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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포 Sep 10. 2023

업무와 감정이입

즐거운 직장인(#15)

회사 이야기이지만,

우선 가족 이야기로 시작한다.


초등학생 딸 둘과 함께 모머니 게임을 하면,

첫째 딸은 항상 운다. 반면 둘째 딸은 태연하다.


첫째 딸을 울린 모머니, 부루마블과 비슷하다.


첫째 딸은 강한 승부욕과 성취욕을 가지고 있다.


눈앞의 과제에 감정을 온전히 담는다.

결과에, 그리고 매 순간의 판단에 집중한다


어쩌면 강박관념과도 같은 민감한 성향이다.

매 순간에 집중하고, 흥분하며,

게임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엉엉 울어버린다.


반면, 둘째 딸은 게임의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다.

둘째는 “엄마가 이겼으면 좋겠어~”라는 태도다.


딸 둘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아내와 나는 둘 모두를 걱정한다.


첫째 딸에 대해서는 지나친 성취욕, 이기심으로

자칫 사회생활이 어려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둘째 딸에 대해서는 너무 욕심과 승부근성이 없어서, 나중에 과연 어떤 일을 하며 살까… 하는 걱정을 한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래도 걱정이고 저래도 걱정이다.


모머니 게임에서 파산을 당해 엉엉 우는 첫째 딸의

모습을 보며, 눈앞의 과제에 대한 감정이입에 대해서

생각한다.




회사라는 공간은 과제(업무)와 사람이 모인 곳이다.


회사라는 공간에는, 나의 첫째 딸 아이처럼 과제를 하면서 흥분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는… 감정을 이입하는 부류의 사람도 있고, 나의 둘째 딸처럼 태연하고 차분한 자세로 덤덤히 과제를 수행하는 부류도 있다.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시절에는 맡은 업무에 감정, 정확히는 열정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분위기였으며, 시간이 흘러 ‘열정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며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열정페이를 풍자한 이미지, 출처: 네이버


‘열정페이’란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으면서 열정/희생을 강요한다는 노동착취를 풍자하는 말.


또 최근에는 ‘조용한 퇴사’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조용한 퇴사란,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고, 적당히 주어진 시간에 수동적으로 맡은 일만 대강하는 업무방식을 풍자하는 말이다.


과연, 어떤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정을 쏟고, 흥분하다가는 ‘꼰대’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당할 수도 있다.


Trend는 업무와 감정을 분리하라고 한다.

업무에 지나친 감정을 투입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업무에 대해 감정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일에 대한 재미도 함께 잃어버리고 만다.

일은 그냥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장인들은 본인의 작품에 극도로 감정을 이입한다.

예술품들은 예술가들이 감정을 쏟아부어서 완성된다.


조용한 퇴사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약간은(?) 꼰대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서, 업무에 감정을 투입하지 않으려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꼰대들이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을 나도 하게 된다. “00사원, 일은 재미있어?”




스스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나, 꼰대 소리를 들을 위험성을 다분히 가진 나는 ‘업무에는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사람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과제(업무)와 사람이 모인 곳이고,

우리는(나는) 자연스럽게…

업무에 대한 감정이입을 넘어서서,

사람에 대해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직장인 분들은 잠시 머릿속으로

회사 생활 중에 들었던 가장 기분 나쁜 말과

그 말을 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한 장면과 한 문장이 떠오른다.


“출장가서 놀다 왔지? 우린 너 없는 동안 개고생 했어.”


내가 장기 해외출장을 가서 매우 고생을 하고 왔는데,

복귀 후 당시의 팀장님께 들은 첫마디이다.

물론 농담의 어조가 배어 있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말 한마디가 마음에 들어와서 박힌다.

가시와 같이 박힌 말들을 마음에서 빼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과연 업무에 대하여 태연한 태도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온 감정을 이입하여서?


내가 스스로 내린 소결론은

업무에 있어서는 감정을 이입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감정을 배제한다 “이다.


그러나 일을 하며 업무와 사람을 구분하기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개 업무에서 충돌하면, 사람이 미워진다.

감정을 다스리지 않으면 관계의 충돌로 끝이 난다.


처음의 업무에 대한 열정이 불쏘시개가 되고,

감정의 불은 사람에게로 옮겨 붙어 화재가 된다.

용암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화산이 되어 폭발한다.

마음에 쌓인 감정은 용암으로 변하여 화산폭발 처럼 분출될 수 있다.


“我是针对事情,不是针对你这个人”


중국에서 격렬한 토론 후 회식자리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직역이 조금 어려워서 의역하자면… ‘저는 업무에 대해 말한 것이지, 당신에게 (악감정을 품고) 대항하는 것이 아니에요.’라는 뜻이다.


“모두 회사가 잘 되자고 하는 일이지요.”


최근 두 부서 간의 입장차이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회의를 한 이후에 wrap up에서 한 리더가 한 말이다.


업무로 인해 뜨거운 감정을 쏟아낸 후,

자칫 잘못하면 나의 감정이 뜨거운 미움으로 변하여 업무에서 사람에게로 흘러갈 수 있다.


위와 같은 몇 마디의 문장들을 내 입술에 익숙하게 만들자. 입술에서 나온 말들은 상대방의 귀를 통해 머리로 감과 동시에, 나의 귀를 통해 나의 머리로도 들어온다.


업무에 대해서는 뜨거운 감정으로 임하였다면,

사람에 대해서는 감정을 빼고 대하자.

굳이 감정을 넣는다면, 이해에 기반한 따뜻함을 담자.


말은 성인군자처럼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어쩌면 이 글은 첫째 딸을 닮은 나에게 하는 말. 나의 마인드 컨트롤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다.




업무에 대한 감정, 사람에 대한 감정에서,

‘말’로 화제가 넘어왔다.


감정은 내 마음속 내면의 문제이지만,

감정을 담은 말은 나와 타인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주니어 시절에는 주로 방어자의 입장에서 서운한 말들이 가슴에 박혔었는데, 이제는 나의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가서 박힐까 조심하는 입장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속에 불과 같은 뜨거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가는 자칫 감정이 용암이 되어서, 언젠가 활화산이 되어 폭발할 수도 있다.


말의 힘은 매우 크다. 나의 말은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영향을 준다. 나의 의식에서 말이 나오지만, 반대로 나의 말이 나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누군가의 험담을 하게 되면, 점점 그 사람을 더 싫어하게 되고, 반대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말을 하면, 조금씩 그 사람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의 의식도 바뀐다(고 믿는다).


가령, 누군가를 향해 “이해가 안되네”라고 말을 한다면, 나의 의식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는 도무지 열리지 않는다. 말을 함으로써 의식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말한다면, 조금은 그 사람의 사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방향으로 의식은 흘러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방이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불과 같이 뜨거운 나의 감정을 계속해서 삭이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따라서 때로는 배출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의 뜨거운 감정을 삭이면서도, 나의 마음을 보호할 수 있을까?


뜨거운 감정을 가졌으나, 울분을 마음 속 한켠에서

삭일 수밖에 없는 역사를 걸어온 한(韩) 민족은

결국 한(恨)이 많은 민족이 되었다.


어쩌면, 뜨거운 감정을 가진 한국인들은

업무와 사람을 향한 울분을 술을 통하여 식혀야 했고,

그래서 회식자리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쓰다 보니 오늘 또 권주가를 쓰는 느낌인데,

이전에 쓴 권주가도 참고하시라.

https://brunch.co.kr/@paphorist/21


다만, 술로 마음을 보호하다 보면, 몸이 상할 수가 있다. 스트레스 관리의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고, 운동, 골프, 종교, 명상, 여행 등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냥 달린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좋은 풍경을 보며 무작정 뛴다. 땀방울과 함께 뜨거운 감정도 배출한다.


(대한민국 직장인 파이팅! 즐거운 직장생활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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