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워너비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
어떤 말을 해야 울지 않겠소
어떤 말을 해도 그댈 울릴 테지만
수많은 별을 헤는 밤이 지나면
부디 아프지 않길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
언젠가 사랑에 대해 묻는 이를 만난다면
전부 그대였다고 말하겠소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비겁한 나의 욕심에 그댈 놓친 것이오
시간이 지나면 나를 원망하고
잘된 일이라 생각할 것이오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
언젠가 사랑에 대해 묻는 이를 만난다면
전부 그대였다고 말하겠소
웃어주시오 이젠 돌아서겠소
다시 사랑할 수 있길 바라오
다만 아주 가끔 기억해 주시오
서툴렀던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
언젠가 사랑에 대해 묻는 이를 만난다면
전부 그대였다고 말하겠소
작사, 작곡: 도나 / RICKY / CUZD
노래: SG 워너비
앨범 <시카고 타자기 OST>, 2017.
마르고 갈라진 땅 위에
빗방울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어
스스로 물줄기를 만들고
강이 되어 흐르는
사람이 있어
바위에 부딪혀도 멈추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이 있어
바다에 닿아 파도로 일렁여도
자신의 시작이 물방울이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시민들은 곧바로 국회로 달려갔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였을까?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투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답을 한강 작가에게서 들었다. 지난 7일,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3일 밤, 국회로 몰려간 시민들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날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렇게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과거가 현재를 구한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몫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죽은 자를 구할 수 있을까?
"전부 그대였다고 말하겠소"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1930년대 경성과 2017년 서울을 교차하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문인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타자기에 봉인된 유령 작가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시대의 아픔을 조명한다. 초반 몇 편의 구성이 다소 산만한 탓인지 흥행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시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 준 명작이다.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죽은 자들을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답은 이것이다.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실현하는 것.
"꼭 보고 싶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없어진 광화문 거리를요. 자유와 해방의 기운이 넘치는 조선의 거리를요."
"정말 없어졌네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바칠 게 청춘밖에 없어서 수많은 젊음이 별처럼 사라졌는데. 해냈네요. 우리가. 저도 2017년에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말했잖아. 어느 시대든 인생은 고역이라고. 완벽하게 만들어진 세상은 없어. 어느 시대든 늘 문제는 있고 저항할 일이 생겨. 부딪치고 싸우고 투쟁하고 쟁취하면서 그렇게 만들어가는 세상만이 있을 뿐이야."
"꿈을 꿨어. 걱정 마, 해방의 그날은 와, 분명히! 너희들이 해방된 조선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꿈. 잠시나마 그곳에서 나도 너희들과 함께하는 꿈. 그리고 더 훗날, 언젠가는. 다시 너희들과 함께 할 거라는 희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하고, 정의와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다. 글로, 행동으로 끊임없이 불의에 저항하며.
"이 총 별명이 뭔지 알아요? 총소리가 타자기 소리랑 비슷하다고 해서 시카고 타자기. 펜은 칼보다 강하고 타자기는 총보다 강하다. 좋은 글 쓰시라고요. 여자 꼬시고 부귀영화 꿈꾸는 그런 글 말고. 위대한 글!"
"조국은 빼앗겼지만 나에게서 문장을 빼앗을 순 없어. 글을 쓸 수 없다면 난 유령이나 다름없으니까. 해방된 조선에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미친 듯이 쓸 거야."
"나를 대신해서 이번엔 네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줘. 그 시절, 우리가 이 땅에 살았었다고. 암흑 같은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치열하게 아파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위험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가며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투쟁해 왔다고."
"고생했어. 당신들이 바친 청춘 덕분에 우리가 이러고 살아.
그때 바쳐진 청춘들한테 전해줘. 고생했다고. 이만큼 만들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