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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나 Jun 14. 2023

수정과 수정과 수정

폴리 일을 하면서 늘 만나는 수정이,

이렇게 말하니 자주 보는 친구 이름 같지만 사실은 작업의 수정을 난 ‘수정이’ 라 불렀다.


과정이 있고 그 속에서 시도를 거듭해 만들어지는 건 웬만한 일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우리가 즐겨 듣는 음악, 짧은 시간 시청자를 사로잡는 쇼츠, 뇌를 쫄깃하게 하는 소설과 인기 있는 영화, 화려한 미술 작품까지. 하물며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글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이 ‘뚝딱’ 하고 나온다면 참 좋겠지만 그들이 우릴 마주하기까지는 수많은 수정사항들의 반복과 원점으로 회기 그리고 또 다른 수정이라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유명한 진짜 최종짤 (출처:구글이미지검색)




‘수정’을 마주하는 건 전체적인 녹음 결과물을 전달했을 때다.

물론 중간중간에 알맞은 소리가 나올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녹음하지만, 본격적인 수정은 폴리완성 후에 시작된다.  


작업할 때의 영상이 편집 없이 그대로 사용되면 참 좋겠지만, 완벽한 결과물과 조금 더 만족스러운 작업물을 위해 영상도 수정 사항을 거친다.

신(Scene)을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아니면 순서를 바꾸던가라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새로운 수정본이 오면, 구 영상과 폴리녹음 오디오를 한꺼번에 선택하여(그룹화) 파형을 보고 일일이 하나하나 맞추는 작업을 거친다.

폴리팀은 이것을 ‘그림 맞추기’라고 부르는데, 이 작업은 집중력과 눈썰미를 꽤나 요하는 작업이다.


오디오 파일을 하나씩 보며 똑같은 위치에 맞추고, 그래도 맞지 않을 때는 영상의 한 프레임을 기억하여 맞춰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여 이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종종 하나하나 비교하며 맞춰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는데, 그룹화된 파일이 옮겨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커다란 대륙이 오랜 시간 환경의 영향으로 조금씩 잘게 쪼개져 이동하는 장면 같아 보인다.


이렇게 한꺼번에 잘라 이동된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오디오 파형들을 보며 시원하게 진행될 때쯤, 위기를 느낀 난 살짝 멈칫한다.

폴리 녹음을 진행했던 어느 장면이 통째로 편집되어 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있었지만, 없었다.

폴리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지만 아직도 마음이 쓰인다.


일일이 녹음하고, 음향 편집으로 하나하나 맞춘 소리 조각들이 순식간에 없는 일이 되어버릴 때에는 그동안의 작업시간과 소리에 대한 고민의 순간들이 단 몇 초 만에 부정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마치 바닷속 거대한 고래가 플랑크톤을 한입에 먹어치우듯, 새로운 편집본은 크나큰 고래, 폴리 녹음 트랙은 작고 작은 플랑크톤이 되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렸다.


윗부분에 맞춰 다 잘려나가버린다.





가끔은 작업 시 있었던 장면이 편집되어 없어졌다,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영상의 순서가 이리저리 뒤 섞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위해 ‘그림 맞추기’ 때는 무조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가 필수이다.

이렇다 보니 처음엔 작은 용량으로 시작했던 작업시트도 어느덧 빵빵하게 ‘용량’이라는 근육을 키워 나간다.



최종적으로 전달한 폴리 녹음트랙이 감독님이나 사운드 슈퍼바이저(영상 소스를 최종 합쳐 완성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추가 요청사항이 있을 때도 또 다른 ‘수정’의 모습을 거친다.


이럴 때는 녹음해 두었던 오디오 파일에 덧대어 소리를 붙이거나, 새로이 추가 녹음을 진행하는데, 이때는 전에 완성된 음향편집(에디팅)이 진행되어 있기에 싱크 맞추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다.

내가 생각했던 좋은 소리와 수정된 소리를 비교하는 이 시간은 소리 피드백에 있어 꽤나 소중한 시간이다.




수정사항이 가득 담긴 메일 함을 클릭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수정은 사실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관심과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 ‘수정’이 아닐까, 작업물에 대한 사랑, 결과물에 대한 기대, 그러니까 더 예쁘게 다듬고, 꾸며서 보이는 이들에게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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