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연 <여름 이야기>
밤새 고라니가 운다
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는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잠 못 드는 밤,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해 주시곤 했는데
여름이 오면 물컹한 복숭아 입에 한가득 넣어 주셨는데
엄마 아빠는 잠들었고
나는 깨어 있다 혼자
낮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만간 이 집을 정리하자고,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자고
이불을 덮으면 이렇게나 할머니 냄새가 나는데
자주 입으시던 꽃무늬 바지 여전히 빨랫줄에 걸려 있는데
할머니만 없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고라니가 울어서
그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정다연,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 창비교육, 2024.
이른 새벽에 잠이 깼는데 간밤에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바빠서 전화 못 하는 줄 알고 있었다고, 새로 맞춘 안경이 쓴 것 같지도 않게 가벼워서 좋다고, 화분을 마당에 내놓으니 화초가 잘 자란다고. 아버지는 들뜬 목소리로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셨다. 수업 준비는 잘 되어가느냐고, 뒷마당에 아버지가 심어준 감나무는 잘 크고 있느냐고.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놓고 기다린 듯이.
다시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깨어있었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공항버스에 올라 짧은 숨을 울컥울컥 삼키던 그날처럼 나는 어둠 속에서 긴 숨을 내쉬었다. 무심한 애인의 연락을 기다리듯 자꾸 전화기를 들여다봤을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