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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Nov 16. 2024

언제쯤 나는 나를 알게 될까

그럼에도 즐거우리

흔히 말하는 열심히 사는 삶. 하루하루를 타오르는 장작처럼 연소하는 삶. 고통이 따릅니다. 저는 이런 삶을 좋아하고 추구합니다. 이와 대립하는 쾌락을 누리는 삶은 추구하지 않습니다. 과정과 결과가 정반대로 산출되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삶은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이후의 결과는 적어도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행복하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의 할 일을 다해도 그렇다 할 뚜렷한 뿌듯함이나 성취감 따위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고통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추구할만한 삶의 양식이라고 판단됩니다.


후자의 삶은 어떨까요. 과정은 적어도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자각할 때, 미약한 고통이 동반됩니다. 하지만 이 고통은 미약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제 당장의 쾌락 추구라는 과정을 중단하진 못합니다. 쾌락 추구는 어리석은 걸까요. 쾌락 추구 이후의 과정은 분명히 고통스럽습니다. 현실로 돌아와 과거의 제가 머물렀던 현장을 흐린 눈으로 바라볼 땐 일종의 고통과 두려움이 발생합니다. 아마 고통과 두려움이 선행하고, 그로 인해 제게 닿는 그 무언가 부정적인 요소들을 경감하기 위해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일 겁니다. 이에 합리화와 같은 행위를 하게 되고,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쾌락 추구의 굴레에 또 한 번 갇힙니다.


이 굴레는 어찌 보면 ‘휴식’의 성격을 지니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휴식은 다른 방식으로 행해질 테지만, 아직 한참 부족한 자기 인식에 기반해 생각해 보면 제게 쾌락 추구만을 위한 행위는 휴식이 아닌 듯합니다.


인간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휴식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경험 탓일 거라 생각합니다. 휴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애를 써서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열심히 삶을 살아갈 때면 그 반대의 삶을 누리고 싶어 집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쾌락 추구를 휴식이라 판단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제게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리 조급하진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며 천천히 깨우쳐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쾌락이 목적이 되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스레 순수한 쾌락이 동반되는 행위들을 더 많이 경험해 보고 알아가고 싶다는 소망 하나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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