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자
주변 교수님들에게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학생들이 논문을 너무 못 써온다는 것이다. 영어 표현도 너무 엉망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영어를 못해서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교수들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어 글쓰기가 문제다. 한국어로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논문을 잘 쓰고 싶다면, 먼저 한국어 글쓰기 실력부터 키워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공계 글쓰기는 시나 소설보다는 많이 쉬운 편이다.
그렇다면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논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일단 생각을 해보자. 논문은 일종의 논설문이다. 설명문이 아니기 때문에 새롭게 주장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논문처럼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히 논문이 된다. 실험에 근거해서 이전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논문이 된다. 새롭게 발견한 현상을 단순히 보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논문들도, 그 발견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으므로 논설문이다. 바꿔 말해 다른 사람들이 논문의 발견을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논문은 길이가 길 필요가 전혀 없다. 주장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설득력 있게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네이처에 실린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이중나선 논문은 고작 842개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상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다양한 형태의 논문이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연구(research) 논문과 타인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총설(review) 논문이 대표적이다. 연구 논문의 경우 길이에 따라서 article이나 letter로 구분하기도 하며, 총설 논문보다 짧은 perspective나 어떤 논문에 대한 의견을 담은 comment 등이 출판된다. 학위 논문은 연구 논문을 좀 더 자세히 쓴 것이라고 봐도 크게 문제가 없지만, 연구 논문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연구 방법론이나 덜 중요한 것들을 수록하는 편이다. 여기서는 연구 논문을 어떻게 쓸지 생각해 보자.
누구나 어떤 연구를 1년 이상 수행했다면 매우 많은 데이터가 있을 것이다.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어떤 내용을 논문에 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주장하고 싶은 바를 결정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들을 선택한 후, 남은 데이터는 굳이 논문에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 논문의 독자들은 저자만큼 해당 내용을 잘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주장에 불리한 내용을 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연구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가 논문에 넣을 그림부터 그린다. 어떤 그림들이 어떤 순서로 들어가야 하는지 결정이 되면 그 순서대로 글을 쓸 테고, 그러면 논문의 스토리가 상당 부분 결정되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배열을 찾고, 그것을 뼈대로 살을 붙여가며 논문을 쓰면 된다. 연구 배경을 서문에 적고, 방법론을 적은 후, 그림을 설명하고 토의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장벽도 꽤 크다. 한국어 논문을 쓰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이라면 대체로 영어 논문을 써야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지라 영어 논문은 한국어 논문보다 더 쓰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빠른 방법이 있다.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한국어로 논문을 일단 쓰고 번역기를 돌리는 것이다. 인정하고 넘어갈 건 넘어가자. 여러분들의 논문은 예술 작품이 아니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영어를 쓰는 게 중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기술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지도 교수들이 교신저자로서 논문을 수정할 것이기도 하다.
필자가 사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네이버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를 써서 번역한다. 한국어를 입력해서 영어 번역을 한 후, 영어와 한국어를 뒤바꾼다. 이제 번역된 영어 단어가 연구 분야에서 맞는 표현인지 확인한다. 어떤 한국어 단어들은 문과에서 쓰는 단어와 이과에서 쓰는 단어가 다른데, 번역기는 그 미묘한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원치 않은 영어 단어로 번역해주기도 한다. 필자의 웹브라우저에는 오탈자를 잡아주는 기능(Grammarly for Chrome)이 설치되어 있고, 이 기능을 이용해서 추가로 영어 표현을 수정한다. 이렇게 하면 꽤 이른 시간 안에 영작할 수 있다. 요새는 chatGPT에다가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써달라고(paraphrase) 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긴 것 같다.
논문을 쓰다 보면 더 이상 글을 쓰기 싫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는 산책하러 나가서 걸으면서 녹음해 보자. 10분만 녹음해도 굉장히 긴 글을 쓸 수가 있다. 사실 이번 글도 10분 녹음한 내용을 고쳐서 쓴 글이다. 필자는 클로바노트라는 앱을 사용하는데, 이 앱을 쓰면 녹음된 음성을 대본으로 만들어준다. 이제 대본을 번역기에 돌리고 고치면 영작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많은 연구자가 그림을 먼저 그린다고 적었는데, 필자가 박사 후 연구원 시절에 논문을 많이 썼을 때는 매일 한 문단 정도의 글을 썼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논문을 쓰면서 연구를 한 것이다. 논문에 넣을 내용을 채우기 위해 데이터를 얻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논문이 참 마음에 안 들겠지만, 매일매일 논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꽤 그럴듯한 논문이 완성된다. 논문을 많이 쓰려면 이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참고로 저널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저널의 경우에는 연구 방법론이 본문에 나오지만, 어떤 저널들은 결과까지 다 설명하고 난 후 연구 방법론을 설명하도록 안내한다. 목표로 하는 특정한 저널이 있다면 해당 저널의 요구 양식에 맞춰 작업하는 것이 두 번 작업하지 않는 방법이다. 저널마다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으니 읽어보도록 하자. 이외에도 인용 양식이나 영어 단어도 신경 써야 한다. 영국 저널이면 영국 영어로, 미국 저널이면 미국 영어로 작성하자. 참고 자료의 경우에도 supporting materials, supplementary information 등 저널마다 등 다양하게 부르니, 저널이 사용하는 표현에 맞춰서 논문을 수정하자. 다른 저널에 들렀다가 온 논문이라는 인상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