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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나 May 03. 2023

오늘은 먹방 하는 날

당신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가? 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당연! 왜냐면 지금 이 글도 먹으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해 빡빡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거대한 낙으로 자리 잡은 ‘먹는 것’에 대한 비중은 나날이 인기가 치솟고 있다. ‘먹방’ 이란 단어도 생긴 지 오래되어 이미 지금은 누구에게나 익숙해진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폴리아티스트와 나는 오래전부터 ‘먹방’을 시작해 왔다.

일반 ‘먹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폴리부스에서 아무도 모르게 우리끼리 ‘먹방’을 한다는 것, 영상 속 주인공에게 빙의돼서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음식의 특성을 잘 살리되 소리는 튀지 않게 적당히 먹을 것. 이렇게 다르다.


폴리(Foley)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시작하는 ‘먹방’ 이야기에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영화나 영상을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려 보면 납득이 가 이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 가족들이 모여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같이 먹거나, 허겁지겁 빵과 우유를 먹는 모습은 관객들에겐 익숙한 장면이지만 폴리아티스트 에겐 먹고 지나가야 할 일명 ‘먹방 클립’이 된다.


스릴러, 로맨스, 에로, 코미디, 공포, 액션 등 다양한 장르 속 공통된 한 가지가 존재한다.

과연 무엇일지 맞혀보시라. 바로 어느 장르 불문 먹는 장면이 한 번쯤은 나온다는 것인데,

이런 이유덕에 폴리아티스트와 난 매 작품마다 그에 걸맞은 음식을 준비하고 먹어버리는 소위 우리만의 ‘먹방’을 진행 중이다.  


영상 속 주인공들이 먹는 음식을 비슷하게 장을 봐온 모습이다.




폴리 녹음 진행 시 웬만하면 영상 순서대로 녹음을 진행하는 편이지만 음식 먹는 장면은 몰아두고 한 번에 녹음하는 편이다. 음식 준비부터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한방에 진행할 수 있는 효율성 때문이기도 하고, 음식물 섭취 후(특히 물) 바로 달리는 상황이 오게 되면 배에서 쿨렁쿨렁하는 물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와 녹음파일을 못쓰게 되기에 그렇다.


영상 속 제일 자주 등장 하는 단골손님은 소주와 맥주이다. 주인공이 퇴근 후 마시는 캔맥주와 포장마차에서 처량하게 마시는 소주 그리고 병맥주를 유리병에 시원하게 따라서 꿀꺽꿀꺽 마시는 장면이 모두 폴리아티스트 ‘먹방’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들이다.


캔맥주와 유리잔, 소주잔을 들어마시는 소리는 각각 다르기에 그에 걸맞은 재료들을 준비하는데 업무시간 중 술을 마실 수 없기에 생수를 잔에 받아 들이킨다. 소주와 맥주는 마시는 법이 달라 (벌컥벌컥 마시느냐, 한 번에 쫙 마시느냐) 맥주잔과 소주잔으로 맞춰 녹음을 진행한다. 한 번에 좋은 소리가 녹음되면 좋겠지만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기도 하고, 애매한 소리가 녹음되는 상황이 발생해 나는 폴리아티스트에게 ‘다시’ ‘다시’ ‘한번 더요!’를 외치는데  폴리아티스트는 물 배가 찬 배를 두드리며 투덜투덜 댄다. 그때마다 배부른 폴리아티스트를 달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바로 물대신 이온음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초딩 입맛’인 그를 달래 이온음료와 생수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목 넘김 좋은 소리는 만족스럽다.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만큼 영상에서 자주 등장 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폴리아티스트는 이때다 싶어 먹고 싶은 라면을 가득 사 채워둔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라면인 그는 뜨거운 물을 붓고 익기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먹방을 준비한다. 사실 라면 먹는 소리는 폴리아티스트가 너무나 맛있게 먹기에 나무랄 것 없는 완벽한 결과물이 나온다.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후루룩 맛있게 먹는 그의 진심 어린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내가 있는 스피커 쪽으로 넘어오면 별생각 없던 나도 어느새 ‘오늘 저녁은 라면으로’라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된다. 국물까지 스-읍 하고 깔끔하게 먹는 그를 보며 맘속으로 별풍선 여러 개를 쏴보았다.

라면을 누구보다 맛잇게 먹는 폴리아티스트




사물이 고유한 소리를 갖고 있듯 음식도 마찬가지다. 김밥 에선 단무지 씹는 소리가 ‘아삭’하게 살아나야 하고,  햄버거의 부드러운 빵과 양상추의 오독함의 조화가 포인트가 된다. 뼈 있는 치킨을 발라먹을 때 ‘후룹’ 하는 소리와 떡볶이의 ‘쩝쩝’ 하고 이에 붙는 소리 모두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장을 볼 때 폴리아티스트와 난 꽤나 진지하다. 편의점 도시락 속 먹고 싶은 반찬이 가득해도 영상과 어울리지 않으면 과감히 구매를 포기하고, 갓 구운 튀김의 소리를 위해 점심에 먹기로 한 백반을 뒤로 한채 점심메뉴를 부랴부랴 돈가스로 바꾸는 일도 있었다.


평소엔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먹지만 ‘먹방’이 있는 날엔 영상 속 메뉴들이 폴리팀의 주 메뉴가 되는 것이다. 직장인의 심각한 고민인 점심메뉴를 쉽게 결정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제 우연히 먹는 메뉴를 또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조금은 괴롭다. (그때는 종종 먹방을 미루기도 한다.)


영상이 정해준 점심메뉴인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너겟
양상추와 토마토 소리가 일품인 햄버거도 점심으로 먹었다.




폴리아티스트는 사람음식만 먹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적으니 뭔가 이상해 보이는 데 영상 속 강아지가 사료를 먹거나, 소가 여물을 뜯을 때도 그에 맞춰 음식을 먹는다.

물론 실제로 개밥을 먹거나 풀을 뜯어먹진 않는다.(이러면 정말 극한 직업이 되어버리니까 )


강아지 밥 먹는 소리를 여러 번 진행한 경험이 있는 그는 실제 강아지 사료를 쇠그릇에 담아 손으로 만지며 그릇과 사료가 닿을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하더니 나에게 ‘미쯔’라는 과자를 사 오라고 지시했다. 네모 모양의 초코맛인 추억의 과자가 개 사료 먹는 소리에 쓰인다니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바로 납득해 버렸다.


폴리아티스트는 어금니를 한껏 이용하여 얄미운(?) 입 모양을 하며 야무지게 과자를 씹어댔고 이내 허기진 강아지가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소리를 기가 막히게 표현해 냈다. (그렇다고 그가 개 같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종종 영상 속 개밥 먹는 소리가 들린다면 폴리아티스트의 노고가 한 스푼 들어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한바탕 우리만의 먹방 릴레이가 끝이 나고 폴리부스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이 시간이 올 때마다 폴리아티스트에게 나는 늘 “사람들이 알까요? 영상 속 주인공이 먹고 마시는 소리가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진다는 것을요?”라고 말하곤 한다. 지하의 한 녹음실에서 음식 가득 쌓아두고선 음식을 먹고 그 소리를 녹음하고 영상에 싱크를 맞춰 소리를 편집하고 조용히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주섬주섬 챙겨 뒷정리를 하는 폴리아티스트와 나 자신이 정말 순수하게 웃겨서 하는 질문인 것이다.



우리의 먹방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작품에도 또 다음 작품에서도. 폴리아티스트의 맛있게 먹는 소리가 영상 속 주인공이 먹는 장면과 맞아떨어져 당신에게 들리는 소리가 정겨웠으면 좋겠다. 입맛이 없던 누군가가 그 소리를 듣고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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