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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념하다

250217 프리라이팅

제시어 : 우편, 그리움, 바다

by 유념

이제부터 엽편소설을 꾸준하게 써보기로 했어요. 제시어를 자유롭게 설정하고 한 편의 짧은 글을 쓰는 거죠. 최근에 읽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장편소설을 쓰기도 하겠지만 가끔 긴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 오는 스트레스가 있곤 해요.(대부분 내글구려병에서 오는) 하지만 이건 생각 없이 써 내려가는 게 참 흥미로워요. 어떤 압박감 없이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는 것에서 오는 해방감 또는 힐링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다음날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이렇게 쓰는 글들은 그냥 가볍게 한번 읽어보고 맞춤법이나 어색한 부분정도만 고치고 아쉬움 없이 놓아줄 거예요.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세요. 엉망일지언정 생각보다 재미있는 글이 탄생할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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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정도 걸었을까 얼추 백사장의 끝에서 끝을 걸어온 거 같다. 언젠가 그와 함께 이곳을 산책했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도 길이 끝나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신이 나서 서로의 얼굴만 보고 걸었던 거 같다.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분위기 정도만 피부에 슬며시 느껴지는 정도다. 어쩌면 조금의 그리움 정도는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밀려들어오는 파도와 함께 쓸려가 버린 건지 아니면 흐르는 바람에 타고 가버린 건지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가지고 있어 봤자 쓰라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여전히 떠올리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를 잊을 것만 같아서다. 아니, 그를 사랑했던 나의 모든 순간들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찬란하게 빛났던 그날을. 사실 나는 그때의 그보다 나를 더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열렬히 표현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아름답게도 용감했다. 젊음이란 것을 말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 물론 지금보다 훨씬 젊었다. 그 자체로 예뻤던 시절이다. 하지만 단순히 젊음이 예뻐서라기보다는 그 꾸밈없는 당당함이 예뻤다는 거다. 사람은 어찌하여 날이 갈수록 겁이 많아지는 걸까.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만큼 아는 게 많아졌다는 거겠지. 아는 게 힘이라는데 나에게는 아는 게 무서움이 되었나 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자체적으로 뻗어가는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아간다. 그렇다고 하나의 길이 온건해지느냐? 그건 또 아니다. 돌아가고 돌아가다 자기들끼리 얽히고설키고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지. 생각 없이 걷고 싶다가도 이렇게 생각이 많아져버리니 머릿속은 금방 피곤해져 버린다. 이래서야 바닷가를 걸으며 힐링을 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그저 길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생각을 다 내뱉듯이. 입김은 그에 비례하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래. 그렇게 멀리멀리 날아가 버리렴. 이제야 으슬으슬해지는 느낌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나만의 숙소로 돌아갔다.


“언젠가 가능은 한 일인가.”


참으로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 다 잊고 무념의 시간을 갖자고 온 게 무색할 정도로 생각만 하고 있다. 낮에 주변을 거닐다 귀여운 잡화점에서 산 우편 한 장을 꺼냈다. 누구에게 쓰고 싶냐 물으면 주저 없이 말한다. 나. 나에게 쓰고 싶다. 어느 순간 잊고 살았던 나라는 인간 말이다. 어쩌면 항상 존재하고 있음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공기 그리고 나라는 자신이다. 공기만큼 소중했던 나를 왜 잊어버렸나. 누군가 들으면 너무 감성적인 게 아니냐며 비웃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비웃는다는 건 어쩌면 자신의 허점을 보며 그렇게 느꼈을 테니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나에게 집중하자고 온 공간이니 그에 따라 이 우편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나에게 쓸 것이다. 시작은 산뜻하게 안녕이라고 시작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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