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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Feb 09. 2024

한숨짓는 마음

<시 짓는 마음>의 다섯 번째 시어(詩語)는 "한숨"입니다.


'한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 이 글을 구상하고 쓰면서 반복 재생으로 들었던 그 노래, 이하이의 <한숨(Breathe)>으로 <한숨짓는 마음> 편 시작합니다.


한숨(Breathe) - 이하이

한숨(Breathe) - 이하이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 (**) 반복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이제 다른 생각은 마요
깊이 숨을 쉬어봐요
그대로 내뱉어요

(**) 반복

정말 수고했어요

이하이(1996~ )는 가수로 데뷔한 후 공황장애를 겪으며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숨에 대해 노래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숨을 편하게 쉴 수 있게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사람들에게 닿았는지 <한숨>은 2016년 3월에 발표된 직후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하이의 노래 <한숨>의 영문 표기는 '숨 쉬다'라는 뜻의 'Breathe'입니다. 가사에서 '한숨'이 쓰인 맥락을 보면 탄식을 뜻하는 한숨, 영어로 'Sigh'이지만 대신 '숨 쉬다'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숨쉬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듯이 명사인 'Breath' 대신 동사 'Breathe'를 썼습니다. 이 노래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위로와 응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박효신의 <숨(Breath)> 또한 그런 위로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가볍거나 쉬운 일에 빗대어 쓰는 '숨 쉬듯'이라는 표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이 삶을 들었다 내려놓는 것처럼 무겁고 힘겨운 것일 수 있을 테니까요.


<한숨>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이 곡을 작사·작곡한 가수 종현(1990~2017)이 이듬해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과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던 그였기에 더욱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종현은 생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Poet)과 하고 있는 것(Artist)을 목뒤에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그 뜻을 담은 <PoetㅣArtist>라는 제목의 유작 앨범이 2018년에 발매되었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아티스트 종현에게 당신은 이미 시인이라고, 당신의 <한숨>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시이며 노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많은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받았던 관심만큼이나 무거웠을 한숨을,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한숨>의 노랫말처럼 정말 수고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한숨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올려 보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한숨을 가장 많이 쉴 것 같은 사람. 저는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담은 한숨에 관한 시 한 편 감상하시겠습니다.


 한숨의 크기

 - 어머니학교 19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 흐린다지만,

 그 미꾸라지를 억수로 키우면 돈다발이 되는 법이여.

 근심이니 상심이니 하는 것도 한두 가지일 때는 흙탕물이 일지만

 이런 게 인생이다 다잡으면, 마음 어둑어둑해지는 게 편해야.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


이정록, 『어머니학교』, 열림원, 2012.


이정록(1964~ ) 시인은 2012년에 72세의 어머니 이의순 여사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연작시집 『어머니학교』를 발표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받아 적는 대로 시가 된다"라고 하며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구절"을 72편의 연작시로 완성했습니다. ('연작시'에 관해 알고 싶다면, <집 짓는 마음> 참고)


삶에서 우러나온 어머니의 철학과 지혜가 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한숨의 크기>에서 어머니는 근심과 상심이 모여 마음이 어둑어둑해지는 것조차 편할 수 있다고 인생을 관조합니다.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라며 한숨 또한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달관합니다.


한숨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한숨은 한이 서린 숨이 아니라 깊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달관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이 고단한 삶을 지탱할 동력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가족들의 어록을 수집해야겠습니다. "오늘도 OO이 보고 싶으면" 같은 말을 부지런히 받아 적어야겠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정록 시인은 37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최근 시집에 실린 작품을 한 편 감상하시겠습니다.


 그럴 때가 있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이정록, 『그럴 때가 있다』, 창비, 2022.


<그럴 때가 있다>에서 화자는 돌주먹으로 가슴을 칠만큼 커다란 울분을 상징하는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다 참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작고 가녀린 생명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럴 때가 있다>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닿아 맞물려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표제시(시집 제목의 시)인 만큼 시인이 지향하는 가치가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시집에 담긴 "시인의 말"을 옮깁니다.

시인의 말

"이런 진흙탕 싸움은 처음이라고, 누구는 절망의 한숨을 쉰다. 처절한 싸움만이 평화를 낳는다고, 누구는 희망의 주먹을 불끈 쥔다. 

원고지는 입이 이백개다. 혀는 빙산의 일각, 얼음에 갇혀 있다.
 
질문과 파문! 얼음 속에서라도 질문이 살아 있으니, 아직은 파멸이 아니다. 답은 하나다. 앞뒤가 아니라, 옆이다. 당신 곁이다."

이정록 시인은 "절망의 한숨"이건 "희망의 주먹"이건 답은 앞뒤가 아닌 옆, "당신 곁"이라는 연대 의식을 강조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전쟁의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 그 마음이 촛불의 깜박임으로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준다는 믿음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돌아가신 조상과 살아있는 자손이 함께 하는 설 명절입니다. 서둘러 떠난 가족의 빈자리에 한숨짓는 분들께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그 무거운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한숨만큼 깊은 마음이 아득히 먼 곳에 닿을 거라 믿습니다.


언젠가 한숨이 심호흡이 되는 때가, 그럴 때가 올 겁니다.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여섯 번째 시어, "눈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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