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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Aug 02. 2024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

황동규 <꿈, 견디기 힘든>

꿈, 견디기 힘든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의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문학과지성사, 1978.


나의 꿈은 

길 위에 있어


방향만 있고 

목적지는 없는 산책길

그 길을 걷는다


꿈을 걷는다는 건

꿈 없이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그래도 그 길을 가는 것


나의 꿈은

길 위에 있어


꼭짓점이 아닌 평행선

오를 곳이 없어 

오래 걷는 길




신분증에 꿈이 적혀있다면 어떨까. 

"신분증을 보여주세요"가 당신의 나이와 사는 곳을 확인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의 꿈을 알고 싶어요'라는 뜻이라면. 명함에 지난날의 꿈들과 현재의 꿈들이 적혀있고, 꿈을 품고 살아온 세월이 나이보다 중요해서 꿈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 그런 세상이라면 어떨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의 꿈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글로 남겼다. 강연 중에 박성우 작가의 열두 살 장래 희망(2021)을 소개한 부분을 옮긴다.

장래 희망이라고 하면 운동선수, 요리사, 과학자, 가수 등 여러 직업을 떠올리곤 하는데 직업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니 장래 희망을 직업에 국한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과 꿈 위주로 생각해 보자는 내용이다. “엉뚱한 상상을 많이 하는 사람”, “잘 웃는 사람",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 등등 책에 나온 33가지의 장래 희망을 목록으로 보여줬다. 그것을 소리 내 읽게 하고 나서 아직도 꿈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손을 들어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어릴 때는 장래 희망이 “많이 배우는 사람",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는 사람",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예를 들면서 장래 희망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어른이 되어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신의 장래 희망은 무엇입니까?




문학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을 때 마음을 다잡게 해 준 책이 있다. 김형수 작가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2014)에서 인상 깊게 본 부분을 옮긴다. 작가의 딸이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아빠 이름은 없다면서 아빠는 시인이 맞냐고 묻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저 아래 불빛 보이냐? 저 가로등이 없으면 저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위험에 빠지겠지? 저 불빛 아래는 하루에 한 사람도 안 지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당연히 기억하는 사람도 아주 적겠지. 그 가로등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쪽으로, 예를 들어 서울역 앞 같은 데로 모여들면 어떻게 될까? 별빛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으로 모여든다면 우주가 파괴 되겠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저 불빛들에게, 세상이 그것을 훨씬 절실히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유명하지 않으니 소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냐? 아빠는 시골에서 사는 불빛이라고 생각해."

김형수 작가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학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적한 시골길에 혼자 켜 있는 고독한 가로등처럼 존재하는 것, 이렇게 존재하는 자가 어법이 서툴거나 표현이 약하거나 인기가 없다고 해서 이 자의 입을 통해 명명되는 어둠 속의 것들의 가치가 작아질까요? 사실은 이것들이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이것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학입니다. 이렇게 혼자 제자리에서 빛날 줄 알면 이제 그 사람의 생을 통해서 문학이 흘러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발행한 첫 글이 <귀향할 결심>이다. 그 글에서 나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 "강경에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꿈을 꾼다. 여전히 "시골에서 사는 불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꿈, 견디기 힘든>이 실려있는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는 황동규 시인(1938~ )의 5번째 시집이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1호다. 그는 최근 18번째 시집 봄비를 맞다를 문학과지성 시인선 604호로 펴냈다. 


평생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 여든여섯 현역 시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브런치 이웃께,

저는 그제 미국에 돌아왔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늘 아쉬움이 크지만, 미국에 돌아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쉬움이 덜할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그래도 가족과 헤어질 때 밀려오는 슬픔과 눈물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가을학기에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수년 전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잊고 있었는데, 강의 기회가 있다고 2주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바로 든 생각은 '글을 더 치열하게 쓸 수 있겠구나'였습니다. '진정한 작가가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부분의 작가가 창작과 경제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강단에 서게 되어 강의 준비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연재는 이어갈 계획이지만, 한동안 브런치 이웃 방문과 소통을 활발하게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꿈을 응원하며,
길 위의 꿈을 걷는 강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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