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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Feb 16. 2024

눈물짓는 마음

<시 짓는 마음>의 여섯 번째 시어(詩語)는 "눈물"입니다.


사람은 왜 기쁠 때 눈물을 흘릴까요? 슬플 때는 웃지 않는데 말이죠. "힘들 때 웃는 사람이 일류"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슬플 때 웃는 사람을 떠올리자면 저는 '조커'가 생각납니다. 아름답지 않네요.


눈물에는 심신 안정 효과가 있습니다. 분노, 슬픔, 감동, 기쁨이 격해질 때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이 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호흡과 심장박동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분노의 눈물은 짠맛이 강하고, 슬픔의 눈물은 신맛이 강하며, 기쁨의 눈물은 약간 단맛이 난다고 합니다. 울면서 검지로 눈물을 찍어 맛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 또한 아름답지 않네요.


네 편의 시를 준비했습니다. 이 글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눈물짓는 마음> 편 시작합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시인의 눈으로 눈물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눈물에 관한 첫 번째 시 소개합니다.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곰국을 끓이다 보면 더 이상 우려낼 게 없을 때

 맑은 물이 우러나온다 그걸 보면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뽀얀 국물 다 우려내야 나오는

 마시면 속이 개운해지는 저 눈물이

 진짜 진주라는 생각이 든다

 뼈에 숭숭 뚫린 구멍은

 진주가 박혀 있던 자리라는 생각도

 

 짠맛도 단맛도 나지 않고

 시고 떫지도 않은 물 같은 저 눈물을 보면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뭔가 시원하게 울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뽀얗게 우러나온다  

 

성미정, 『사랑은 야채 같은 것』, 민음사, 2003.


역시 시인은 상상력이 남다릅니다. 눈물을 찍어서 맛보는 상상이나 하는 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아주 "뽀얗게 우러나"옵니다.


성미정(1967~ ) 시인은 눈물을 뼛속에 있는 진주에 비유해 곰국 끓이듯 눈물을 우려낸다고 표현했습니다. <눈물은 뼛속에 있다는 생각>이 수록된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2003)에는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시가 실려있습니다. 이 제목 또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사랑을 야채에 비유한 시가 궁금하시죠? 궁금하면 500원, 내지 말고 직접 찾아보실까요? 그러면 여러분은 시를 찾아 읽는 독자가 되시는 겁니다. 그렇게 시가 서서히 여러분의 삶에 스며드는 것이죠. 사랑은 왜 야채 같은 걸까요? 무슨 야채일까요?


시를 가까이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진주처럼 영롱하고 아름답습니다.




뼈에 박힌 진주 같은 눈물이 뽀얗게 우러나오는 때는 언제일까요? 눈물에 관한 두 번째 시 감상하시지요.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엄마 걱정>은 기형도(1960~1989) 시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1989) 마지막 장에 실린 작품입니다. <밥 짓는 마음>과 <집 짓는 마음> 편에서 소개할만한 시로 적어두기도 했었습니다. 밥과 관련된 시어 "찬밥"과 집과 관련된 시어 "빈방"이 있어서입니다. <눈물짓는 마음> 편에서 꺼내게 됐지만, 이 작품에서 "눈물"이라는 시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눈물의 이미지가 선명한 것은 "훌쩍거리던"과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이라는 표현이 있어서입니다.


중심이 되는 시어는 "엄마"입니다. 집에 오지 않는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이 "찬밥처럼 방에 담겨"있고 집이 "빈방"으로 느껴져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엄마가 없으면 따듯한 밥에서도 온기를 느낄 수 없고 다른 가족이 있어도 집이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가진 힘입니다.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기 전까지 엄마는 우리에게 밥이고 집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가 곁에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은 본능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일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학교 마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안 계시면 허전하고 불안했습니다. 엄마가 차 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어디서 갑자기 쓰러진 건 아닌지 그런 걱정으로 마음이 어둡고 무서웠습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던 기분을 중년이 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마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영 떠나시는 날이 오면 그런 기억도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요. 엄마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딸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아이에게도 걱정 끼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고요.




어떤 기억은 냄새로 뼛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눈물로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눈물에 관한 세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종암동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에서 울컥하게 됩니다. 아들 집에 찾아온 아버지가 현관에 들어서자 갑자기 눈물을 흘립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냄새가 나서 반가워서 그런다고 합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냄새로라도 만날 수 있다면 반갑고 기쁘겠지요. 그래서 아버지가 흘린 눈물에서는 단맛이 났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감수성을 물려받았다는 박준(1983~ ) 시인은 눈물을 소재로 많은 시를 썼습니다. 눈물에 관한 산문도 썼습니다. 그의 첫 산문집의 제목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2017)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도 울고 나면 후련하다고,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눈물의 시인이 된 사연이 있습니다. 박준 시인이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2008년에 누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기뻤고 또 슬펐던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물 많은 아버지와 가족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가족을 잃고 흘리는 눈물은 뼛속에서 우러나올 것 같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 한 편 더 감상하시겠습니다. 눈물과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요.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박준 시인은 '슬픔의 연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겪은 슬픔에 침잠하지 않고 타인의 슬픔을 감지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더해진 슬픔이기에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이를 악물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합니다.


그는 등단한 해에 한 인터뷰에서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용산 참사, 제주 강정마을 사태, 세월호 참사 등 사회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초심을 지키며 작품 활동을 해온 박준 시인. 그의 첫 시집에 담긴 "시인의 말"로 글을 마칩니다.

시인의 말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내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만나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아름다워 보자고 시작한 글을 이렇게 마치게 됐습니다. 눈물에 관한 시를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네? 갱년기냐고요? 질풍노도의 중년입니다.


눈물 나는 기억,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슬픔을 뽀얗게 우려내서 글로 쓰면 구멍 난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지 않을까요.


좋은 세상에서 당신의 기쁨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일곱 번째 시어, "이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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