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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박 Jan 14. 2023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

재능과 노력 모두 중요하다

학생들과의 면담은 교수가 해야 하는 업무 가운데 하나이다. 필자도 대학생 시절 수업 들었던 교수님과 면담한 적이 여러 번 있으며, 아직도 교수님들께서 필자에게 해주셨던 말들이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다. 면담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필자도 학생들이 면담하러 찾아오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노력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필자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려고 노력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 성적이 학생을 평가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보니 성적에 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다. 학점이 좋은 친구들은 대화에서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대학원 진학에 관심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면담 시간에 더 자주 봤던 학생들은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학생들이었다. 학점이 좋은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일정 비율 미만일 수밖에 없고, 어떤 집단이든지 간에 평가 지표가 낮으면 자신감이 떨어지기 쉽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자신이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이 좋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학생과, 머리가 똑똑하지 않아서 계속 이 길을 가도 되는지 고민하는 학생. 언뜻 보면 달라 보이지만, 두 부류의 학생들은 사실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첫 번째 부류도 학업에서 잘할 수 없으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자는 학생이므로,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학업을 덜 어렵게 느낄 수 있을지, 평가 지표에 너무 연연하지 않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공부는 남들이 해 놓은 것을 따라서 하는 것이므로 똑똑하면 유리한 점이 많이 있다. 이공계 공부를 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듯이 수학적 능력이 뛰어나면 아주 편해진다. 미적분은 이공계에서는 일상 언어이고, 미분방정식은 밥 먹듯이 등장하며,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기계학습에는 행렬이 꽤 많이 쓰인다.


그러나 재능이 부족하다고 공부를 쉽게 단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차가 느려도 연료만 충분하다면 시간이 걸릴 뿐 부산에서 서울로 갈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걸어서 한양(지금의 서울)에 과거 시험 보러 가기도 하셨다. 대부분 지식은 차근차근히 공부한다면 대부분 습득할 수 있다. 다만, 제한된 시간 안에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어려움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제 시간 안에 다 끝내는 친구들을 보면 의욕, 자동차로 치면 연료가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가 중간에 멈추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연료가 부족한 것이지, 차가 목적지까지 못 간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학업이 너무 벅차다면 전공 수업을 조금 덜 들어보자. 수학이 부족하다면 방학 때 수학 공부를 따로 조금 더 해보자. 수업 시간에 이해가 안 된 부분을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고, 교수님에게 질문해서 설명을 한 번 더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학 시절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더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면 그냥 잊어버리자. 대학 평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평가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예를 들어 대학 다닐 때 고등학교 성적이나 수능 성적이 중요한 적 있었나? 대학원에 들어온 이상, 학부 성적은 당장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대학원에서는 공부가 예전보다 확실히 덜 중요해질 것인데, 연구 실적이 대학원에서의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에서도 수업을 듣고 평가를 받지만, 학점은 사실 졸업 요건만 넘기면 된다. 물론 많이 알면 알수록 좋은 연구를 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확률이 그렇다는 것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다.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나섰지만 (유럽인 입장에서) 신대륙을 발견했듯이, 어떤 발견을 했다면 중간 과정이 어떠하든 발견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발견만 확실하다면 정당화는 나중에 해도 되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된다. 잊지 말자. 아인슈타인의 학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의 업적을 아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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