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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는 게 아니라
피우는 것이었음을

by 작가

학교 안을 달리다가 활짝 핀 벚꽃 나무를 우연히 지나쳤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추운 날씨라고 생각했다.

그건 벚꽃이 아니었다. 모형으로 된 벚꽃 나무였다. 찰나였지만 봄의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꽃은 피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무언가가 '피우는' 것이었다.


개강 첫 주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작년과는 차이가 너무 심해서,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나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작년이었다면,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 내게 할당된 자유로운 시간에 한강에 가서 달리기를 하거나,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갔다. 올해는 꿈도 못 꿀 것들이다.


우선, 작년 학기 초만큼이나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의 일정이 없는 시간에는 결국 학업에 몰두해야 한다. 그 외의 시간은.. 대부분이 '사회생활'이다. 개강총회 자리에서 골똘히 생각해 봤다. 이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것이 나 혼자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보다 가치 있을지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정해져 있다.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어릴 땐 그리 발전적이지 않은 것들도 다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고, 이젠 나에게 득이 되는 하고 싶은 것들조차 다 할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일같이 글을 쓰고 여유 속에서 독서를 하고 운동을 하며 카페 알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통탄스럽다.


기존 이상과 새로운 이상의 충돌인 것이다. 기존의 이상은 내게 편안함을 제공했다. 검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의 표면적 성실 지표라고 볼 수 있는 학업 측면에서도 우수한 결과를 얻었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었고, 일반적인 사회의 시각으로 봐도 아주 올바른 생활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이상은 검증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이상에는 나보다는, '우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연결된 관계가 얼기설기 훨씬 많아졌다. 그 관계를 만들고 유지함에 있어서 단순히 내가 원하는 행동만 할 수가 없다. 딱히 내키지 않는 술의 힘도 빌려야 하고, 때론 시간 낭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이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히 새 학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두렵기 때문이다. 굳게 날 지탱하고 있던 단단한 생활의 방식은 잠시 빼어둔 채 다른 방식을 끼워 넣어야 한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았다. 구태여 새로운 이상을 향할 필요가 있었을까? 필요라기 보단, 변화가 있었으니 그에 동반되는 또 다른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두려운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았지만, 새로운 곳에 내가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조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하나를 위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한마디로 포기하기에는, 아직 무엇인지 모를 그 어떤 이점이 저 멀리서 날 부르고 있다. 올해는 그걸 확인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일관성 있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겠지만,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태세를 바꾸는 것 또한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직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느낌이다. 다음 주에는 한결 안정된 모습의 나로 대학일기를 쓰고 싶다. just the way u are. 그럼에도, 다상다독다작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멈출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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