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연 <여름 이야기>
밤새 고라니가 운다
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는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잠 못 드는 밤,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해 주시곤 했는데
여름이 오면 물컹한 복숭아 입에 한가득 넣어 주셨는데
엄마 아빠는 잠들었고
나는 깨어 있다 혼자
낮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만간 이 집을 정리하자고,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자고
이불을 덮으면 이렇게나 할머니 냄새가 나는데
자주 입으시던 꽃무늬 바지 여전히 빨랫줄에 걸려 있는데
할머니만 없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고라니가 울어서
그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정다연,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 창비교육, 2024.
[원글을 수정한 뒤 다시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