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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Feb 13. 2024

1. 절망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김대술 신부님 《바다의 푸른 눈동자》독후감

[님을 위한 글감 자료 사랑방]을 오픈했습니다.

'님'이 누구인지, 다 아시죠? 바로 여러분 작가님 & 독자님이십니다. ^^

<동아시아의 창세기 일장 일절>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 이곳에 동아시아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창작 인스피레이션이 파바박~~ 샘솟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큽니다.

분수 넘은 짓거리를 벌여서 작가님들께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혹시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지는 않을지,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점점 고질적인 직업병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지... 일을 벌이고 나니 두려워집니다.

기탄없는 질정을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김대술 신부님의 시집 세 권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바다의 푸른 눈동자》(2013), 《그대에게 연을 띄우며》(2018), 《수원방랑》(2021).


성공회 사제이신 김대술 신부님은 20여 년 동안 나환우, 나눔의 집,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빈민 사목을 하셨습니다. 특히 2019년 초까지는 수원 다시서기지원센터의 장長으로 근무하셨는데요, 이때 노숙인과 함께 뒹군 거리의 이야기들을 두 권의 시집에 담아 출간했던 사제 시인이십니다.


제가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2016년부터 경기도와 수원시의 위탁을 받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시작할 그 무렵, 하필이면 제가 보직을 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되는 바람에, 신부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2020년에 신부님이 강화도로 근무처를 옮기셨을 때였습니다. 수원 시절의 남은 글을 모아 《수원 방랑》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시집을 내신다며 제게 '독후감(해설?)'을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시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지라 완곡히 사양했습니다만, 결국 신부님을 응원하는 마음 하나로 감히 소개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 시집인 《바다의 푸른 눈동자》독후감입니다.

강경 작가님의 <죄짓는 마음> & <집 짓는 마음>과 연계하여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은 지금 우리 주변의 삶 속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벗님이 그리운 순례자의 생명 교향곡 3부작 (1)



낭송을 시작했다. 문학의 참된 가치를 느끼려면 소리로 두드려 봐야 한다. 수박이 익었는지 궁금할 때 손으로 똑똑 두드려보듯, 사물의 내면을 알고 싶으면 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내면도 마찬가지다. 몸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로 건강을 짐작할 수 있고 영혼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낭송을 통하여 작품 내면에 흐르는 본질의 소리를 듣게 되고, 작가가 창작 시에 느꼈던 분위기와 정감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낭송은 작품을 이해하는 최적의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원 방랑》은 읽히지가 않는다.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다가 이내 끊기고야 만다. 원고를 넘길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가슴은 천근만근이다. 대체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두 권의 전작前作 시집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절망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바다의 푸른 눈동자》 



책을 샀다.

《수원 방랑》이 읽히지 않는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신부님의 기존 시집 두 권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우선 첫 번째 시집, 《바다의 푸른 눈동자》.

이 책도 그럴까? 두렵고 궁금한 마음으로 낭송을 해보았다.


 아이거만의 폭설과 낙석

 포기할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아이젠 날카로움으로 찍어 오른다.     

 얼어붙은 로프에 기댄 동료

 비수의 차디찬 날로

 끊어버린 직후     

 뒤돌아보지 않는 자에게 길은 열리지만

 피톤으로 몸을 절벽에 박고

 오를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빙벽의 침묵     

 아이거 북벽

 인적 끊긴 수원역 북쪽에 있다.

- <아이거 북벽에서>


사랑과 관심 끊긴 차디찬 얼음벽에 갇혀 지내는 수원역 노숙인들의 삭막함이 낭송을 통하여 내 마음속에 그 즉시 전달된다. 그들뿐이랴.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 격리되어 지내는 현대 도시인 ― 우리들 모두의 자화상이다. 낭송하자마자 짙은 공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번에는 〈고등동 여인숙〉. 신부님이 일하셨던 '다시서기지원센터'가 있는 바로 그 동네다. “방 두 평으로, 고만고만 열댓 개의 방/ 이불 한 채, 가스버너, 밥통과 수저/ 그의 지친 몸처럼 엎어진 막걸리 병”밖에 없는 후줄근하고 더러운 여인숙이다.


비탈져 내려오는 골목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겨울

등불 앞세운 저녁 햇살이

여인숙에 먼저 와서 기다린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외로움이 그리움을 업고 가는 것     

신세 진 겨울을 갚기 위해

비닐봉투에 친구 이름 넣어 불러주면

두터운 빙벽 이기며

제비꽃 생글거리는 미소 피어난다  … ( 중략 ) …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익어가는

인도산 향긋한 카레 냄새가

노을처럼 맛있다     

따스한 군불로

신세 진 겨울 지필 때

상처 난 것들 안아주는

고등동 여인숙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낭송하는데, 금세 까닭 모를 눈물이 흐른다. 작은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는 장소가 남아있어 그나마 다행이어서 인 걸까. 어쩌면 〈고등동 여인숙〉은 노숙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다시서기지원센터이자 신부님 자신이리라. 도올 김용옥 선생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 위대한 시”라고 극찬한 것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어라, 아주 잘 읽히는데?




《바다의 푸른 눈동자》는 그러나 기본적으로 읽고 싶지 않은 시집에 속한다.


주로 일그러진 자본주의에 상처받은 한국사회의 어둠과 모순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어둠과 절망이 감도는 후미진 뒷골목을 굳이 산책 코스로 삼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필자도 피해 다니는 수원역 맞은편 집창촌 근처 옛날 버스터미널 일대에는, 몇 년째 재개발이라는 자본주의의 장난으로 텅 빈 건물이 많다. 그곳 방 한 칸이면 〈동사凍死〉 직전인 “김씨, 겨울을 나고도 남는다.” 그러나 “사람이 되지 못한 노숙자”는 몸 누일 공간 얻으려고 고가도로 밑을 찾다가 “개새끼처럼 차에 치였다.” 어찌어찌 살아남아도 그저 “하루치 삶이 덤으로 주어진 것이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  [ 주 1 ]


우리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시베리아 벌판 같은 이 지독한 양극화의 위기를, 가능하면 ‘타조의 믿음(ostrich belief)’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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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1 ]〈고등동 재개발 빈 집〉·〈동사〉·〈무단횡단〉·〈무료급식소의 봄동〉·〈패키지 상품〉·〈시베리아 벌판을 지나며〉 등 참조.




《바다의 푸른 눈동자》는 그래도 읽고 싶은 시집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외로움이 그리움을 업고 가는 것.”

이 시집은 외로움과 그리움의 가치를 가르쳐준다.


광교산 비탈의 싱그럽던 상수리나무들은 만추가 되자 남은 것 하나 없는 낙엽이 된다.

외로움. 노숙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인간 실존의 슬픔 아닌가.


고향 바다의 푸른 눈동자는 차가운 도시의 밤을 견딜 수 있는 힘이다.

그리움. 고향과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삶의 버팀목이 아니던가. [ 주 2 ]


여름날 새벽, 갈치 낚시 마치고 돌아온 어부가 굽는 은갈치 맛 때문인지, 하늘에 있던 별들도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다. 참숯과 석쇠, 그리고 갈치 위에 뿌린 굵은소금처럼, 점점이 박힌 은하수는 늙은 어부가 보고 싶은 것이다. 바다는 은하수를 바라보고, 늙은 어부는 은갈치가 되었다.

- 〈여름밤 은갈치와 은하수〉 전문     


광활한 여름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은하수를 바라보는 고향 바다... 생각만 해도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그 광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게다가 갈치 굽는 고소한 냄새, 굵은소금이 참숯 위에서 타닥타닥 튀는 소리에 별들도 실눈을 뜨고 바라본다니! 시각 청각 후각적 효과가 기막히게 어우러져 선명하게 각인된다. 누구라도 동경하는 그런 추억을 지니고 있다면 엄동설한 눈보라 치는 시베리아 벌판을 걸어가도 얼어 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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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2 ] 〈고등동 여인숙〉·〈상수리나무의 만추〉·〈바다의 푸른 눈동자〉 참조.




《바다의 푸른 눈동자》는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첫째, 시로 쓴 100년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이기 때문이다.

질곡에 빠진 민초들의 삶과, 숨기고 싶은 치부로 점철된 흑역사지만 그래도 읽어야만 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 주 3 ]  


둘째, 세계인이 노래하고 춤추며 선망한다는 화려한 K-문화의 대한민국이

왜 OECD 중에서 자살률 1위의 국가인지, 그 현상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상처의 치유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서는 고향 바다와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였다. 돌이켜보니 절망과 희망이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눈치채기 시작한다.


함께 배를 타던 이웃집 아저씨들과 친구들을 거친 겨울 바다가 삼켜버려 한없이 미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굴뚝 옆에 앉아 있는 소년의 눈동자 속에 바다가 들어오면, 겨울이어도 섬은 아늑했습니다. 파시 철처럼 모두가 바쁜 날들, 저녁밥은 엄마가 해주어도 불씨가 전해주는 따스함이 남아있을 때까지, 굴뚝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소년을 사랑한 것은 바다였습니다.   - 〈바다의 푸른 눈동자〉에서


차가운 도시의 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고향 바다는, 이웃집 아저씨들과 친구들을 삼킨 통곡의 겨울이었다. 그래도 시인은 말한다. 겨울이어도 섬은 아늑했다고. 소년을 사랑한 것은 바다였다고. 고난과 역경逆境의 현실이야말로 구원救援의 샘물이요, 위대한 사랑의 원천임을 깨달은 것일까. 시인은 다시 차분하게 노래한다.


역전 시장 노점상 푼돈을 삼키고

배불뚝이가 된 저축은행 대주주

주머니만 채워도 시샘하지 않고

떡잎 나누어 피는 파릇한 봄동들     

수원역 광장 가득

봄볕을 흩뿌린다.

- 〈무료급식소의 봄동〉에서   

  

인간은 두 부류가 있다.

환난의 겨울이 닥쳐오면 주저앉아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사람들과,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노숙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노숙자들은 쓰러져버린 채 일어나지 못하지만, 어떤 이들은 질곡의 삶일지언정 주머니만 채워도 시샘하지 않고 희망의 봄볕을 흩뿌린다. “자기 앞에 놓인 것 없지만, 추락하여 주저앉은 이들 일으키고 있다.”  [ 주 4 ]


새벽 미사를 드리는 시인은 “숙명의 사제복을 입고/ 흐르는 깊은 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기도와 명상에서 얻은 깨달음을 고백한다. [ 주 5 ]


떨리는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신 사람 때문입니다.

- <미사를 마치고>에서     


그들은 루저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우리들의 스승이라고. 역경과 고난의 겨울은 우리를 성장시켜 주려는 당신의 선물이라고. 아니, 낮은 데로 임하신 하나님 바로 당신이시라고 시인은 고백한다.


절망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바다의 푸른 눈동자》는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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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3 ] 〈노숙 100년사〉 참조.

 [ 주 4 ] 〈상수리나무의 만추〉참조.

 [ 주 5 ] 〈새벽 미사〉 참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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