읊조림
23.9.27 이른 아침
휴가날임에도 출근날과 같은 시간에 잠이 깨어
부슬비를 맞으며,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를 하였다.
호숫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호수를 마주한 흔들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30분간 기도하였다.
아주 오랜만에.
고요한 호수에 부슬비가 와닿아 내려앉으며
수면위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인생을 회고하고, 현재의 마음을 토로하였다.
종교적 확신 속에서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
거의 20년의 시간을 보낸 나였다.
최근 5년여간은 무신론자처럼 살고 있는 나이다.
왜 나의 인생에 ‘개입’하시지 않으신는 건지,
왜 나의 ‘자유의지’가 나를 흔드는 것을 내버려 두는지.
왜 나의 수많은 물음과 수많은 요청에 ‘침묵’하시는지.
과거, 현재, 미래까지 아는 ‘전지’한 존재로서,
오늘의 나를 미리 알면서도, 과거의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은 어떠하셨는지? 그래서 침묵하신 건지?
그래서 나의 ‘개입’ 요청과 응답을 구하는 질문에
묵묵부답이셨던 건지.
나는 다만, 이야기 속 수많은 등장인물 중 일부라서,
정해진 운명을 살아가는 존재일 뿐일진대,
어떤 근거로 내가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건지.
미래의 나를 이미 아시는 시선 속에서 바라보는
오늘의 나의 의미는 무엇인건지?
내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꺼져버린 촛불에서 연기만이 흩날리는 것과 같은
나의 모습을 이미지화해서 바라보며,
반성과 변명과 원망과 도움을 뒤섞어 읊조렸다.
오늘 호숫가 앞에서 나의 읊조림이
의미 없는 나의 혼잣말로 그칠지,
무엄한 신성모독으로 벌을 받게 될는지,
아니면,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호수에 와닿는 부슬비의 빗방울처럼,
나의 읊조림은 있었으나, 사라져 버렸다.
오늘이 있다가 사라져 버리듯이.
나의 인생도 호수에 내려앉는 부슬비와 같다.
호수에 내려앉아 사라지기 전까지,
here & now, 나는 아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