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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Aug 30. 2024

일곱살짜리 갈래머리 계집애가 되어

양애경 <이모에게 가는 길>

 이모에게 가는 길


 미금농협 앞에서 버스를 내려

 작은 육교를 건너면

 직업병으로 시달리다가 공원도 공장주도 던져버린 흉물 공장

 창마다 검게 구멍이 뚫린 원진레이온 건물이 나올 것이다

 그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젊은 버스 기사와 야한 차림의 십대 아가씨의

 푹 익은 대화를 들으며

 종점까지 시골길 골목을 가야 한다

 거기서 내려 세 집을 건너가면

 옛날엔 대갓집이었다는 낡은 한옥이 나오고

 문간에서 팔순이 된 이모가 반겨줄 것이다

 전에는 청량리역까지 마중을 나왔고

 몇달 전에는 종점까지 마중을 나왔지만

 이제 이모는 다리가 아파 문간까지밖에 못 나오실 것이다

 아이고 내 새끼 하고 이모는 말하고 싶겠지만

 이제 푹 삭은 나이가 된 조카가 싫어할까봐

 아이고 교수님 바쁜데 웬일일까라고 하실 것이다

 사실 언제나 바쁠 것 하나 없는데다가 방학인데도

 이모는 바쁘다는 자손들에게 미리 기가 죽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실 것이다

 

 이모는 오후 세시이지만 텅 빈 집에서 혼자 밥을 먹기 싫었기 때문에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무언가 먹이려 하실 것이다

 하지만 눈 어둡고 귀 어둡고 가게도 먼 지금동 마을에서

 이모가 차린 밥상은 구미에 맞지 않을 것이다

 씻은 그릇에 밥알도 간혹 묻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가지고 온 과자나 과일이나 약 따위를 늘어놓으며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먹고 싶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모는 아직 하얗고 아담한 다리를 펴 보이며

 다리가 이렇게 감각이 없어져서 걱정이라고 하실 것이다

 그래서 텃밭에 갔다가 넘어져서 몇달 고생도 했다고 하실 것이다

 

 트럼펫처럼 잘 울리는 웃음소리를 가진

 아이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젖을 먹일 만큼 좋은 젖가슴을 가졌던 이모

 아이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하던 이모

 이모의 젖을 먹지 않고 큰 아이는 이 집안에 없었다

 이제 이모는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젊은 아이들에게 지청구를 먹을까봐 이야기를 걸어도 머뭇거리신다

 그냥 아이구 그래 대견도 하지라고 하실 뿐이다

 

 지어 온 한약을 내놓고 한시간이 지나면

 나는 여섯시 이십분 기차니까 지금 가야 해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이모는 아이구 그래 차 시간 넉넉히 가야지라고 하실 것이다

 텃밭에 심었던 정구지 한 묶음하고

 내가 사 간 복숭아를 몇알 도로 싸주실 것이다

 그러고도 뭘 또 줄게 없을까 해서

 명절날 들어온 미원이니 참치 통조림이니 비누 따위를 주섬주섬 찾으실 것이다

 꼬꼬엄마 그럼 잘 있어요라고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모의 뺨에 내 뺨을 부빌 것이다

 그러면 이모는 감동해서 역시 내 새끼였지라고 좋아하실 것이다

 마당에 이만큼 나선 나에게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야지 서둘러라라고 하면서도

 어디 한번 더 안아보자 하실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처럼 두 팔로 푸짐한 이모의 가슴을 껴안고

 이모의 뺨에 내 뺨을 꼬옥 대볼 것이다

 이모는 속으로 이 새끼를 이제 못 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속없이 마을버스를 놓칠까봐 뛰어나오고

 세 집을 건너 뛰어가면

 마을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설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며 나는 자꾸만 눈언저리를 닦을 것이다

 노인네 혼자 빈 집에 남겨져

 젊은 애들한테 방해나 되게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닌가 하면서

 잘 펴지지 않는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여보면서

 혼자 오래 걸려 방으로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면서

 우는 나를 마을버스 기사가 의아하게 거울 속으로 바라볼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번잡한 길에서 느꼈던 짜증이 부끄럽고

 사람이 늙는다는 게 슬프고 무서워서

 다시는 살아 있는 이모를 만나지 못할까 무서워서

 나는 더 운다 원진레이온 앞에 올 때까지 십분이 못 되는 시간을

 

 그리고 눈물에 깨끗이 씻겨서

 이모가 길러주었던

 일곱살짜리 갈래머리 계집애가 되어

 청량리역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세상에 꿈도 많고 고집도 세었던

 제일 귀염 받던 곱슬머리 계집애가 되어서.

 


양애경,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창비, 1997.


내 동생은 어릴 때 죽을 뻔한 적이 있다.

할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친구 댁에 가셨는데, 동생이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냄비를 건드려서 팔팔 끓는 물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서둘러 동네병원으로 갔지만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가까운 대학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희망적인 말을 해주지 않았다. 동생은 "뜨거워 뜨거워"하며 울었고, 할머니는 자신의 잘못으로 손녀가 죽게 생겼다며 우셨다.


그렇게 다들 죽을 거라고 했던 동생을 이모가 살렸다. 대전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이모가 응급차를 보내 동생을 그 병원으로 데려갔다.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이모와 동료 간호사들이 동생을 밤낮으로 돌봐주었다. 덕분에 동생은 잘 회복해서 화상 흔적 없이 깨끗한 피부를 되찾았다. 동생이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인데, 우리 가족은 그게 다 어렸을 때 화상을 입은 탓이라고 여겨 안쓰러워했다.


동생과 나는 중년이 되었고, 이모는 노년에 접어드셨다. 이모가 많이 편찮으셔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고 거동이 불편하신 상태다. 어서 천국에 가서 이모부를 만나고 싶다고 하신다.


이모는 첫 조카인 나를 무척 예뻐하셨다. <이모에게 가는 길>의 화자처럼 꿈 많고 고집 센 곱슬머리 계집애였던 나를 늘 사랑으로 대해주셨다. 부디 이모가 천국에 천천히 가셨으면 좋겠다.




<이모에게 가는 길>을 창비시선 500호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2024)에서 읽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다시 읽었을 때 또 눈물을 훔쳤다. 시인이 눈물로 쓴 시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 마음이 전해졌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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