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짓는 마음>의 두 번째 시어(詩語)는 "옷"입니다.
가사가 시 같은 노래를 한 곡 골라봤습니다. 무슨 노래인지 맞혀보실까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첫 소절에서 멜로디가 자동 재생됐다면 '최소 X세대 인증' 1차 시험에 통과하신 겁니다. 호탕한 웃음소리도 들렸다면 2차 시험도 통과! 축하합니다. 이 노래는 김국환의 <타타타>입니다.
<타타타>는 1984년에 발표되었을 때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1992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어 차트를 역주행했습니다. "타타타(तथाता, tathātā)"는 산스크리트어로 "본래 그러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작사가 양인자가 인도 여행 중 그 말을 듣고 영감을 받아 가사를 썼고, 작곡가인 남편 김희갑이 곡을 썼습니다. 인생의 심오한 철학이 담긴 이 곡의 가사는 1992년 제6회 '한국 노랫말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제1회 대상 수상작은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다고 한 <개똥벌레>(가수 신형원, 작사·작곡 한돌)입니다. 같은 해에 양인자는 <타타타>로 'KBS 가요대상' 작사상과 '서울가요대상' 최고 작사가상도 받았습니다.
시 소개를 안 하고 왜 노래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요? 노랫말 또한 시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노래 들으면서 '가사가 완전 시 같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가사와 시는 뭐가 다를까요?
가사와 시는 제시형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제시형식이란 작품이 청중 혹은 독자에게 향유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가사를 노래로 부르거나 듣고, 시를 눈으로 읽거나 낭송합니다. 가사는 노래로 만들기 적합한 형식으로 쓰였다 뿐이지 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는 형태에 따라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분류되는데, 그중 일정한 운율, 행과 연의 형식을 갖춘 정형시가 가장 가사와 성격이 유사합니다.
여기서 질문! 가사를 노래로 부르지 않고 낭송하면 뭐가 된다? 시가 된다. 참 쉽죠?
노랫말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수가 있습니다. 김지하 시인과 같은 해에 태어난 밥 딜런(Bob Dylan, 본명: Robert Allen Zimmerman, 1941~ )입니다. 그는 1960~70년대에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뜻을 담아 수많은 명곡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최근까지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대학이 그의 가사를 감상하고 분석하는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썼다는 찬사와 함께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가사가 문학성을 인정받은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밥 아저씨가 최고! (여기서 웃지 못했다면, <밥 짓는 마음> 참고)
<타타타>의 가사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 받을만한 문학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싱어송라이터가 노벨 문학상 받을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네? 저부터 도전해 보라고요? 안 됩니다. 실력이 안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이름 짓는 마음> 편에서 그 이유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전에 연재가 폭망하지 않는다면요.
<타타타>에서는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 건졌"기에 삶이 "수지맞는 장사"라고 합니다. 빈 몸으로 세상에 와서 떠날 때 옷 한 벌 입고 가니 이득이긴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알몸으로 태어나 역할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으며 한평생 살다가 떠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옷을 입었고, 또 입게 될 것입니다. 배냇저고리, 유아복, 교복, 제복, 양복, 졸업가운, 턱시도, 웨딩드레스, 잠옷, 운동복, 작업복, 전투복, 흰 가운, 상복 등등. 성장 과정에 맞춰, 신분과 직업,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양한 옷을 매일 입고 벗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습니다. 옷이 거저 주어졌을 리 없습니다. 옷의 무게를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밖에 있다가 집에 오면 옷부터 갈아입습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쓰게 되는 가면을 벗듯 불편한 옷을 벗고 편한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옷을 입어도 가볍지 않은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황지우 시인이 <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이라는 시에서 표현했듯 "목욕탕에서 옷 벗을 때/ 더 벗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는 느낌을 받는 때도 있습니다. 삶을 벗을 때까지 우리는 옷이, 삶이 주는 무게와 속박을 견디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옷에, 내 삶에 매달린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면서요.
옷에 관한 시 한 편 감상하시겠습니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시인생각, 2013.
천양희(1942~ ) 시인은 어느 해 겨울 외출하려고 옷을 입다가 잘못 채운 단추 하나가 옷 모양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 인생 전부가 흐트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첫 단추의 실패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난감함에 자기 경험을 투사해 고백하듯 시를 썼습니다.
천양희 시인은 이 작품으로 1995년에 소월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제10회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1995)과 시집 『오래된 골목』(1998)에 실린 <단추를 채우면서>는 2013년에 발간된 동명의 시집에 띄어쓰기가 수정되어 수록됐습니다. 이전에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 "구멍찾기", "한벌"로 붙여 쓴 단어들을 각각 띄어서 썼습니다.
이처럼 시인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수정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단추를 채우면서>처럼 내용은 같으나 맞춤법에 맞게 고치는 경우가 있고, 신춘문예 당선작을 시집에 실을 때 시인이 시어를 수정한 사례(예: "아기"에서 "아이"로)도 있습니다. 인터넷상에 같은 시가 다르게 적혀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성자가 시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잘못 쓰거나, 일부 내용을 생략하거나, 행과 연의 구분을 잘못한 채로 글을 발행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그렇게 잘못 적힌 작품이 그대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자식같이 귀한 작품이 단추 잘못 채운 옷을 입은 것처럼 흐트러진 모습으로 독자를 만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천양희 시인은 <단추를 채우면서>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질문자: "<단추를 채우면서>에서 ‘첫’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순간이 떠오른다. <옷깃을 여미며>를 보면서 이제는 선생님은 그 시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을 때와 옷깃을 여몄을 때는 어떠신가?"
천양희 시인: "‘실패’한 다음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옷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어디에 앉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까, 단추를 ‘꼭 채워야 하나?’ ‘단추가 없는 옷도 입고, 단추가 있어도 채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단추를 채우지 않아도 정직하고 올바를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양희 시인 인터뷰, 2013. (출처: 인터넷신문 인천in)
옷을 대하는 시인의 열린 마음에서 삶의 무게를 많이 덜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현재의 삶이 단추 꽉 채운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단추를 풀어헤치듯 편안해지는 때가 올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서 언급된 시 <옷깃을 여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투더문"을 꿈꿨던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올 작품인 것 같습니다.
비굴하게 굴다
정신 차릴 때
옷깃을 여민다
인파에 휩쓸려
하늘을 잊을 때
옷깃을 여민다
마음이 헐한 몸에
헛것이 덤빌 때
옷깃을 여민다
옷깃을 여미고도
우리는
별에 갈 수 없다
천양희,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투더문(to the moon): 로켓 타고 달나라 가듯 가상화폐의 가격이 차트상에서 수직으로 상승하는 현상
내 몸에 잘 맞는 옷인지는 많이 입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써봐야 내 글의 맵시와 색깔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타타타>처럼 삶이 노래가 되는 시, <단추를 채우면서>와 <옷깃을 여미다>처럼 경험과 감상을 담은 시 한 편 써보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압니까? 열심히 쓰다 보면 밥 아저씨처럼 노벨 문학상 탈지도요. "투더문"이 더 실현 가능성이 있으려나요.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세 번째 시어, "집"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글이 자꾸 길어지네요. 감상, 조언, 제언, 감사히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