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 중인 과거
스리랑카에서 예열을 마쳤으니 이제는 진짜 인도다. 한국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인도를 갈 것인가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뉴스에서 볼 수 있었던 열악한 인프라와 치안문제가 특히나 여행자에겐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와이프가 그래도 건축하는 사람이 타지마할은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는데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어서 설득당했다.
사실 갔다가 잘못돼서 죽으면 어쩌냐는 나의 극단적이고 황당한 물음에 그건 운명이고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자는 대답을 듣고 도전을 해보지도 않고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엄청난 기대와 그 기대보다 조금 더 많은 걱정을 안고 여행했던 어메이징 한 인도의 쓰다 보니 엄청 길어진 2023년 10월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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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나라답게 인도는 넓다. 얼마나 넓은지는 인도 밑의 스리랑카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IN 벵갈루루 OUT 델리로 계획을 세웠다. 스리랑카에서 가까운 지역 중에 비행기 값을 고려해서 벵갈루루로
정했다. 인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던 뭄바이에서 바라나시와 조드푸르-델리-찬디가르 구간을 제외하고는 기차를 타고 다녔다. 땅이 넓은 인도에서는 기차 이동이 가장 보편적이기도 하고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동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이동할 때 슬리핑 기차를 주로 이용했다. 여러 매체에서 인도 기차 여행의 현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기에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급의 기차칸을 굳이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Cavin이라는 1등석 칸의 침대좌석만을 타고 다녔는데 “어라, 인도여행 할만한데? “라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여행자들에게 인도의 최고 여행지로 꼽히는 함피를 거쳐서 뭄바이로 갔다. 델리에서 아웃을 하기로 정했기 때문에 뭄바이 기준으로 가장 멀었던 바라나시로 향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바라나시에서부터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갔던 아그라, 핑크시티로 불리는 자이푸르, 호수 도시 우다이푸르까지는 기차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우다이푸르에서 조드푸르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아서 선택할 수 있는 때문에 다양한 이동방법이 있었다. 마침 와이프의 몸이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낼 때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벵갈루루에서 맞이한 시위 때문에 갑자기 며칠간 발이 묶이면서 생각지도 않게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일정이 밀리다보니 마지막 찬디가르는 급하게 소화하느라 왕복 비행기를 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심카드를 개통하는데 오래 걸리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5분이면 될 일을 이틀에 걸쳐 꼬박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절차가 심하게 복잡하긴 했지만 간략한 정보와 빠른 일처리에 익숙한 우리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절차였다.
우리 부부는 그 당시 공통적으로 히말라야 등반에는 관심이 없어서 네팔은 제외를 했기에 히말라야와 가까운 인도의 북부 도시들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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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처음부터 무비자 체류 가능기간인 30일을 목표했기 때문에 도시마다 평균 3일 정도를 머물렀다.
일단 벵갈루루로 오긴 했는데 동선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았다. 휴양지에서 계속 쉬었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고아보다는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인도 배낭여행자들의 인생 여행지로 많이 언급되는 함피였다. 우리가 갔을 때는 불법으로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들이 모두 영업정지 상태여서 숙소 구하기가 힘들었다. 함피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과 기차역이 있던 호스펫에서 자고 툭툭을 하루종일 대절해서 관광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인도의 국경일중 하나인 간디생일(10월 2일)이 겹쳐서 놀러 온 현지인들 때문에 숙소 찾기가 더 힘들었다. 4박 동안 있으면서 함피 곳곳을 돌아다녔다. 왜 사람들이 인생여행지로 꼽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뭄바이로 향했다. 인도 최대 도시이기도 하고 그래도 가장 이름이 익숙했던 곳이었는데 벵갈루루랑은 또 다른 모습의 도시였다.
이제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들을 둘러보기 위해 북쪽으로 향했다. 바라나시부터 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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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고 소와 개와 원숭이의 배설물들을 피해 좁은 골목을 헤매다가 인력거를 타기도 했다. 도시마다 사람과 환경이 너무나도 달랐다.
최첨단 시설들과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있기도 하고 타다만 시체가 떠다니는 강에서 목욕을 하기도 한다.
인도는 내가 여행 중에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곳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로 간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됐다. 역시 사람이다. 사람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인구수가 가장 많은 나라답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많은 걸 느끼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진 거 같다.
스리랑카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딜 가나 사진같이 찍자는 요청이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찍어주다가도 한 장소에서 열명이 넘어가면 우리의 여행이 방해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니 적절한 맺고 끊음이 필요하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가기 싫어했던 나라인데 꼭 한 번쯤은 경험해 보라고 추천해 줄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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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인도여행을 하면서 ixigo train이라는 어플은 필수적이다. 땅이 커서 이동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동과 숙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주로 여행객이 많이 이용하는 1등석 칸은 좌석이 얼마 없어서 예매가 쉽지 않았다. 한 번에 예매를 성공한 적은 드물었고 대부분 대기를 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었다. 기차출발 세 시간 전에는 결판이 났었는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레드버스라는 버스예약 어플도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기차예매에 실패하면 버스예약하고 버스터미널로 툭툭을 타고 갈 수 있도록 기차역 검색 할 때 항상 버스터미널 위치도 알아보았다. 다행히 그런 불행은 없었다. 우리는 토스카드를 등록해 놓았는데 뭔가 오류가 많이 나서 가입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예매 과정도 쉽지 않아서 기차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는 사전에 꼼꼼한 정보확인이 필요하다.
기차다음으로 많이 이용한 이동수단은 툭툭이다. 우버나 올라 같은 어플을 통해서 쉽게 이용가능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목적지 전에 내려주거나 추가요금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함피 (Hampi)
함피는 많은 기대를 안고 갔던 만큼 좋았다. 옛 왕조의 정교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건축물과 생전 처음 보는 자연환경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물론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곳으로 마지막 힌두왕조인 비자야나가르라는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넓은 템플 안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게 만들었던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것도 특이했던 기억이다. 실내가 아니라 외부공간인데 바닥이 돌이라 아주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너무나도 정교하게 조각한 돌들로 만든 흔치 않은 건축물들과 이 세상 풍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동글동글한 돌산, 세계각지에서 모여드는 여행객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함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아직도 형성과정이 신기한 함피의 돌산이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준 곳이 마탕가힐이다. 마그마가 굳어졌다고 하는데 도대체 저 단단한 화강암이 저런 동글동글한 모습이 됐을지 시간의 흐름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와이프가 슬리퍼를 신고 올라갔을 정도로 난이도는 어렵지 않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여행 중에 의도하지 않았는데 우연찮게 그 나라의 국경일이나 축제일 때가 있었다. 함피에 있던 10월 2일이 인도의 국경일 중 간디생일이라 숙소예약도 힘들고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그들의 삶을 함께 느껴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한복처럼 나라마다 고유의 전통복장이 있다. 와이프가 특히나 모험 99의 기질이라 많은 나라의 전통복장을 입어 보았다.
스리랑카에서 산 전통 사리를 인도 함피에서 입고 다녔을 때 지나가던 많은 현지인들의 찬사를 들었다. 옷을 빌릴 수 없는 경우에는 사서 입고 계속해서 가지고 다니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저렴한 걸 찾았는데 저 옷은 날씨도 덥고 통풍이 안되어 너무 더웠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멕시멀리스트답게 기념품으로 한국에 다 가져왔다. 더욱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꼭 한번 도전해 보기를 추천한다.
뭄바이 (Mumbai)
함피에서 갈만한 다음 행선지를 찾아보다가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인 뭄바이로 향했다. 예전부터 유럽열강들의 주요 항로에 위치해 있어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곳으로 서울보다 작은 면적에 서울보다도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건축 설계를 하는 학생이라면 버려지거나 사용되지 않는 땅에 대한 활용방안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뭄바이에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고가 밑을 활용한 공공프로젝트가 있다고 해서 잠깐 들르게 되었다. 왜 잠깐이 됐냐면 분위기가 몹시도 낯설고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무서웠다.
안 그래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은 인도에서 관광객들을 찾아보기 힘든 곳에 덩그러니 놓인 상황은 빨리 자리를 뜨게 만들었다.
건축가와 정부기관의 의도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맨발로 누워계시는 분들이 많아 구경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은 구경당할 수 있어서 구경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바라나시 (Varanasi)
인도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장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더러워 보이는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바로 옆 소각장에서 끊임없이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바라나시다.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뜻깊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힌두교의 성지, 신성한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였다.
아그라 (Agra)
드디어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다. 델리에서 당일치기로도 많이 가지만 우리는 자유여행을 위해 2박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아그라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짧은 일정이었기에 슬리핑기차를 타고 아침 일찍 아그라에 도착하자마자 툭툭을 타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붉은 사암이 2.5km 길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그라 요새는 타지마할을 만든 왕이 유폐되어 갇혀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더 멀리 타지마할이 보이는데 왕의 스토리를 알고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엄청 큰 규모였는데도 어딜 가나 많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북적여서 혼잡했다.
타지마할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숙소에서 묵었기 때문에 해 뜨면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갔다. 그런데도 사람이 많아서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어김없이 새치기를 한다. 인도여행하면서 처음도 아닌데 화내지 말고 침착하게 여행해야 한다고 하지만 줄 서있는 모든 사람을 무시한 채 뻔뻔하게 새치기하는 사람 때문에 이때는 화를 참지 못했다. 비키라고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모든 걸 내려놓으니 한결 편해졌다. 내 마음과 같이 타지마할도 편해 보였는데 이유가 있었다.
완벽한 비율과 대칭이 주는 아름다움은 17세기에 지은 건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이런 엄청난 건물을 지었다는 서사 또한 타지마할을 보는 즐거움이다.
같이 간 와이프가 나를 위해 타지마할 지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누가 먼저 죽냐라던가 돈이 얼마 드는지 알고 있냐라고 하지 말고 그냥 알겠다고 하자. 행복한 여행을 위한 꿀팁이다. 내가 안다.
자이푸르 (Jaipur)
핑크시티로도 불리는 자이푸르는 툭툭을 하루종일 대절해서 투어를 했다. 협박하듯이 추가요금을 더 내라고 화내던 툭툭드라이버때문에 자이푸르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이후 Up to you와 As you like란 말이 무서워졌다.
잘 마할이라는 여름별장을 잠깐 보고 엠버팔라스에서 관광 후 나하르가르 포트에서 노을을 보고 해 질 녘에 맞춰 시내에 내려오니 자이푸르의 상징과도 같은 하와마할을 가장 예쁜 시간에 볼 수 있었다.
하와마할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카페들은 사진 찍기 좋은 명당으로 인기가 많아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웬 커플이 사진사까지 대동해서 사진 찍는다고 비키지 않아서 해가 넘어갈 뻔했다.
우다이푸르 (Udaipur)
자이푸르에서 슬리핑기차를 타고 흰색건물이 많아서 화이트 시티라고도 불리는 우다이푸르에 왔다. 큰 호수가 있어서 호수의 도시라고 한다.
인도여행하면서 “니하오”나 “곤니찌와” 말고 “안녕하세요”로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현지인들이 많았던 곳이다.
아침 일찍 숙소에 도착해서 빨래를 맡기고 바로 관광을 시작했다. 크지 않은 마을 이어서 도보로 돌아다녔는데 호수 건너편에는 한식집도 있어서 오랜만에 한식도 먹고 한국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우다이푸르에 도착한 날부터 와이프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저녁부터 고열에 시달리고 몸살기운이 있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럼에도 다음 도시로 이동을 해야 했다. 몸살인 줄 알았고 몸을 편하게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우린 아직 젊기에.
라낙푸르 사원 (Ranakpur Jain Temple)
우다이푸르에서 다음 여행지인 조드푸르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버스로도 다섯 시간 정도 거리라서 인도에서 이동치고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래서 우다이푸르내에 여러 여행사에서는 경유지를 포함한 택시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컨디션을 위해서 다른 선택지보다는 라낙푸르 사원을 경유하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조드푸르 (Jodhpur)
이번엔 블루시티다. 인도의 도시들이 상징적인 컬러를 가지고 별칭으로 불리는지 몰랐다. 조드푸르는 여러 가지로 기억에 많이 남은 도시다. 여행 중 처음으로 응급실을 가기도 했고 첫 인종차별을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김모한이라는 현지인이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닭갈비 볶음밥과 미역국이 맛있었다. 컨디션이 최악일 때 먹은 한식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잠을 못 이룰 정도의 고열과 온몸이 나타나는 붉은 반점이 제발 아니기를 바랐던 뎅기열의 증상과 같아지고 있었다. 주말이었는데 여행자보험에서 알아서 예약과 접수를 다 해줘서 우리가 할 일은 툭툭 타고 왕복만 했었다. 이때부터 여행자보험 전도사처럼 만나는 한국사람마다 꼭 여행자보험 들라고 한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결국 뎅구피버였다. 당연히 알턱이 없던 파파야 잎의 효능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외에도 파파야잎이 좋다고 해서 조드푸르 시내의 약국을 뎅구 뎅구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결국 구하지는 못했다. 뎅구는 잠복기가 일주일정도라고 하니 인도 어딘가에서 물린 모기가 원인이었으리라 추측한다.
뜻하지 않게 며칠 동안 푹 쉬고 숙소 앞에 오래된 계단식 우물이 있다고 해서 바람도 쐴 겸 잠깐 나갔다가 인생 첫 인종차별 발언을 듣게 되었다. 둘이 앉아서 멍 때리면서 우물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젊은 청년 두 명이 계속 칭총거리기 시작했다. 부글부글했지만 애써 모른척하고 있는데 반응이 없던 우리가 재미없었는지 일부러 우리 바로 앞을 지나가면서 칭총거렸다. 현지인 같아 보였는데 그만하라고 했더니 별다른 대꾸도 안 하고 잠시 후 사라져 버렸다. 무시하려고 했는데 막상 당해보니까 막 쿵쾅거리고 손이 부들거렸다. 분명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쁜 놈들.
찬디가르 (Chandigarh)
조드푸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델리로 향했다. 이제 한 달간의 인도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델리로 오기 전에 자이살메르라는 근교 도시 한 군데를 더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큰 병원도 다시 가보려고 델리행을 선택했다. 그렇게 델리에서 인도여행을 마무리하려다가 우연히 찬디가르를 발견했다. “아뿔싸!! “
우리 둘 다 놓치고 있었다. “르꼬르뷔지에”
건축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이 인도의 한 도시를 계획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곳이 델리에서 가까운 줄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게 되었다.
찬디가르는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지어졌다. 지금도 모든 지역은 “섹터”인 숫자로 표현된다. 섹터 1은 관공서가 몰려 있고 섹터 17은 쇼핑몰이 몰려 있다. 정돈된 도로와 기능별로 지역을 구분하여 도시에서 사는 이들의 주거성을 높이고 편리함을 고려했다.
섹터 1에서는 르꼬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을 볼 수 있었던 투어가 있었다. 책에서나 보던 건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참여했다.
사실 찬디가르는 르꼬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잔느레가 공동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이다. 특히 피에르잔느레는 가구 디자인에도 엄청난 재능이 있어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유명한 디자인이다. 오리지널 작품들을 볼 수 있었던 찬디가르 건축박물관에 갔다
찬디가르에는 건축폐기물로 만들어진 락가든이라는 유명한 공원이 있다. 넥찬드라는 토목직 공무원이 홀로 15년간의 집념으로 만든 공원이다. 처음엔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다가 뒤로 갈수록 공원을 만들게 된 이유보 다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뉴 델리 (New Delhi)
인도의 마지막 도시가 뉴 델리였다. 한 달간의 여행을 뒤돌아보며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인도 여행 초반의 설렘도 줄어들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저도 이렇게 인도여행기가 길어질 줄 몰랐는데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도 휴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