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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Jan 26. 2024

집 짓는 마음

<시 짓는 마음>의 세 번째 시어(詩語)는 "집"입니다.


관한 편을 준비했습니다. 책을 덮었다 다시 펼쳐 읽듯 나눠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네, 글이 길다는 말씀입니다. "두 집 짓는 마음"이라고 하고 두 편으로 나눌까도 고민했습니다. '1가구 1주택'을 준수하기 위해 한 편에 담습니다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묻고 싶지만, 바로 <집 짓는 마음> 편 시작합니다.




간결한 시어 몇 마디에 호흡을 가다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만났을 때 그랬습니다. 집에 관한 첫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주소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박소란,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2015.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하는 질문에 답이 되어준 시입니다. 해설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 산문인지 운문인지 갸우뚱하게 하는 시를 읽으며 가졌던 답답하고 막막했던 마음을 이 작품이 해갈해 주었습니다. 박소란(1981~ ) 시인의 <주소>처럼 적은 말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설명 없이도 마음에 와닿는 시, 몇 번 읽다 보면 저절로 외워질 만한 길이의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주소>를 행과 연의 구분 없이 다시 읽어보시겠습니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느낌이 좀 다르지요? 그 차이를 만드는 행과 연의 기능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리듬, 의미, 이미지의 세 요소가 있습니다 (김춘수, 1982). 시의 내용을 구성할 때 그중 어느 요소를 중시하는가, 강조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행과 연의 구분이 달라집니다


<주소>에서는 "늘"이라는 한 단어가 한 행이자 한 연으로 쓰였습니다. 의미를 강조해 독자가 그 뜻을 천천히 음미하고 소화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어지는 3연에서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하는 처절함에 무게가 실립니다. "안간힘으로" 역시 한 행을 이뤄 의미가 강조되었습니다. "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반복해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이 연상됩니다. "늘"은 또한 마지막 연의 "서둘러"와 대비되어 "하차"를 더욱더 비극적이고 충격적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각각의 시어가 세심하게 선택되고 배치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작품입니다.


'인생은 한방'이라는 말이 있지요. 시에도 한방이 있습니다. '행과 연의 강조 효과'입니다.


시가 사람이라면, 과묵하고 속 깊은 친구일 것 같습니다. 말을 아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하는 영리한 친구요


저는 강조 효과를 브런치 북 연재에 이렇게 적용했습니다. 금요일 연재 <시 짓는 마음>이 돋보이도록 일부러! 화요일 글 발행을 쉬고 있습니다. 절대로! 게을러서가 아니고요. 


강한 부정은 모다? 네, 반성합니다.


내 글은 왜 발전이 없나



안간힘으로 

글을 써야 겨우 일주일에 한 편 발행


그러니 모두

서둘러 다음 시를 감상하시죠




집이 꼭대기 종점에 있어서 안간힘으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집으로 가는 길이 내리막길인 삶도 있습니다. 집에 관한 두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이,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니 빠진 그릇처럼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는 가족들

 기자들이 인화해놓은 사진 속에서 

 들소와 나무와 강이 새겨진 동굴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사내는 짐승을 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으리라

 굶주린 새끼를 남겨놓고

 온몸의 상처가 사내를 삼킬 때까지

 지쳐 동굴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축 늘어진 젖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아기

 퍼렇게 변색된 아기의 입술은 

 사냥용 독화살을 잘못 다루었으리라

 

 입에서 기어다니는 구더기처럼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새벽

 지금도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

 독산동 반지하동굴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김성규, 『너는 내게 잘못 날아왔다』, 창비, 2008.


김성규(1977~ ) 시인의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읽어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여러 읽어서 이해되면 다행이고, 뚫어지게 봐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작품도 많습니다. 심사 위원이 국문학과 교수,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명한 작가이다 보니 그 눈높이에 맞춰져서 그렇습니다. 


저는 <주소>처럼 한 번만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신춘문예랑은 잘 안 맞을 것 같네요. 네? 아, 안물안궁. 헛소리 그만하고 시 해설하겠습니다.


김성규 시인은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에서 반지하 주거 공간을 반지하동굴 유적지로 묘사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 도시화로 인한 경제 불평등과 도시 빈민의 증가, 그에 따른 주거 불평등이 이 작품의 사회적 배경입니다. 가난한 가족이 생존을 위해 분투한 흔적이 집안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생존에 필수인 "물"의 흔적, 그들이 추구한 원시적 자연의 삶을 상징하는 "들소와 나무와 강", 그리고 빈곤한 삶의 현장이 "널빤지"와 "앞니 빠진 그릇"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세파에 시달리며 "온몸이 흉터로 덮"일 때까지 가족을 부양한 사내, 마지막 순간까지 아기를 품에 안은 여인과 젖을 문 채 죽은 아기, 세 가족은 낮고 어두운 곳에서 숨을 거두고 나서야 햇볕을 받습니다. 생전의 치열함이 사후의 평온함으로 전환되고 대비되어 삶은 죽음보다 더 큰 불행으로 인식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후 20년이 흐른 현재에도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 일가족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립니다. 여전히 대도시 그늘 아래 "반지하동굴"에서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행복을 갈망하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며 그곳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녹록지 않은 도시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차라리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꼭 도시에 살아야 합니까?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서울역 앞 양동 무허가 하숙방에 기거하며 막노동하던 시절, 한 술집에서 어느 시인의 눈에 띄어 시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날것의 언어로 도시 빈민과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파했던 그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집에 관한 세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도장골 시편 - 민달팽이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衲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김신용『도장골 시편』, 천년의시작, 2007.


"치워라, 그늘!"이 마지막 연을 이룹니다. 강조 효과 기억하시죠? 민달팽이는 집이 1도 필요 없다는 느낌이 확 옵니다.


김신용(1945~ ) 시인은 2005년에 서울 대림동의 지하 단칸방을 떠나 아내와 충북 충주의 산골 마을 도장골로 들어갔습니다. "생업에 파묻힌 삶과, 가난을 반복하는 시에서 떠나고 싶어서"였습니다. 2006년 초 그는 거처를 옮겨 경기도 시흥 소래벌판 부근 마을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도장골 시편> 연작시 51편을 완성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연작시(連作詩)란? 
"여러 시인이나 한 시인이 하나의 주제 아래 내용상 관련이 있게 여러 개 쓴 것을 하나로 만든 시." 
(출처: 국립 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도장골 시편>은 시집으로 나오기 전에 계간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에 실려 발표되었습니다. 그해 김신용 시인은 <도장골 시편-민달팽이>로 '노작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도장골 시편>은 또한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2006년에 발표된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되었습니다.


김신용 시인은 도시의 반지하 그늘을 벗어난 후에야 빈곤과 소외 대신 자연과 생명에 관한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민달팽이처럼 자유를 누렸습니다.


민달팽이는 옷도, 집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알몸이 안쓰러워 잎사귀를 덮어줘도 귀찮은 듯 빠져나갑니다. 자리 잡은 곳이 집이 되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김지하 시인을 눈물짓게 했던 철창 아래 풀꽃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디에든 자리 잡을 수 있고 생명을 틔울 수 있는 미물의 삶이 부러워집니다. 우리는 지붕이 만들어 주는 그늘과  누일 잠자리에 발이 묶여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밥 한 끼, 옷 한 벌 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중압감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집니다. 민달팽이처럼 살 수 없기에 볕 드는 집을 마련하려 늘 안간힘으로 고군분투하는 도시인의 고단한 삶. 그래서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뿐이었던 가난한 가족은 반지하 그늘에 누워 마지막 순간까지 온기를 나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신용 시인이 말하는 등단에 얽힌 사연과 그의 초창기 작품 <양동시편2-뼉다귀집>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시인의 등단 뒷얘기-김신용] "술집서 술마시다 시인되다...농담처럼, 그러나 진짜인걸 어쩌랴"




여러분은 어떤 집을 꿈꾸시나요? 


시로 짓는 집은 허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돈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집, 누군가에게 지어주고 싶은 집, 시로 맘껏 지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네 번째 시어 "죄"로 돌아오겠습니다.


*소오생 작가님의 글 세 편을 소개합니다.

20여 년간 노숙인을 대상으로 빈민 사목을 한 김대술 신부님의 시집 세 권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절망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김대술, 『바다의 푸른 눈동자』(2013) 독후감

<명상하고 행동하는 순례자의 노래> 김대술, 『그대에게 연을 띄우며』(2018) 독후감

<쟈클린의 눈물, 순례자의 노래> 김대술, 『수원 방랑』(2021)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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