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냄새가 코 끝에 닿는다.
크림소다가 생각나는 파란 하늘은 새하얀 구름으로 한껏 치장하고, 지나가는 비행기의 의젓한 배경이 되어준다.
한층 들뜬 사람들 소리와 여유로운 발걸음이 귓가를 맴돌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의 ‘헥헥’ 대는 분홍색 혀와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 새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날갯짓이 돋보이는 계절인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차를 뽑으러 가는 날이었지만,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오히려 창밖에 마주하는 날씨가 날 두근두근하게 만들 뿐이었다.
차를 구매하는 것보다 날씨에 관심을 가진다니, 조금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기대가 없었던 이유는 이렇다.
복잡한 서울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외곽에 있는 어느 폐차장이었다.
그렇다. 폴리팀은 차를 사러 폐차장에 온 것이다.
폐차장에서 차를 뽑는 이유는 이러하다.
전에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먹방’ 그러니까 먹는 장면과 더불어 자주 나오는 신이 또 있는데 바로 ‘자동차’다. 차에 타고 내리고, 차에 부딪히는 등의 장면이 나올 때면 철가방을 만지며 이리저리 소리를 내보고 여러 모양의 쇠붙이를 두드려보기도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곧 작업할 우주영화를 위해(결국 다른 쇠발판으로 대신했지만), 계속 마주할 자동차 소리를 위해 차구매를 결정한 것이었다.
폐차장 속 모여있는 차들을 보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 폐기된 로봇들이 모여사는 숲을 떠올렸다.
제2막 인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조용하고 편안해 보였지만, 한편으론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얼추 여름 모습을 한 5월의 태양도 그들의 식은 엔진을 뜨겁게 데우진 못했다. 마음 같아선 모두를 데리고 각자의 쓸모를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그것은 나의 오지랖일지도 모르겠다.
한 바퀴를 돌아, 산처럼 쌓여 부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폐차장 ‘탑’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까와 다르게 ‘트랜스 포머’의 로봇들이 대거로 출동할듯한 ‘웅장함’을 그려냈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모습을 뽐내는 폐차장은 어딘가 모르게 폴리부스와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 공간에 익숙해져 갔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핸들과 각자의 사연들을 가득 담았던 한 택시의 문짝, 운전자 기분에 따라 손끝에서 오르내리던 차량용 오디오, 한때 그들의 이름이자 존재감이었던 번호판을 마주했다.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조용히 속삭이곤 이내 이성적인 나로 돌아온다.
마냥 감성적으로 물건을 대했다 가는 좋은 소리를 가진 물건은커녕, 여기서 몇 날며칠이고 밤을 새울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 마음을 다잡고 폴리아티스트와 난 냉정하게 소리만 판단하기로 한다.
잘 익은 수박을 고르듯 “통, 통, 통” 주먹을 쥐고 차 문을 두드린다.
“쿵쿵쿵”, “콩콩콩”, “탕탕탕”, 다양한 모습을 한 만큼 다들 각자의 개성 있는 목소리들을 가졌다.
본격적으로 폴리팀 만의 ‘차 소리 오디션’을 벌인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듣고 고르기를 반복한 끝에 연식이 오래된 차량의 본넷과 차 문짝 두세 개를 합격시켰다.
“제3의 인생이 시작된 걸 환영해. 폴리부스에서 멋진 소리를 내주렴.”
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합격 목걸이' 대신 용달 차량 트렁크의 '로프를 묶는 행위'로 수상을 대신했다.
오늘도 폴리부스 안에서 차는 달리고 있다. ‘엔진’ 대신 ‘소리’를 입은 채로 말이다.
“텅, 텅” 거리는 울림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흘러들어온다.
그들의 소리는 묵직한 몸집만큼이나 든든하고 아직 충분히 강했다.
폴리팀의 차 뽑기는 성공인 듯하다.
비록 새 차도 아니고, 비닐 뜯는 즐거움도 주지 못했지만, ‘좋은 소리’라는 목적지에 우릴 데려다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