억 속 가장 따뜻했던 밥은 언제였나요? 누구와 함께였나요? 밥을 추억하다 보면 함께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니까요.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두 번째 시어, "옷"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손택수 수필 <거위와 점등인의 별에서> 전문

거위와 점등인의 별에서

  스물다섯에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연극판을 기웃거리다가 철 지난 포스터처럼 뜯겨서 거리를 떠돌아다닌 뒤의 일이었다. 상처투성이였다. 게다가 친구들은 졸업을 준비할 나이였으니 낙오병이라는 자괴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늦은 건 없어. 낙오한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도 있겠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나의 낙천주의는 경쟁을 외면하는 습관으로부터 온다. 남쪽 바닷가 소도시의 산골마을에 짐을 푼 나는 무엇보다 만(灣)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교정으로 거느린 캠퍼스가 좋았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면 섬을 품은 바다를 산들이 어깨를 겯고 호수처럼 아늑하게 품어주고 있었다. 그 바다가 바로 임화의 시 <현해탄>의 바다였다.
  바다가 캠퍼스라면 소라와 게들, 말미잘과 교우관계를 맺으며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병들어 남행한 임화처럼 나는 치자향이 좋던 가포와 장지연 열사의 유택이 있던 현동과 덕동 바닷가를 떠돌며 자취생 생활을 하였다. 부러 도시 외곽을 선택해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불편을 복으로 삼을 줄 아는 은자(隱者)의 후예라도 된 것처럼 은근한 긍지가 나를 제법 오똑하게 했다.
   강의를 마치면 학교에서 야간 수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근로장학생'이라는 좀 멋쩍은 딱지가 붙은 나의 첫 임지는 대학원이 있는 건물이었다. 청소를 하시던 아주머니들이 퇴근을 하고 나면 아주머니들의 쉼터가 초소로 바뀌었다. 책상 하나와 목제 침상 그리고 낡은 갓등이 있는 오두막에서 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습작을 하였다. 혼자서 하는 습작에 진척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의 습작방법이란 그저 더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시집을 만나면 필사를 해보는 것뿐이었다. 오른쪽 검지에 펜혹이 생길 때까지 필사를 하다 보면 뻐근해오는 어깨에 말의 근육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서로 길이가 다른 투수의 팔처럼 나는 글쓰기 신체로 몸을 바꾸는 변신의 고통을 달게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의 수더분한 선임들이었던 정문의 수위 아저씨들은 야경주독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출근과 동시에 수위실에 틀어박혀 소설책이나 파고 있는 나의 해태를 매번 눈감아주었다. 뜻밖에 내가 근무를 제대로 서나 안 서나 꼬장꼬장한 잣대를 들고 삼엄하게 감시를 한 선임은 따로 있었다. 학교 연못에 터를 잡은 그는 쉴 틈 없이 순찰을 돌았다. 도르래 소리 같기도 하고 마치 녹슨 철문을 열었다 닫을 때 나는 소리처럼 쇳소리가 나는 그의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는 진폭이 꽤나 커서 그가 바로 이 대학의 터줏대감임을 능히 알게 하였다. 하긴, 한밤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소리가 나면 득달같이 그 요란한 호각을 불며 출동을 하였으니 내 수위 업무와 태반은 그가 본 것이나 다름없다. 가을밤 창문 밖을 온몸으로 하얗게 후레쉬를 비추며 걷는 그를 보면 적이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심지어 깊은 수면에 빠져 있을 때조차 하얗게 깨어 있을 줄 알았다. 경비를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나 해야 할까.  
  그 경이로운 수위 선임은 거위였다. 노을이 지면 나는 뒤뚱거리는 거위와 함께 저물어가는 교정에 가로등을 켰다. 멀리 섬들에도 접선신호처럼 불이 들어오고 하늘에도 개밥바라기 별이 켜지면 나의 대학도 어느새 점등인의 별이 되었다. 새벽이면 서리에 으슬으슬 입술을 깨물고 떨고 있는 별들에게 이제 질 때가 되었다는 신호로 스위치를 내리기 위해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그때도 거위는 나와 함께였다. 가로등 스위치 오르내리는 소리를 따라 전체가 회전을 하는 것 같았을 때, 늦깎이 대학시절의 열패도, 실패로 얼룩진 습작기의 낭패와 가난도 조금은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뀌어갔을 것이다.  
  수위실에서 나는 짬이 날 때면 대학원생 선배들의 구두를 닦았다. 어느 명절 앞날이었다. 고향 내려갈 준비로 다들 어수선할 때, 식사를 마치고 수위실에 들른 같은 과 조교 선배의 깨어진 구두코가 보기 참 딱했다. 상처에 연고라도 바르듯이 코에 까무스름 구두약을 바르기 시작한 것이 마칠 때쯤 해서는 구두 전체가 유리처럼 반짝거렸다. 아마 내게 세탁기술이라도 있었다면 구겨진 옷 주름을 수평선처럼 좍 펴주고 싶었으리라.  
  그 이후부터 대학원생들의 구두가 수위실을 '구두 병원'으로 만들었다. 소문이 퍼져서 행정실 직원들의 구두까지 순번을 기다리는 일이 일어났다. 생수병을 오려 만든 내 저금통엔 슬며시 놓고 간 지폐들이 모여 한 학기 장학금이 되었다.  
  어느 날 수위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가는 길에 가끔씩 부딪치던 행정실 직원이었다. 그는 오래 망설이던 말을 겨우 꺼내듯이 수줍게 점심을 같이 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그는 몇 년간 지켜보았는데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동생 같아서 그저 밥을 한 끼 사주고 싶었노라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내의 안경 너머에서 오는 그 깊은 눈빛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 눈빛 속엔 당시 내가 한참 빠져 있던 백석의 <고향>에서 보았던 온기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타향에서 혼자 앓아누워 있던 시인이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고 노래한 의원의 그 온기 말이다. 나 역시 그의 눈빛에서 떠나온 부모와 고향의 흙냄새를 마주하였으리라.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을 대접받았다. 그 '밥심'으로 시를 쓰고 책을 만들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물론, 밤새 습작을 하던 내 대신 순찰을 돌던 그 극성스럽던 거위의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손택수,『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창비, 2020.

댓글로 감상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언과 제언도 감사히 듣겠습니다.


댓글로 주신 "밥은 OO이다."를 정리해서 적었습니다. 


밥은 인간이다.

밥은 기다림이다.

밥은 식모다.

밥은 떠오르는 얼굴이다.

밥은 힘이다.

밥은 우리 엄마다.

밥은 위로와 성장이다.

밥은 딜런이다.

밥은 가족이다.

밥은 보약이다.

밥은 사람이다.


(업데이트: 05/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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