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현실에 무릎 꿇지 않겠다.
한 주 내내 거의 이와 관련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주변인들에게도 자문과 조언을 구했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이상에 너무나도 치우쳐져 있었기 때문에 현실의 편을 드는 조언에는 크나큰 반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4년 과정을 끝마친 뒤, 취직이라는 그저 그런 비슷한 정답이 너무 싫다.
현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저게 정답이냐 물어보면, 안정적이니까라고 답한다.
왜 안정을 바라야 하는가
경험하고 실패해도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적어도 내게는 대학교 4년을 그저 살아가다 취업하는 것이 현실에 굴종하는 것을 뜻한다.
절대 그렇게 되게 손 놓고 바라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상살이를 해보지 않은 '어린' 21살이라 이런 생각을 한다고 취급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며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경험이 두터워져 현명해져 가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길고 긴 글은, 장장 일주일 간의 내 흐름을 풀어놓은 글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예술이며, 살아가며 느끼는 수많은 의문들과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대해 나만의 방식, 글, 그림, 행위, 여행 등으로 풀어내고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싶다, 한평생.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나의 이상이 실패할 것에 대비하여 현실 측면의 탑을 쌓아왔던 것이다. 그 최종장의 시작이 컴퓨터공학과로의 전과였다. 물론, 최종장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본격적인 현실 준비라고 계획하고 내렸던 판단이다. 현실과 이상, 두 개의 세상을 모두 고려하여 안정적인 나아감을 추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말도 마라. 애초에 현실과 이상 두 세계에 대한 진심 어린 노력이 쉽지 않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의 노력을 위해 이상에 대한 노력의 총량을 감하기엔, 너무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이상 높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성공한다 확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이게. 그래서 현실 측면에 제동이 아주 강하게 걸렸다. 이를 공부가 하기 싫어서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까. 우선, 당연히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절대 공부해서 성적을 받아내는 과정이 순탄치 못하다. 까다롭다. 그로 인해 더욱 이상에 대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과연 잘못된 것일까? 만약 현실이 순탄했더라면, 나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20대 초에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낸 것에 비유해 볼 수 있겠다. 완전한 도피는 아니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상과 마주하고 싶기에 현실에 투자를 최소화하려 한다. 아니, 제거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자퇴를 바란다.
도대체 지금 내가 학교에서 매일 듣는 수업들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혹자는 말할 수 있다. 그 모든 수업과 학교 생활에서의 과정이 모두 내게 양분이 되어 준다고. 사회생활의 일부이고, 버티며 단단해져 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상을 향하는 과정보다 소중할까? 가치 있을까? 내가 하는 경험과 쓰는 시간의 가치는 내가 결정한다. 적어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이상, 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부차적인 양분은 분명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복수전공을 하고, 컴퓨터공학과 수업은 아예 듣지 않고, 문예창작학과 수업만 듣는 것이다. 졸업은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고, 대학교를 활용한 전문적인 교육의 이점은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여기 쓰고 있는 모든 글자는 상당히 체제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를 띠는 것이다. 부모님이 보면 졸도하실 것이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길 원하신다. 하지만 내가 컴퓨터공학과에서 무언갈 증명해 내는 것만이 책임을 지는 길은 아니다. 그래서 난 하루빨리 작가로서의, 예술가로서의 작은 증명을 보이고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 시기까지 기다리다가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동안 어영부영 집중하지 못한 채 쓸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다. 혹여나, 예술이 질릴 수도 있다. 그럴 수가 있나? 그렇다고 쳐보자. 그럼 난 소방관을 하련다. 하지만 예술에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 그 자체에 대해 서술하는 것조차 예술이 된다. 전공 공부가 질려서 이에 대해 논하는 전공 수업은 없지 않은가.
여하튼, 내일 수업을 내가 출석해야 되나 싶다.
하지만 자퇴는 전액장학금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황의 나로서 꽤나 잃을 것이 많은 선택이다. 몇 없는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우리 학교이기도 하고, 고등교육을 활용하여 외부 사람들과의 교류로 나의 실력에 대한 검증과 발전이 가능한 소중한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교육시스템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활용하고자 한다.
우선 또 한 번의 전과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수 전공으로 문창과를 신청하여 다음 학기부터 문창과 학생처럼 살아간다. 마치 전과를 한 번 더 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각각 39학점을 채워야 하지만, 내규는 내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는 이용할 뿐이다 학교의 시스템을. 물론 이렇게 할 경우에 문창과로 전과한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었겠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내가 처음부터 전과를 했을 경우에 어떤 차이가 있었을지, 오히려 예술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고, 이리 빨리 촉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내가 컴퓨터공학과 전공 또한 어느 정도 수행해 나가며 문창과 공부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전의 이상과 현실을 병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끌리는 선택지가 아니다. 무엇 하나를 확실히 정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픈 마음뿐이다. 그렇게 들을만한 수업을 다 수강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학교를 그만둔다. 그리곤 내가 자퇴 후 세워놓은 계획처럼 살아나가는 것이다. 또는 올해 2학기 문예창작학과 공부에 열중한 뒤, 바로 입대하여 1년 반동안 나의 실력을 갈고닦아 일정 성과를 도출하고 더욱 예술에 대한 나의 길을 주변에 확실히 드러내 보일 수도 있다.
현실의 벽이 왜 이리 한없이 높게만 느껴질까
하지만 나는 현실의 벽 안에서 절대 안주하고 싶지 않다.
벽 바깥의 알려지지 않은 세상이 제 아무리 위험하다 할지라도
내가 태어난 이유가 벽 안에 있기 위함이 아니었지 않는가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의 드높은 벽은 자꾸 내 시야를 가렸고
벽 너머를 그리게 했다
하나 아직은 용기가 부족한 나라서
그 벽을 오를 수가 없다
내가 비록 지금은 그 벽 안에서 뜻을 굽히지만
이는 절대 벽에 굴복하는 내가 아니오
오르길 포기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동시에 갈아낼 것이다
그 언젠가
충분한 용기와 함께 벽을 산산조각 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