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물건은 도대체 어디서 오나요?” 폴리부스를 처음 접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다.
바닥은 물론 선반을 꽉꽉 채우다 못해 복도까지 가득 찬 물건들의 출처를 일일이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은 폴리아티스트와 내가 각각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져와 채우는 경우가 제일 많고, 나머지는 영화 제작부에서 받기도 하며, 철물점이나 고물상에서 직접 사 오기도 한다.
처음 폴리 일을 시작했을 때 종종 가족들에게 “버리는 물건이나 처리하기 애매한 물건들 수거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그때마다 손에 쥐어진 물품들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부피가 큰 담요, 묵은쌀, 쓰지 않는 수저세트, 고장 난 고데기, 수학의 정석,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 등
가족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어 편해했고 난 쉽게 구할 수 없는 폴리프랍(폴리 할 때 사용되는 물건을 이르는 용어)을 폴리부스에 채워 넣을 수 있어서 만족이었다.
이렇게 수시로 물건을 받아와 부스에 넣어두다 보니 이제는 수납할 공간이 부족해 폴리부스가
거의 터질 거 같은 상황에 이르렀지만, 지금도 없는 용품들이 있어 돈을 주고 구입할 때면 마음이 쓰라리다.
많이 모았다 생각했는데 아직은 부족한가 보다.
출처와 사연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새롭게 태어나 영상 속 소리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다. 폴리아티스트의 전투지휘 속 폴리 프랍들은 이 소리를 냈다, 저 소리를 냈다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며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일상 속 잊힌 묵은쌀은 폴리부스 안에선 무당의 쌀 던지는 소리와 부엌에서 쌀 씻는 소리로 변신했고
찢어진 이불은 커다란 몸집을 가진 익룡의 날개 짓으로 재 탄생했다. 펄럭펄럭 소리를 내며 휘날리며 움직이는 이불은 집에서 볼 때와 달리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수많은 물건이 자리하는 만큼이나 가득 쌓인 먼지 때문에 한때 폴리부스를 미워한 적도 있었다.
둘 데 없어 복도까지 물건으로 점령된 복도를 지나다닐 때 새로 산 옷에 먼지가 묻어 금방 더러워지는 것도
싫었고, 청소를 해도 티가 전혀 나지 않은 것도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물건이 쌓인 채로 우두커니 서있던 첫인상의 폴리부스를 떠올리며 그곳은 늘 차가운 곳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물건이 어떤 모습을 하던, 어떤 사연을 가졌던, 각자의 고유한 소리를 뽐내게 하고 받아주는 이 공간은 그 어떤 곳 보다도 따뜻한 곳이었는데 말이다.
지금도 바지 끝에 묻은 먼지를 볼 때면 살짝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폴리아티스트, 폴리부스, 폴리프랍의 열정이 한 스푼 묻어있다고 생각 중이다.
그만큼 좋은 소리를 만들었다는 모습 아닐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