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슬람국 탐방
아직 갈길이 멀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좋은 곳에서 너무 쉬었다. 이제 발리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보르네오섬으로 가기로 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세 나라가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말레이시아의 대표 휴양지 코타키나발루로 결정했다. 솔직히 “노을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라고 생각했었다. 왜 세계 3대 노을로 불리는지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다.
매일 봐도 아름다운 노을을 지켜보다가 바로 옆나라인 브루나이로 향했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나라였다. 경기도 면적의 절반정도 크기인 나라여서 3박 4일뿐이었지만 꽤 많은걸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동쪽으로의 이동을 위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세 도시 모두 우리가 긴 시간 있었던 발리와는 참 많이 달랐다. 발리가 자연에 더 가까웠다면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와 쿠알라룸푸르는 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뜻하지 않게 긴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던 동남아의 2023년 8월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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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발리에서 잦은 이동에 지친 우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두 개의 도시와 브루나이에서는 수도에서만 머물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코타키나발루로 가기 위해서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했다. 미리 찾아본 공항 내 호텔을 이용하지 못해서 우리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공항 노숙을 하게 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코타키나발루는 국내선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컨디션을 잃는 바람에 며칠간 고생했다. 이후 우리는 브루나이라는 약간은 생소한 나라에 가기로 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까지는 비행거리가 약 180KM로 40분 밖에 안 걸린다. 이착륙 시간 빼고 실제 비행시간은 15분 남짓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가 이륙했는데 커피가 식기 전에 착륙했다. 약 7시간 걸려서 버스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브루나이 국적기도 타보고 싶었고 직전의 공항노숙 때문에 우린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느끼고 컨디션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정비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도시 간 이동이 없었기에 말레이시아 시내에서 이동은 그랩과 우버 택시를 타고 다녔고 브루나이에서는 Dart라는 택시어플을 이용했었는데 택시숫자가 40여 대에 불과했다. 그리고 오래된 수상가옥 밀집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수상택시를 이용했다. 수상택시 정류장에서 기웃거리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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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말레이시아는 무비자로 90일간, 브루나이는 30일 동안 체류가 가능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와 쿠알라룸푸르, 브루나이의 반다르세리베가완은 모두 한국에서 직항이 있어서 특히나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는 운 좋게도 코타키나발루로 놀러 온 와이프 친구에게 필요한 물품을 받고 우리에게 필요 없는 짐을 한국으로 보내기도 할 수 있었다.
공항 노숙의 여파와 친구 만나는 일정 때문에 뜻하지 않게 11일이나 코타키나발루에 머물렀다.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물놀이하는 호핑투어도 해보고 밤에 진행하는 반딧불 투어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을 맛집이어서 노을 지는 시간에는 거의 매일 나갔던 거 같다.
브루나이에서는 여행 중 처음으로 호스텔에서 지냈고 왕국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5성급 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됐다. 2박을 호스텔에서 지냈고 1박을 호텔에서 보냈는데 극과 극의 재밌는 체험이었다. 작은 나라여서 주요 관광지를 전부 돌아보는 데는 3박 4일이면 충분했다.
이제 다음 행선지를 스리랑카와 인도로 정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5박 6일간 지내면서 한식도 많이 해 먹고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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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8월의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는 계속해서 맑은 날씨였다. 아름다운 노을도 매일 볼 수 있었다. 발리에서와는 다르게 큰 쇼핑몰도 많아 너무 더우면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자주 쉬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호핑투어를 하면서 조금 위험했던 상황이 있었다. 갑자기 머리 위에 걸치고 있던 선글라스가 날아가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돌풍과 함께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그 와중에 항구로 복귀하기 위해서 탔던 스피드보트는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코타키나발루 (Kota Kinabalu)
시내의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아주 편하게 다녔다. 유명 관광지까지 대부분 2~30분 안에 갈 수 있었다. 제셀톤 선착장에서는 여러 투어사들이 모여 있어서 코타키나발루에서 할 수 있는 투어들을 예약할 수 있다. 하루는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 섬 두 곳과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호핑투어를 예약했고 하루는 원숭이와 반딧불을 구경할 수 있는 반딧불 투어를 예약했다.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업체가 있었는데 간단한 한국말도 할 줄 알아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동남아 하면 과일 아니겠는가. 우리는 과일을 구하기 위해 한국어 능력자들이 많아 영업을 잘한다는 필리피노 마켓에 여러 번 갔다. 최신 유행하는 밈을 어떻게 알았는지 업데이트가 빠르다. 물론 맛도 좋다.
인구의 약 60% 이상이 이슬람을 믿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모스크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을 많이 갔다. 규모가 큰 사원들도 많았고 노을과 함께 어우러지니 더욱 멋졌다.
코타키나발루는 노을이다. 왜 특별히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이유를 찾아봤는데 모르겠다. 탁 트인 시야와 해변의 분위기 외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물들어가는 노을의 색상은 다른 곳의 노을과는 분명히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쿠알라룸푸르 (Kuala Lumpur)
쿠알라룸푸르에는 수영장과 헬스장 등 편리한 부대시설도 갖추고 있는데도 비용이 저렴해서 한달살이 하기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춘 숙소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5일간 머무른 숙소에서 바라보면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높이 678.9m의 Merdeka 118가 잘 보였는데 우리 둘 다 초고층건물에 관심이 많아서 방문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준공 전이라 올라가 볼 수는 없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페트로나스타워에도 다녀왔다. 현재도 가장 높은 트윈타워라는 타이틀은 놓치지 않고 있다. 451.9m 높이인데 사진상 오른쪽 타워를 일본 건설사가 지었다고 하고 왼쪽 타워를 우리나라 건설사가 시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왼쪽 건물이 더 잘 지은 거 같다. 타워 안에 백화점을 구경하고 나와서 타워 바로 앞 KLCC 공원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타워의 야경을 찍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반다르세리베가완 (Bandar Seri Begawan)
아마 전 세계의 수도 중에서 가장 긴 명칭일 것이다. 이곳에 오기로 한 가장 큰 목적은 세상에서 단 두 개뿐이라던 7성급 호텔인 브루나이 엠파이어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찾아보니 여러 개다. 사실 7성급이라는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5성급과 비교했을 때 좋은 평을 받을 가치가 있을 때 마케팅의 용도로 쓰이는 등급이라고 한다. 숙박비가 비싸서 3박 4일 일정 중에 이틀은 저렴한 호스텔에서 머물기로 했는데 호스텔에 손님이 별로 없어서 첫 호스텔 경험치고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다.
브루나이도 이슬람국가답게, 그리고 부자나라답게 규모도 크고 화려한 모스크들이 있었다. 내부에 기도하는 넓은 공간까지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 넓은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을 아낌없이 틀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에는 캄퐁아에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상가옥 마을이 있다. 옛날에는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수상가옥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그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3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병원과 소방서, 학교 등 모든 시설들이 전부 갖춰져 있는 진짜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