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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Feb 02. 2024

죄짓는 마음

<시 짓는 마음>의 네 번째 시어(詩語)는 "죄(罪)"입니다.


첫 문장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죄에 관해 이야기하려니 그렇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무슨 죄를 지었던가 반성해 봅니다. 소싯적에 내가 울린 수많은 남자.... 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에 나는 외로워했다."

- 강경 (feat. 윤동주 <서시>)


성당에 다닙니다. 천주교 신자는 '고해성사'를 할 때 스스로 알아낸 죄를 사제에게 고백한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인지하지 못하는 죄까지 털어내고 싶은 것이 우리가 죄를 대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믿는 종교가 없어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해성사한 지가 한참 됐네요.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있나 봅니다. 네? 마지막으로 성당에 간 게 언제냐고요? 안 가르쳐주고 바로 <죄짓는 마음> 편 시작하겠습니다.




학교에서 근대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의 고뇌와 시련에 관해 배웠습니다. 한용운(1879~1944), 이육사(1904~1944), 윤동주(1917~1945)의 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고난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가 죄인이라 부르며 가두었던 독립운동가 시인들은 우리나라 역사에 위인으로 기록됐습니다. 생몰년도를 이름 옆에 적다 보니 세상을 떠난 해가 비슷하여 숙연해집니다. 광복을 못 보고 떠났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현대에도 많은 시인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반성하는 시를 썼습니다. 죄에 관한 첫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면죄부


 아무개야

 열 세 살 이라크 소녀야

 겁에 질린 검은 눈동자

 핏물든 치마폭

 어른거려 힘든 이 며칠

 

 자욱한 포연 속에서

 오십 몇 년 전 내 나이의 너를 보면서

 손녀딸 같은 너를 보면서

 더러는 애써 외면하면서

 네 두려움을 허기를 달래줄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유니세프에서 보낸 <이라크 어린이 긴급구조>로

 몇 푼 보내고

 면죄부를 받고 싶은 나를 숨기지 못해

 바라본 하늘자락에 비행운

 

 어른들의 전쟁놀이에

 열 세 살 네 꿈은 결박당하고

 그래도 힘내!

 이런 말로 너를 위로할 수밖에 없는

 나도 암호명도 모른다

 화학무기의 기호도 모른다

 승자의 상처도 저 지는 꽃잎 같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충희, 『문학과 창작』, 2003년 5월호.


이충희(1938~2021) 시인은 <면죄부>에서 2003년 이라크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보고 전쟁 피해자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열세 살 아이를 지칭한 것으로 보아 열세 살 소녀의 연설에 관한 뉴스를 보고 느낀 감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미국 메인주의 중학생이었던 열세 살 샬롯 앨더브란(Charlotte Alderbron)은 반전 시위에 참여해 "이라크 어린이들은 어떻게 하나요? (What About the Iraqi Children?)"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의 앞부분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400만 명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이라크에는 1천200만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세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남자아이일 수도 있고, 저처럼 붉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샬롯 앨더브란의 연설문 일부, 2003년 3월. (원문: 한글, 영문)

열세 살 미국인 소녀가 사람들 앞에 서서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연설문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럼에도 이라크 전쟁은 9년 가까이 2011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 이후로도 지구는 전쟁과 내전으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면죄부>에서 "이라크" 대신 들어갈 단어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많은 어린이가 꿈을 결박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충희 시인은 "승자의 상처"도 "지는 꽃잎" 같을 거라고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소 전쟁에 참전한 소녀 병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뜻을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승자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1948~ )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1940년대 초 독소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자원입대한 소련인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1979년에서 1983년까지 200여 명의 여성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며 취재했습니다. 저격수, 위생사관, 고사포 지휘관, 공병, 보병, 운전병, 의무병, 간호병, 정찰병 등으로 복무한 그들의 고백을 청취해 글로 옮겼습니다. 남자들의 세계로만 여겼던 전쟁 속 여성 참전용사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1985년에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출간됐고, 한글 번역서는 작가가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2015년에 출간됐습니다. 밥 아저씨보다 한 해 먼저 노벨 문학상을 받았네요. (밥 아저씨에 관해 알고 싶다면, <옷 짓는 마음> 참고)


읽기 힘든 책입니다. 노인이 되어서도 떨쳐내지 못한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생생하고 잔혹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읽다가 여러 차례 멈춰야 했고 책을 다시 펼치기가 두려웠습니다. 책 내용의 일부를 옮깁니다.

그네들은 많이 울었다. 소리도 질렀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네들은 심장약을 먹었다. ‘구급차’가 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어….”
“난 당신에게 딱한 마음이 들어. 내 이야기가 어떤 건지 나는 아니까…. 정말 그걸 알아야겠어? 딸같이 생각돼서 물어보는 거야….”
“폭격은 밤에야 끝이 났어.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눈이 내렸지. 우리 병사들 주검 위로 하얗게… 많은 시신들이 팔을 위로 뻗고 있었어… 하늘을 향해… 행복이 뭐냐고 한번 물어봐주겠어? 행복… 그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처럼 산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야….”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누군가 옆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전쟁터에 있어…”
“이른 아침에 엄마가 나를 깨우더라고. ‘딸아, 네 짐은 내가 싸놨다. 집에서 나가주렴… 제발 떠나… 너한텐 아직 어린 여동생이 둘이나 있잖아. 네 동생들을 누가 며느리로 데려가겠니? 네가 4년이나 전쟁터에서 남자들이랑 있었던 걸 온 마을이 다 아는데…’ 내 영혼을 위로할 생각은 마.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받은 포상에 대해서만 써….”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 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트럭을 타고 가다보면 사람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게 보였어. 짧게 깎은 머리가 파르스름한 게 꼭 햇빛에 돋아난 감자싹 같았지. 그렇게 감자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었어… 도망치다 넘어진 모습 그대로 갈아엎은 들판에 죽어 누워 있었어… 꼭 감자처럼….”
“나는 전쟁을 회상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도 내 모든 삶이 전쟁 중이니까….”


전쟁 중에 키가 자랐다는 말에 가슴이 저립니다. 소녀들이 전쟁에 참여할 일도, 전쟁터가 된 집에서 두려움과 허기를 느낄 일도, 전쟁을 멈추기를 호소할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평범한 아이로 자랄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면죄부> 같은 시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같은 책이 나올 일도 없겠지요.




잔혹한 전쟁을 옹호하고 부추기는 시인이 있습니다. 두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전쟁광 보호구역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콩소총으로 쏘아 진흙밭에 빠트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꽃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배설한 콩깍지 지뢰들이 픽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이 콩알을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이 백기를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너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반칠환, 『전쟁광 보호구역』, 지혜사랑, 2012.


이런 전쟁이라면 대찬성입니다. 군자금도 대고 싶습니다.


반칠환(1964~ ) 시인은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무거운 현실을 익살스럽고도 따스하게 표현했습니다. 진흙으로 만든 대포로 도토리 대포알을 쏘고, 자동콩소총을 쏘고, 콩깍지 지뢰들이 터지고, 온갖 씨앗 폭탄이 꽃으로 피고, 할미꽃으로 백기를 드는 전쟁의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흐뭇합니다. "흙인형 포로들", "무서운 전쟁광들"이라는 표현에서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가 꿈꾸는 전쟁광 보호구역에는 죽음은 그림자조차 없고 생명만이 가득합니다. 학교 마치면 학원버스에 실려 다니며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런 전쟁광 보호구역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철모르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전쟁광 보호구역>은 식물들의 낙원을 보여줍니다. 동물의 세계는 어떨까요? 반칠환 시인의 작품 하나 더 감상하시겠습니다.


 먹은 죄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반칠환, 『전쟁광 보호구역』, 지혜사랑, 2012.


먹은 죄가 있어서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 평화로운 숲속의 이야기입니다. 동물은 배를 채울 만큼만 먹습니다. 욕심부리고 쌓아두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만 그렇습니다. 많이 먹은 죄를 뉘우치며 전쟁 같은 다이어트를 다짐합니다. 전투 식량으로는 도토리, 해바라기씨, 콩....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 없기에 그렇게 살고 싶은 소망을 글에 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알아낸 죄와 알아내지 못한 죄를 글로 써서 덜어내 봅니다.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바라면서요. 저와 함께 글로 다이어트하시죠.


도토리, 해바라기씨, 콩....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다섯 번째 시어, "한숨"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소오생 작가님의 글을 한 편 소개합니다. 

20여 년간 노숙인을 대상으로 빈민 사목을 한 김대술 신부님의 시집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죄'와 '구원'에 관한 성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상하고 행동하는 순례자의 노래> 김대술, 『그대에게 연을 띄우며』 (2018)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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